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사진=임정현기자

장사익(60). 그의 노래는 가요와 재즈, 전통음악을 넘나들어 뭐라 장르를 한정할 수 없다. ‘대안(代案)가수’, ‘한국토속 재즈싱어’ 등 여러 수식이 붙지만 모두가 어딘지 좀 허하다. 그냥 ‘소리꾼’이라고 하는 게 가장 틀리지 않아 보인다. 그 또한 이에 동의한다.

소리꾼 장씨가 ‘환갑잔치’를 겸해 세계 공연예술의 중심 뉴욕으로 ‘꽃구경’에 나선다. 18일 뉴욕 시티센터에서 세계적인 월드뮤직 기관인 미국 뉴욕 월드뮤직 인스티튜트(WMI·World Music Institute)와 공동주최로 ‘보이지 투 헤븐(Voyage to Heaven·하늘로의 여행)- 장사익 소리판 꽃구경’을 공연하는 것.

10일 오후 검회색 화강암바위 주변 푸른 소나무숲 사이로 진달래, 개나리는 물론 복사꽃, 앵두꽃이 활짝 핀 인왕산을 창앞에 그림처럼 두르고 있는 서울 서대문구 홍지동 장씨의 집을 찾았다. 마흔 다섯에 노래를 시작했지만 어느덧 이순(耳順)에 이른 그에게는 모든 것이 노래로 들리는 듯했다.

장씨를 처음 만난 것은 그가 전통국악 단체인 이광수씨의 노름마치에서 태평소를 연주하던 1994년 어름이다. 술도 담배도 못하고 그저 숫기없이 한 구석에 앉아 자기 차례에 일어나 연주하고, 끝나면 또 묵묵히 앉아있던 그였다.

공연 뒤풀이서 사람들이 권하면 쑥쓰럽게 일어서 ‘대전블루스’ ‘동백아가씨’ 등 이른바 ‘뽕짝’을 온 몸을 쥐어짜며 기막히게 불러 좌중을 압도하는 데 그런 ‘끼’가 어디에 숨어있는 지 도대체 알 수 없었다. 그가 이해 늦가을 “재주가 아깝다”며 후배들에게 떠밀려 오른 ‘장사익 소리판-하늘가는 길’이 공전의 히트를 기록하며, 한국 대중가요의 ‘대안’이라는 뜻의 ‘대안가수’로 불리며 일약 대중적 스타로 떠올랐다.

그러나 그는 그 때나 지금이나 거의 달라진 것이 없다. 흰머리, 흰수염, 주름이 좀 늘었을 뿐 허름한 남방과 바지 그대로다. 술, 담배도 여전히 못한다. 그래서 그가 좋지만 ‘어떻게 변한 게 없느냐’고 몽니로 말머리를 꺼냈다.

“평생 미성년자지요. 고교 때 서울로 올라왔는데 아버지가 서른 안쪽까지 술, 담배, 여자를 가까이 하지말라고 했어요. 그래서 근처에도 안갔지요. 서른 넘어 결혼할 때까지 여자한테도 안갔고, 술 담배는 아직도 못합니다.”

술과 담배는 예술의 비타민 A(알코올), C(시가렛), 그리고 여성은 예술적 영감의 원천으로 통하는 데 그걸 못했느냐고 놀리자 장씨는 “그래서 마흔다섯에 뒤늦게 아트(art)를 하게 됐다”고 특유의 넉살로 받았다.

지난 4일 그가 서울 종로구 평창동에 가스충전소 설치를 반대하는 ‘님비’운동에 나서 놀랐다고 꼬집자 그는 “우리 동네 일이 아니다”고 정색을 하며 반박했다.

“이외수 선생이 춘천에 있다가 화천으로 이사를 갔잖아요. 그래서 화천이 문화지역으로 크게 떴지요. 평창동은 사물놀이의 김덕수, 재즈음악가 김준, 가수 윤종신, 화가 김구림·윤명로·이종상·임옥상, 작가 김수현·박범신 선생님 등이 살고 있는 ‘예술인 마을’이에요. 또 교통도 불편한 외곽이니만큼 가스충전소는 좀 더 교통이 편리한 지역에 짓고 여기에는 박물관이나 미술관, 공연장이 더 어울린다고 봅니다.”

장씨는 “문화예술인들이 사는 동네 답게 빨간띠를 두르는 대신 노래와 음악, 시와 그림 등 문화예술로 주장을 펴나갈 것”이라고 말했다.

뉴욕공연으로 말을 돌렸다.

“뉴욕에 협연으로 몇번 갔습니다. 단독공연이 욕심이 나서 2007년 한번 모험을 했었지요. 성과가 괜찮았나 봐요. 이 공연이 끝나고 WMI가 제안해서 기꺼이 공연을 승락했는데 여간 힘들지 않네요. (공연기획을 전담하고 있는) 집사람(부인 고완선씨)은 1월부터 뉴욕 맨해튼에 방을 얻어 고생하는 등 거의 곰이 마늘만 먹고 백일기도를 드리는 심정입니다.”

그는 2월말 뉴욕에서 현지 기자회견을 열고 사전 홍보에 나서기도 했다. 당시 기자회견 내용을 묻자 장씨는 “꼬부랑말을 잘 모른다”며 “당시 통역을 맡았던 기타리스트 정재열(실용음악) 백제예술대 교수에게 물어보라”고 했다.(인터뷰가 끝난 뒤 정 교수에게 전화를 걸었더니 그는 “뉴욕타임스 등 유력언론을 비롯해 빌리지 보이스와 같은 외국 전문지 기자 80여명과 한국 특파원 등 국내 언론 및 한국계 언론 관계자 50여명이 모였다”며 “이날 장 선생이 ‘찔레꽃’ ‘하늘가는 길’ ‘봄비’ ‘아리랑’ ‘대전부르스’ 5곡을 불렀는데 한 현지기자가 ‘당신의 목소리는 가사와는 관계없이 소리만으로도 충분히 감정을 전달한다. 전화부를 읽더라도 아름다운 서정적인 노래가 될 수 있겠다’극찬했다”고 전했다.)

권위있는 단체와 공동주최인데다가 이렇게 치밀하게 준비가 진행되면 어려움이 없을 것 같은 데 엄살이 심한 것 아니냐고 비틀자 그는 “돈이 문제지”라며 “환율이 치솟아 표가 다 팔려도 적자”라고 했다. 얼마나 손해가 나겠느냐고 파고들어 가자 “억대가 넘을 것”이라며 손가락 두개를 폈다. 그 정도 손실을 감내할 만큼 돈 많이 벌어놨느냐고 어깃장을 놓자 “없으니까 문제지”라고 장난스럽게 깔깔대며 “한번 환갑잔치 뉴욕에서 흐벅지게 하는 것도 나쁘지 않잖아. 부도나서 몇십억씩 망가지기도 하는 데 세상에 나와서 한번 이런 ‘기마이’(돈이나 물건을 잘 쓰는 기질을 뜻하는 일본어 きまえ·氣前의 변형) 쓰는 것도 괜찮지 않느냐”고 되받고서는 이내 진지한 표정으로 말했다.

“엄홍길이나 허영호씨 보세요. 손가락, 발가락 잘라 내트리고 친구가 옆에서 죽어가도 목숨 걸고 산에 오르잖아요. 저도 그런 마음입니다. 미국 주류 사회에 내 노래를 보여주고 싶어요. 제 노래는 한국 전통가요도 아닙니다. 계보도 없어요. 그냥 ‘무대뽀’로 하는 겁니다. 좋게 봐주면 창조일 수 있겠지요. 이런 것을 한번 같은 시대에 살고 있는 외국(의 주류) 사람들과 나누고 싶습니다. 정말 된장 하나 싸들고 태평양 건너가는 겁니다.”

장씨의 노래는 그의 말대로 국악도 아니고, 대중가요도 아니고, 재즈도 아니다. 뭐라고 장르를 한정짓기 어렵다. 그는 악보에 따라 노래 부르지 않는다. 몇번이고 가사를 읊조리는 가운데 저절로 자신의 몸속에서 만들어지는 호흡에 따라 노래를 부른다. 그런 다음에야 악보가 ‘채록’된다. 노래가 먼저 불러지고 나중에 악보가 생기는 셈이다. 어떤 장르에도 속하지 않는 이런 그의 노래는 그래서 모든 장르를 포함할 수 있다. 그를 새로운 음악을 위한 ‘대안’이라고 부르는 이유도 여기에 있다.

장사익 음악의 본질에 대해 묻자 그는 “그냥 하는 거지. 본질을 알고 하는 게 어디있느냐”고 했다.

“하다보니 여기까지 왔고, 지내고 보니 꿈꿔왔던 것이네요. 노래가 제가 세상에 나온 이유같기도 하구요. 그저 풍각쟁이로 살면서 사람들에게 즐거움 주는 어릿광대로 나왔습니다.”

그는 “마흔다섯에 시작했으니 최소한 인생의 절반이상 노래하려면 아흔까지는 해야 한다”며 “할아버지 ‘꼰대’가 무대에서 노래하는 게 얼마나 재밌겠느냐”고 반문했다. 아흔에 노래가 되겠느냐고 하자 그는 “90 할아버지가 춤추는 것 보지 않았느냐”며 “노래도 안될 것이 없다”고 자신했다.

“서있기만 해도 춤인 아흔 거장들이 얼마나 많습니까. 노래도 그렇게 할 수 있어요. 지금의 테크닉, 파워는 없겠지만 읊조리는 것만으로도 충분히 노래가 될 수 있습니다. 아흔 시인들의 시가 바로 노래 아닙니까. 노래를 안불러도 노래가 들리는 그런 인생을 살고 싶습니다.”

그의 거실에는 양쪽 구석에 어쿠스틱 기타, 가운데 신디사이저와 봉고, 멀찍이 징과 장구가 있다. 보면대에는 어울리지 않게 두툼한 추억의 대중가요집이 놓여있는 데 ‘삼다도 소식’이 펼쳐져 있다. 평소 대중음악을 즐겨 부르냐고 묻자 그는 “대중음악은 현재 이 시대를 살고 있는 사람의 소리”라며 “공연 직전이 아니면 공연 레퍼토리를 부르지 않는다”고 했다.

“옛날 권투선수들이 타이틀 매치 하고 나면 푹 쉬잖아요. 김연아 선수도 그럴 거구요. 시합 앞두고 캠프차리고 연습하지 말고 평소에 하라고 하는 데 그러면 진이 빠져 정작 시합에서 힘을 못내요. 대중음악은 제게 그런 겁니다. 심심하면 부르면서 테크닉 돌리고 호흡 한번 뿌려보는 거지요. 방마다 노래책, 기타 등을 놓고 유행가의 감으로 (대중의) 기분을 느낍니다.”

그는 작은 공연은 2, 3일 전, 큰 공연은 1주일 전부터 ‘세게 (소리를) 지르는’ 연습을 시작한다고 했다. 그러면 목이 ‘가는(쉬는)’데 다음날 10%, 그 다음날 20%씩 좋아지기 시작해 공연 당일에는 컨디션을 100% 끌어올릴 수 있다고 나름의 공연준비 노하우를 소개했다. 얼핏 폭포수 밑에서 소리를 질러 피를 한바가지는 쏟아야 득음을 할 수 있다는 전통의 수련방법을 닮았다.

그는 11일 낮 자신의 집에서 멤버들을 모아 한바탕 놀고 12일 뉴욕으로 떠나면 공연 때까지 컨디션을 100% 끌어올릴 것이라고 했다.

“인생은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0)라고 봅니다. 감히 건방지게 말한다면 하늘과 땅, 밤과 낮, 삶과 죽음이 붙어있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제 노래에 죽음에 관한 게 많은 데 삶을 역설적으로 노래하는 겁니다. 대낮에는 볼 수 없는 작은 불빛이 밤에 얼마나 희망이 됩니까. 대낮의 삶보다 밤의 죽음을 노래하는 게 역설적으로 삶의 가치를 가장 밝게 알리는 거지요. 플러스 마이너스 제로, 그 하얀 백지 위에 울리고 맺히고 탁 풀어버리는 ‘행복을 뿌리는 판’으로 한국의 음악이 세계적인 월드음악임을 미국의 심장 뉴욕에 분명히 새겨 놓겠습니다.”

장씨는 5월12일 세종문화회관 대극장에서 ‘따듯한 봄날 꽃구경’(02-396-0514)으로 귀국보고회를 대신할 예정이다.

편집국 부국장 hyeon@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