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을 매개로 우리 시대 남성들의 욕망을 전방위로 풀어낸 ‘강안남자’는 연재기간 내내 폭발적인 화제를 부르며 ‘강안남자’ 신드롬을 일으켰다.

한국 정치의 지리멸렬한 상황을 빗댄 “조철봉은 절정의 순간, 한국 정치를 생각했다”는 말이 한때 엄청난 인기를 누리며 회자됐고, 출장으로 며칠간 자리를 비운 한 대기업 간부는 며칠분을 스크랩해 봤으며, 직장의 오후 회의 테이블과 넥타이를 느슨히 풀고 앉은 저녁 술자리에 끊임없이 화젯거리로 오르는 등 ‘강안남자’는 하나의 광범위한 직장가 풍속도가 됐다.

이처럼 ‘강안남자’가 인기를 끈 가장 큰 이유는 결국 우리 시대 남성의 팬터지였다. 조철봉은 돈과 권력을 끌어모으고, 모든 여성을 성적으로 매혹시키며 끊임없이 강력한 팬터지를 제공했다. 이와 함께 희대의 사기꾼으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성공의 사다리를 올라가면서도 때로는 나름의 윤리의식을 가지고 정의를 실현하는 조철봉의 캐릭터 역시 팬터지를 완성하는 데 한몫을 했다.

한편 조철봉은 화려한 성공을 거두지만 한번도 사랑과 행복을 느끼지 못한다. 오히려 그는 성취가 화려해질수록 콤플렉스와 자기 혐오에 시달렸고, 고독과 외로움에 쓸쓸해 한다. 조철봉이 성공과 성에 적극적으로 나선 것도 부인의 외도 사실을 안 뒤, 자신이 사회적으로 성공하지 못했기 때문에 부인이 바람을 피웠다는 패배의식에서 시작됐고, 오랫동안 한 여성에게 받은 상처 때문에 어느 누구에게도 안주하지 못한다.

이처럼 조철봉이 보여준 그림자는 10년 넘게 우리 사회를 휩쓸고 있는 ‘약한 남성’이라는 세태를 반영한 것으로도 읽힌다. 특히 소설 속 조철봉은 30대 중반에서 시작해 40대 초반에 이르지만 실제로는 40, 50대 남성, 그것도 사회적으로 큰 성공을 거둔 화이트 칼라 남성에게서 열광적인 반응을 얻었다는 것을 생각하면, ‘강안남자’는 우리 시대 성공신화의 수혜자이면서도 그로 인해 잃은 것도 많은 세대의 화려한 성취와 서글픔과 소통했다고 볼 수 있다.

이와 함께 하루 연재분인 원고지 8장 안에 시작과 끝을 분명히 하고, 짧고 힘 있는 문장으로 써내려간 작가의 이야기 구성능력과 시원한 글솜씨도 독자를 강렬하게 빨아들였다. 이 같은 요인들이 복합적으로 작용해 ‘강안남자’는 1970년대 정점을 거쳐 고사 직전에 이르렀던 신문 연재소설에 다시 온기를 불어넣었고, 소설 시장의 아웃사이더였던 중장년 남성을 끌어들이며 한시대를 풍미했다.

최현미기자 ch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