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19일 경북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 마을에서 이재근(왼쪽), 송춘석 할아버지가 청명한 가을 하늘과 누렇게 익은 논을 배경으로 꽹과리와 장고를 치며 ‘망중한’을 즐기고 있다. 구미 = 김선규기자 ufokim@munhwa.com

청명한 가을 하늘, 누렇게 익은 벼로 황금 물결을 이룬 들녘에 ‘따당따당∼징∼따당따당∼징’ 하는 소리가 멀리 퍼져 나갔다. 지난 19일 경북 구미시 옥성면 농소리 마을에서는 이재근(86)·송춘석(84) 할아버지 등 어르신 6명이 한바탕 신명나는 풍물놀이를 하고 있었다. 이 할아버지는 빨강, 노랑 긴 천을 몸에 엇갈려 맨 ‘복색’을 하고 머리에는 상모를 쓰고 꽹과리를 치고 있었다. 풍물을 주도하는 ‘상쇠’였다. 송 할아버지는 머리에 고깔을 쓰고 장고를 치며 꽹과리와 징, 장고 소리에 어깨춤을 추며 장단을 맞췄다. 신이 난 듯 얼굴 표정이 ‘무아지경’이었다.

이 할아버지는 상쇠를 치던 선배가 세상을 뜨면서 그 자리를 이어받았다고 한다. 그는 “마실(마을)에서 명절 때 심심해 ‘풍악 한 번 울리자’고 하면 다들 모여 신나게 논다”고 했다. 농번기라 다들 가을걷이에 바빴지만 잠깐 풍물을 한 번 들려달라고 요청했다. 이 할아버지는 흔쾌히 응하며 동네 어른 몇 명을 불러 옷을 갈아입었다. 그는 논바닥에 다다르자 ‘얼쑤’ 하고 추임새를 넣어가며 꽹과리 치기에 몰입했다 .

두 살 아래인 아내 권적임씨와 같이 살고 있는 이 할아버지는 평생을 농군으로 살았다.

6·25전쟁 때 입은 종아리 총상의 후유증 탓인지 1남1녀 외엔 더 자식을 갖지 못했다. 어려운 살림에도 아들이 대학에 가겠다고 우기며 가출까지 하자 결국 대학에 보냈다. “그때 참 힘깨나 들었죠.” 힘들게 가르친 그 아들은 현재 대학에서 40년 가까이 교편을 잡고 있다.

이 할아버지는 힘이 팔팔했던 4년 전까지만 해도 벼농사를 지었지만 지금은 고추와 깨 등 밭농사만 짓고 있다.

그는 오전 5시면 어김없이 일어나 집마당을 쓸고 자전거를 타고 들에 나간다. 요즘에는 깨 수확철이라 깨 베느라 오전 시간을 다 보낸다.

오후에는 5년 전에 배운 게이트볼 치는 재미에 빠져 마을에 있는 ‘농소게이트볼장’으로 매일 출근하다시피한다. 건강하게 오래 사는 비결을 물었다. 그는 “아침 저녁으로 몸이 조금씩 아플 때도 있지만 아프거나 말거나 자꾸 활동하려고 생각한다. 집에 가만히 있는 게 싫다”고 말했다.

식사는 김치와 된장국만 있으면 밥 한 공기 뚝딱이다. 고기와 생선은 가끔씩 먹는다고 한다. 이 할아버지는 “우리 땅에서 서 난 채소와 된장만 먹고도 이렇게 오래 살 수 있다”고 했다.

그는 “이 얘긴 안 하려고 했는데, 요즘 틈나는 대로 꿀밤(도토리의 경상도 사투리)을 주웠는데 140㎏을 주웠다”고 자랑했다. 마을 분들은 이 할아버지가 낙천적이고 주위 사람들과 잘 어울리는 스타일이라고 했다.

구미에서 ‘게이트볼 치는 부자(父子)’로 소문이 자자한 송춘석 할아버지는 이날 오후에도 아들 송경달(62)씨와 함께 게이트볼 게임에 열중했다. 10년 전에 배운 게이트볼 실력이 수준급이다. 마을 대표로 구미시 대회에 나가 여러번 우승을 하기도 했다.

아들 경달씨는 “우리 아버지는 ‘8학년 4반’이에요”라고 했다. 84세에도 젊은이 못지않은 활기찬 생활을 하고 있다는 뜻이리라. 겉으로 보기에도 혈색이 좋아 한 10년 이상 젊어 보였다. 송 할아버지는 동네 후배들이 할아버지라고 부르면 “지발 할부지 소리 하지 말고 아저씨라고 부르라고 이칸다”고 말했다. 마음은 언제나 청춘이라는 것이다.

현재 농사를 조금 짓고 있는데 지금도 가끔 경운기를 몰고 논에 나간다. 아들, 며느리와 함께 살고 있는 송 할아버지는 구미시 근로복지회관에서 운영하는 요가교실에도 1주일에 두 번 꾸준히 나간다. 오후에는 1~2시간 정도 게이트볼을 친다. 송 할아버지는 건강 비법에 대해 “밥 잘 먹고 마음 편하게 사는 게 최고지. 특별히 걱정하는 것 없이 잘 산다”고 말했다.

구미 = 김충남기자 utopian21@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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