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명박 대통령이 국정쇄신과 관련해 화두로 던진 ‘근원적 처방’의 하나로 지역주의 구도 타파를 위한 선거제도 개편 문제가 수면위로 부상함에 따라 정치권의 논의도 본격화될 것으로 전망된다. 이 대통령이 구상중인 선거제도 개편안은 현행 비례대표제를 그대로 두되 특정 지역 출신에게 비례대표 의석을 배분하는 ‘비례대표 지역 할당제’ 방안이 될 가능성이 높다. 예를 들어 영남지역이 강세인 한나라당은 호남출신을, 호남에서 강세를 보이는 민주당에는 영남출신 비례대표 의원을 일정 비율 이상 채우도록 하는 방식이다.

‘비례대표 지역 할당제’는 지역 구도를 깨기 위한 시도라는 점에서 노무현 정부시절 열린우리당이 추진했던 ‘권역별 비례대표제’와 유사하다. 열린우리당은 2005년 정치개혁특별위원회를 가동하면서 지역 대립 구도를 깨기 위한 방안으로 권역별 비례대표제, 독일식 정당명부제 도입 등을 제안했다.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각 정당이 비례대표 후보 명단을 작성할 때 지금처럼 하나의 명단을 만드는 게 아니라 지역별로 후보명단을 작성하고 해당 지역의 정당 득표율에 따라 비례대표를 배분하는 시스템이다. 그러나 이같은 방안에 대해 특정 정당이 한 지역에서 ‘몰표’를 받는 특수한 정치상황에서 지역별 득표율로 비례대표를 배분한다고 해도 지역편중 현상을 해소하기에는 한계가 있다는 지적이 집중적으로 제기됐다.

또 권역별 비례대표제는 비례대표 의석수를 대폭 늘리지 않는 한 효과를 거두기 어렵다는 점에서 자신의 선거구가 사라질 위기에 놓인 지역구 의원들의 지지를 받지 못한 채 도입이 무산됐다.

독일식 정당명부제는 지역구 후보와 정당에 각각 한 표씩 투표하는 1인 2표제라는 측면에서 현행 정당명부제와 같지만 정당득표율에 따라 전체 의석수가 결정된다는 점에서 차이가 있다. 이 제도는 정당지지율과 의원 숫자가 비슷한 비율로 맞춰져 지역주의 극복에 도움이 된다는 장점이 있다. 그러나 이 제도 역시 비례대표 숫자가 늘어나게 돼 선거구 조정이 필요하다는 이유로 환영받지 못했다.

16대 총선 당시에는 상대방 텃밭에서 떨어진 후보 중에서 가장 많은 득표율을 올린 후보를 비례대표로 우선 구제하는 ‘석패율 제도’가 지역구도 해소 방안으로 떠올랐다. 당시 민주당이 도입을 적극적으로 추진했지만 민주당의 영남권 진출을 우려한 한나라당의 반대로 무산됐다.

2005년에는 한나라당이 ‘영남당’이라는 부정적 이미지를 극복한다는 이유로 석패율 제도를 정치개혁안으로 채택했다. 하지만 “지역구와 비례대표 후보로 동시에 입후보하는 것은 국민 정서에 맞지 않다”는 여론에 밀려 제도화시키지 못했다.

앞서 김대중 정부 시절에는 특정 정당이 서울, 부산, 대구 등 광역 선거구에서 3분의 2 이상의 의석을 확보하지 못하도록 제한하는 ‘지역 상한선제’가 정치권과 학계에서 논의됐으나 유권자들의 선택권을 제한할 수 있다는 논란이 일자 논의 자체가 중단된 바 있다.

김백기기자 bki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