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디오니소스’

지난 주말 개막한 2010서울연극올림픽의 서두를 장식한 로버트 윌슨(69)의 ‘크라프의 마지막 테이프’(24, 25일 국립극장 해오름극장)와 스즈키 다다시(鈴木忠志·71)의 ‘디오니소스’(25, 26일 명동예술극장)는 아날로그 공연예술이 21세기 디지털 시대를 어떻게 헤쳐가야 하는지 중요한 교훈을 줬습니다.

우선 언어를 넘어서는 독창적이면서도 보편적인 표현양식입니다.

윌슨은 17세까지 언어장애인이었으며 장애를 극복한 것이 계기가 돼 스스로 언어장애아를 치료하는 정신과 의사로 일하기도 했습니다. 장애아 치료과정에서 윌슨은 영화 속 슬로모션같은 동작들이 환자들에게 미치는 특별한 효과에 주목하게 됐고 몸의 의사소통에 관심을 쏟게 됐죠. 그 결과 1971년 프랑스 파리에서 ‘청각장애인의 눈짓’이라는 3시간짜리 이미지극으로 충격을 주며 화려하게 등장, 현재 연극은 물론 오페라, 미술, 영화 등 전방위로 활약하고 있습니다. 이번 작품은 특히 배우로 출연까지 해 관심을 모았지요. 윌슨은 특유의 긴 포즈와 침묵으로 자세하게 논리적으로 설명하는 이상으로 사뮈엘 베케트의 깊은 교훈을 이심전심으로 전했습니다.

스즈키 다다시는 검도와 일본의 전통예술 노(能)와 발레 등, 몸을 사용하는 모든 방법을 종합해 러시아의 스타니슬랍스키 메소드에 비교되는 배우 훈련술 스즈키 메소드를 고안해낸 연출가입니다. 스즈키 극단 배우들의 연습과정을 보면 검도 4, 5단의 실력은 돼 보인다고 감탄할 정도이지요. 어떤 자세, 어떤 상황에서든 동물적이고 원초적인 에너지를 발산할 수 있게 해 주는 스즈키 메소드로 훈련된 배우들이 만들어낸 ‘디오니소스’는 일본어를 알지 못해도 전하려 하는 메시지가 그냥 가슴에 서늘하게 다가서는 감동을 줬습니다.

또 자질구레한 형식논리를 거부하고 바로 본질로 찌르고 들어가는 강렬한 단순함이 있습니다. 왜 이런 상황이 발생했는지, 어떻게 전개될 것인지 하는 보충 설명이나 다음 장면을 위한 주저함이 없습니다. 그냥 벼락같이, 천둥같이 강렬한 빛과 소리로 치고 들어와 가슴을 1시간여 동안 헤집어 놓습니다.

윌슨은 이같은 강렬한 빛과 어둠, 빠름과 느림의 단순한 대비를 통해 국내에서 가장 큰 무대를 단 한 사람의 에너지로 꽉 채워넣었습니다. 스즈키는 서늘한 일본도의 검기로 펜테우스의 불신을 일도양단, 고대 희랍극의 광기와 에너지를 객석에 채워넣어 관객들을 꼼짝 못하게 했습니다. 역시 감동은 양이 아니라 질에 있다는 것을 두 거장은 여실히 증명했습니다. 이들은 관성에 젖어 주변의 성공을 베끼며 시장 탓만 하고 있는 우리 공연계에 진정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를 깨닫게 했습니다.

김승현 선임기자 hyeon@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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