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공로명(오른쪽)세종재단 이사장과 장달중 교수가 지난 10일 서울 중구 충정로1가 문화일보 회의실에서 대담하고 있다. 신창섭기자

매년 8·15 광복절이 되면 한일관계의 과거와 현재를 떠올리게 되지만 올 8·15는 예년과 상당히 다른 의미로 다가오고 있다. 일본 정계가 8·30 총선을 앞두고 격렬한 대변화 속에 빠져들면서 1955년 이래 이어졌던 자민당정권이 민주당으로 교체될 가능성이 높아지고 있다. 자민당 중심체제가 붕괴되고 정권이 교체됐을 때 일본은 어떤 소용돌이에 빠져들고 향후 한일관계는 앞으로 어떻게 변화될지 공로명 세종재단 이사장과 장달중(정치학) 서울대 교수가 지난 10일 서울 중구 충정로 문화일보 회의실에서 대담을 나눴다.

―총선을 보름여 앞두고 일본 정국이 요동을 치고 있는데 최근 상황을 어떻게 보는가.

▲ 장달중 교수 = 최근 일본을 다녀왔는데, 일본에서는 정권교체를 당연시하는 분위기였다. 민주당이 정권을 잡을 가능성이 높아지면서 민주당이 앞으로 집권하면 이른바 자민당 집권체제인 ‘55년 체제’는 물론 이 체제의 기본 틀을 규정해왔던 미일관계에 어느 정도 변화가 일 것으로 보인다.

▲ 공로명 이사장 = 현재 자민당과 민주당이 놓고 씨름하는 것은 주로 국내 문제다. 정권이 자민당에서 민주당으로 바뀐다고 해도 외교정책에서는 큰 변화가 없을 것으로 본다. 일본외교의 핵심인 미일동맹은 크게 변화하지 않을 것이다. 물론 미일동맹도 상대가 있는 것이기 때문에 집단 자위권 문제 등에 대해선 신중론이 강해질 것이고, 비핵 3원칙이나 평화문제가 전면에 나설 것이다. 하토야마 유키오(鳩山由紀夫) 민주당 대표는 집권시 미일동맹을 기초로 아시아 중심 외교를 하겠다고 하면서 동아시아 공동체론도 꺼내고 있는데 한국과 중국과의 관계 중요성을 좀더 강조하는 차이 정도이지 크게 기조가 달라지는 것은 없을 것 같다.

▲ 장 교수 = 일본의 내정은 기본적으로 미일관계와 불가분의 함수관계에 있다. 이번 선거에서 나타난 가장 큰 변수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 이후 추구해온 미국식 신자유주의 정책의 좋지 않은 결과들에 대한 유권자들의 인식인 것 같다. 그리고 그동안 우경화되고 있던 대외정책에 대한 우려도 작용하고 있는 것 같다. 민주당은 그동안 관료주도였던 일본체제를 국민주도로 하겠다고 주장하고 있지만 국민들의 관료체제에 대한 불만 못지않게 정치에 대한 불신, 정치인 자체에 대한 불신이 상당한 것 같다. 또 기본적으로 세계질서 변화에 대한 인식이 민주당 지도부에 상당히 파고드는 것 같다는 인상을 받았다. 일본의 이같은 변화는 90년대초 한·미·일 지도자가 김영삼-빌 클린턴-호소카와 모리히로(細川護熙)로 이어지면서 나타난 변화의 바람과 유사할 수 있다. 하토야마가 승리할 경우, 버락 오바마-하토야마로 이어지는 미·일의 변화 바람에 우리가 어떻게 적응할지 고민해야 한다.

▲ 공 이사장 = 변화를 얘기하는 민주당 인사들이 많은데 권력은 쥐고나서 봐야 한다. 권력장악 이전의 주장과 정책이 그대로 실천되는 급진적 변화가 일본에서 추진될 것이라고 보지 않는다. 한미동맹이 우리외교의 기틀이듯 미일동맹은 일본외교의 기틀이다. 그런 만큼 미일동맹의 근간이 흔들리는 그런 정책이 향후 5년내 일본에서 나타날 것으로는 보지 않는다.

―그간 일본에서 논란이 됐던 평화헌법문제나 보통국가 담론에도 변화가 올 것으로 보는가.

▲ 공 이사장 = 평화국가 이미지를 강화하는 쪽으로 갈 것이다. 그간 보수파들은 헌법 9조를 고치자는 입장을 보였지만, 앞으로는 헌법 9조는 그대로 지킨다는 것, 집단 자위권도 갖고 있지만 행사하지 않겠다는 쪽으로 갈 것이다. 그런데 민주당이 중의원 선거에서 과반수를 얻을 경우, 그렇지 못할 경우 우파인 국민신당(가메이 시즈카 당수) 등과 연립해야 한다. 또 내년에 참의원 선거도 있다. 민주당 단독정권을 유지하려면 내년 참의원 선거에서도 승리해야 하는데 과연 그렇게 될지 지켜봐야 한다. 그런데 민주당 내부의 보수파와 좌파가 갈려 있어 과연 하나의 목소리를 내겠느냐는 우려가 있는데 국내정책 문제에서는 상당부분 보조가 맞아가는 것 같다.

▲ 장 교수 = 민주당의 집권을 기정 사실로 받아들이는 분위기에도 불구하고 일본의 식자층에서는 하토야마가 수상이 되더라도 곧 낙마할 것이라는 얘기가 많다. 이뿐만 아니라 민주당이 집권하더라도 하토야마-오자와 2중 권력구조로 인해 정치적 리더십이 불안정해지고 국정운영이 혼선을 빚지 않을까 하는 우려들이 있다.

▲ 공 이사장 = 민주당 정권이 들어설 경우 이것은 55년 체제의 붕괴로 볼 수 있다. 내가 1993년 주일대사로 부임했는데 당시는 호소카와 내각 성립으로 55년체제가 붕괴됐을 때다. 그런데 그게 1년밖에 지속되지 않았다. 그 이후엔 자민당이 연립 등으로 정권내부에 들어왔다.

▲ 장 교수 = 90년대 초반 첫 참패후 자민당이 복귀할 수 있던 것은 농촌 등에 경제성장의 과실을 분배할 수 있는 축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버블 붕괴이후 경제가 침체하면서 자민당이 의존해왔던 이익분배의 정치가 더 이상 작동하기 어려워졌다. 여기에 고이즈미의 신자유주의적 구조개혁으로 실업자가 양산되고 사회적 격차가 심화되면서 일본이 자랑하던 ‘일억 총중류’의 신화가 무너졌다. 그래서 농촌이 민주당으로 돌아섰고 큰 도시도 여당에서 야당으로 돌아섰다. 그런데 여기서 눈여겨 보아야 할 것은 일본의 정당지지 기반이 상당히 불안정해졌다는 점이다. 여론조사에 따르면 다음에 정치를 잘못하면 지지를 다시 바꾸겠는가라는 물음에 60%가 그렇다는 반응을 보였다. 민주당이 좋아서 표를 던지는 게 아니라 자민당이 싫어서 민주당을 찍는 것이다. 이것은 정당지지 기반의 동요에 의한 정치의 위기로 볼 수 있다.

―민주당 집권시 한일관계나 한·일 자유무역협정(FTA)에는 변화가 있을까.

▲ 공 이사장 = 하토야마 대표가 지난 6월초 방한해 이 대통령을 만났을 때 한·일 FTA에 대해 적극적인 입장을 표시했다. 따라서 한·일 협력에 있어서 자민당과의 관계이상으로 발전할 것으로 본다. 이번에 민주당이 집권하게 되면 일본정치에 희망이 생기는 것이다. 1955년 이후 일당집권해온 자민당 중심의 나라에서 민주당이 집권한다는 것은 국민에게 희망을 주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하토야마 대표에 의해 이뤄지는 이런 변화가 한일관계에도 새로운 변화를 줄 것으로 본다.

▲ 장 교수 = 그럼에도 불구하고 민주당의 매니페스토에 독도는 일본땅이라는 기록이 있다. 이것은 한일관계를 다시 출렁거리게 할 소지가 있다.

▲ 공 이사장 = 영토문제는 우리가 양보할 수 없는 것과 같이 일본도 쉽게 양보할 수 있는 문제가 아닐 것이다. 정권을 잡은 뒤 그것을 양보한다면 매국이라는 비판을 받을 것이다. 독도문제는 한·일 양국 정부간에서 관리해 나갈 문제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 장 교수 = 오카다 가쓰야(岡田克也) 민주당 간사장이 서울대 내 연구실에 왔었을 때의 일이 생각난다. 당시 서울대 대자보에는 미국비판이 많았고 일본에 대한 것은 거의 없었다. 그것을 보고 오카다 간사장이 ‘반일감정이 정치적 선동 아니냐’는 얘기를 한 적 있다. 그래서 얘기를 했다. 한국지식인들 머릿속에 일본은 없다. 일본이 패싱(passing) 당한 거라고 말했다. 최근 일본에 갔을 때 일본 재계인사들을 만났더니 한·일 FTA에 별관심이 없고, 하겠다는 의지도 별로 없다는 자세를 보여 놀랐다.

▲ 공 이사장 = 왜 그럴까, 듣지 못했던 이야기다.

-8·30 총선을 거치며 일본이 대내외적으로 많은 변화를 보일 텐데 우리는 앞으로 일본을 어떻게 봐야 하며 이명박정부는 어떻게 대일관계를 유지해나가야 한다고 보는가 .

▲ 공 이사장 = 변화하는 21세기 동아시아에서 중국이 부상하고 있는 가운데 가치를 공유하는 일본과의 협력은 앞으로 더 필요하다. 우리가 경제적으로 소재산업을 키워가야 하는데 그것은 일본 중소기업의 대한투자를 의미한다. 그러니 일본사람들이 FTA에 관심을 보이지 않는 것이다. 그런 면에서 일본은 우리에게 필요한 존재. 내년에는 한·일병합 100년인데 너무 과거만 생각하지 말고 미래 국가이익을 생각하면서 이웃으로서 대일관계를 관리하고 협력해나가야 한다. 그게 우리 자손을 위해 필요한 것이다.

▲ 장 교수 = 우리는 현실적인 바탕을 두고 일본과의 협력관계를 강화해 나가야 한다. 이명박정부 들어 한일관계가 많이 좋아진 게 사실이다. 일본은 우리가 협조를 구하기 가장 쉬운 파트너인 동시에 언제 터질지 모르는 불안정한 유대의 나라다. 여러 우여곡절에도 불구하고 한일관계는 기본적으로 협조적인 관계 속에서 유지되어 왔지만 영토문제나 역사문제 등으로 언제 폭발할지 모르는 불안정한 유대관계이기 때문에 일본의 정권교체와 더불어 양국관계의 성숙된 관리가 매우 중요할 것으로 보인다.

진행·정리 = 이미숙기자 musel@munhwa.com

/ 대담자 /
◆ 공로명 세종재단 이사장, 동서대 석좌교수(77·전 외무부장관)
◆ 장달중 서울대 교수·정치학(6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