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올해 81세인 복진석 할아버지가 지난 13일 충남 홍성군 금마면 월암리 봉암마을 자신의 논에서 벼를 베고 있다. 이 마을에서 태어난 복 할아버지는 이곳에서 평생 논농사, 밭농사를 지어왔고 축사에서 한우 7마리를 키우고 있다. 홍성 = 곽성호기자 tray92@munhwa.com

노동이 운동이 될 수 있을까. 건강 유지를 위한 특별한 운동을 하지 않고도 일을 열심히 하는 것만으로 아프지 않고 장수할 수 있다면 그것만큼 좋은 것은 없을 것이다. 힘들게 노동을 해야 먹고 살 수 있는 직장인들에게는 언감생심일 수밖에 없지만 말이다. 하지만 물 좋고 공기 좋고 인심 좋은 시골에서는 평생 일만 하고 살면서도 건강하게 장수하는 어르신들을 심심찮게 만나게 된다.

지난 13일 오전 충남 홍성군 금마면 월암리 봉암마을에서 만난 복진석(81) 할아버지가 그런 어르신 중 한 명이다.

165㎝가 좀 안 되는 키에 마른 체형의 복 할아버지는 겉옷 카디건 주머니에 ‘하나로’ 담배 한 갑을 찔러 넣은 채 구슬땀을 흘리며 벼를 베고 있었다.

말수가 적은 복 할아버지는 “지금은 벼 베느라 한참 바쁜 시긴디…”하며 ‘뭐 대단한 일로 찾아 왔느냐’는 표정이었다. 구름 속에 가려졌던 해가 나오자 따가운 가을 햇볕이 쏟아졌다. 거무접접한 피부의 그는 밀집모자도 쓰지 않았다.

복 할아버지에게 “연세도 있으신데 어디 아픈 곳은 없으시냐”고 물었다. 답이 간단했다. “아, 약도 안 먹고 병원도 안 다녀유.” 노랗게 익은 벼를 낫으로 베는 손놀림이 더욱 빨라졌다. 수십년을 반복해온 일이어서 그런지 손 동작이 ‘달인’의 경지였다. 일을 방해하지 않기 위해 점심 식사 시간까지 복 할아버지가 일하는 모습을 지켜보기로 했다.

12시쯤 되자 복 할아버지는 하던 일을 멈추고 논 옆에 세워놓은 오토바이에 올라탔다. “이게 내 자가용이쥬.” 논에서 5분 정도 떨어진 복 할아버지의 집은 깔끔한 2층 양옥집이었다. 집 앞마당에는 복 할아버지가 직접 벤 나락을 말리는 ‘나래 멍석’이 깔려 발 디딜 틈이 없었다. 2층으로 올라가 거실과 4개의 방을 일일이 보여준 복 할아버지는 아내 이재숙(76)씨가 내온 된장찌개와 김치로 된 소찬을 들었다.

내친 김에 본격적으로 건강 이야기를 나누기로 했다. “근력을 보니 앞으로 한 십년은 더 일하실 수 있을 것 같다”고 하니 “아, 그렇게까지 할 수 있겄슈. 우리 동네에서도 90세까지 일하는 사람은 없어유. 저도 나이 들수록 조금씩 근력이 떨어져유”라고 했다.

오래 사시는 비결이 뭐라고 생각하느냐고 물었다. “마을 뒷산인 대흥산 산삼 썩은 물을 먹어서 오래 사는 거라고 그러던디유.” 이어 특별히 하는 운동이 있는지도 물었다. “뭐, 일하는 게 운동이지, 운동할 시간이나 있간듀. 잘 먹고 일 잘하니까 잘 사는 거지유. 일이 보배여유.”

‘일이 보배다’라는 말이 귀에 쏙 들어왔다. 잘 먹고 스트레스 받지 않고 일을 열심히 하면 일이 곧 운동이 될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복 할아버지는 말 그대로 평생 노동을 하며 살아왔다.

그는 1930년 봉암마을에서 9남매 중 둘째 아들로 태어나 “원체 어렵기도 하고 뭐 먹을 게 없었다”던 시절에 배움의 기회도 갖지 못했다. 오직 강인한 팔과 다리로 벼농사와 밭농사를 지어 2남3녀를 키웠다. 그에게는 자식을 먼저 보낸 가슴 아픈 사연도 있었다. 큰 아들이 25세이던 30년 전 젖소 축사에서 감전 사고사한 것이다. 그는 한동안 젖소 사육도 중단했다가 몇년 전부터 한우 7∼8마리를 키운다고 했다.

다소 침울한 분위기를 바꿀 요량으로 뭐 특별히 잘 드시는 것이 있느냐고 다시 물었다. 이번에도 우문현답이었다. “솥에서 나오는 것은 다 잘 먹어유.” 그는 민물고기, 바닷고기 가리지 않고 채소도 잘 먹는다고 했다. 특히 아내가 담그는 생김치가 제일 맛있다고 했다. 술은 체질적으로 맞지 않아 입에도 대지 않지만 담배는 거의 평생을 함께 해온 ‘친구’였다.

복 할아버지는 식사를 마친 뒤 집 바로 밑에 있는 축사에 들러 소들이 밥을 잘 먹었는지 살펴봤다. 암소 7마리가 사료를 먹고 있었고 생후 3∼5개월 된 송아지 3마리가 밥을 먹으며 엄마 소들을 쳐다봤다.

다시 들녘으로 나가는 복 할아버지에게 “건강하게 오래 사시라”는 말과 함께 남은 생에 소원이 뭐냐고 물어봤다.

“26살 먹은 큰 손자 결혼시키는 게 원인데 배우자가 잘 안 나타나네유. 그리고 아내가 관절도 안 좋고 몸이 골골해 병원에 자주 다니는데 두 내외가 서로 건강하게 살면 그게 최고지유.”

소탈한 생활과 소박한 소망이 그의 건강을 오랫동안 지켜줄 것 같았다.

홍성 = 김충남기자 utopian21@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