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채소밭’ 청정 이슬과 구슬땀의 결정체

이미지 크게보기雲海 옆 채소밭 태양이 솟아오를 때면 안반덕의 고랭지 채소밭은 황홀한 비경을 연출한다. 녹색의 배추밭 아래로 펼쳐진 운해는 장대한 호수를 연상시키며 별천지를 이룬다.

즐거운 민속 명절 추석을 앞두고 고랭지 채소 수확이 한창이다. 강원도 산간지역 해발 1000m 이상 고지대에서 영롱한 이슬을 먹고 자란 소담스러운 배추다. 국내 최대 규모의 강원 강릉시 왕산면 대기4리 안반덕(해발 1100m)의 고랭지 채소밭. 일주일 전부터 시작된 배추 뽑는 작업은 앞으로 한 달간 지속될 예정이다.

안반덕으로 가는 길은 마치 천국으로 올라가는 것과 같은 감동을 준다. 용평스키장에서 도암댐 방향으로 6㎞ 정도 달리면 왼쪽으로 안반덕 이정표가 나온다. 이곳에서 안반덕의 피덕령까지 2.7㎞ 구간은 굽이굽이 급경사다. 신선한 공기로 호흡하며 한참을 오르다 보면 울창한 숲 사이로 파란 하늘이 불쑥불쑥 나타난다. 하늘로 오르는 상큼한 길이다.

‘안반’이란 떡메 칠 때 쓰는 넓고 가운데가 오목한 떡판을 말한다. ‘덕’은 고원의 평평한 땅으로, 안반덕은 곧 가운데가 움푹 들어간 고원의 넓은 땅을 일컫는다. 고랭지 채소밭으로 널리 알려진 안반덕은 초여름이면 하얀 감자꽃, 이맘때면 청정한 배추가 파도처럼 너울너울 춤을 추고, 겨울이면 온통 순백의 눈꽃 세상을 만들어낸다.

사계절이 저마다 특색을 지니며 아름다운 풍경을 자랑하는 안반덕엔 ‘1996년 9월 무장공비 침투지역’이라고 적힌 낯선 표지판이 있다. 잠수함을 타고 강릉의 안인진으로 침투했던 북한의 공비들이 이곳 안반덕에서 하룻밤을 보낸 뒤 용평리조트 방향으로 도주한 것을 상기시키기 위해 세워진 것이다. 그만큼 인적이 드문 오지 중의 오지다.

배추 출하가 한창인 이곳 대기4리 일대 고랭지 채소밭은 전체 규모가 200여㏊나 되는 어마어마하게 넓은 지역이다. 도암댐 쪽에서 올라와 피덕령 입구의 마을회관을 중심으로 오른쪽은 안반덕, 왼쪽으로는 고루포기산(해발 1230m) 전체가 채소밭이다. 배추밭 사이로 난 농로는 잘못 들면 길을 잃을 만큼 미로처럼 연결돼 있다.

이곳 고랭지 채소밭에서는 감자와 배추를 매년 교대로 경작해왔다. 안반덕에 감자를 심으면 고루포기산에는 배추를, 이듬해에는 반대로 안반덕엔 배추, 고루포기산에는 감자를 번갈아 재배했다. 그러나 최근 들어서는 주로 배추를 많이 경작한다. 감자 농사에 비해 배추가 경작 기간이 짧고 일손이 덜 가기 때문이다.

안반덕에서의 작업은 새벽 3시부터 시작된다. 싱싱한 야채를 소비자들에게 일찍 공급하기 위해서다. 하늘에선 주먹만한 별들이 금방이라도 우수수 쏟아질 것만 같다. 헤드 랜턴을 쓴 인부들은 칠흑 같은 어둠 속을 마치 반딧불이가 유영하듯 이리저리 이동하며 일을 한다. 뽑힌 배추는 뽀드득뽀드득 소리를 내며 세 포기씩 망에 담겨진다.

하늘 아래 첫 동네 안반덕에서 맞이하는 여명은 가히 환상적이다. 동해의 푸른 바다 속을 뚫고 솟아오른 붉은 태양은 가슴을 두근두근하게 만들고, 어느 사이엔가 슬금슬금 계곡을 타고 올라온 운해는 세상을 한꺼번에 집어삼킨다. 구름 위 별천지가 바로 여기다. 사진작가나 여행가들이 왜 이곳을 즐겨 찾는지 알 수 있다.

이 마을 주민들은 아름다운 풍광만큼 그리 행복하지만은 않다. 농사일로 얻는 소득이 예전만 못하기 때문이다. 올해 들어서는 조류독감에다 광우병 파동으로 채소류에 대한 소비가 줄어 이들에게까지 직접적인 영향을 끼쳤다. 작황은 좋지만 고생한 만큼 제대로 된 값을 받지 못해 안타까워하고 있다.

고랭지 채소 출하 작업이 끝나면 이제 마을 사람들은 잠시 안반덕을 떠나야 한다. 겨울이 되면 많은 눈이 내릴 것이고, 워낙 고지대이다 보니 길도 끊겨버릴 거다. 그래서 이들은 강릉의 또 다른 보금자리를 찾아 내려간다고 한다. 바깥세상 사람들은 풍경이 아름다워 이곳을 찾지만 안반덕 사람들은 생존을 위해 안반덕에서 고된 삶을 살아가고 있는 것이다.

사진·글 = moonpark@munhwa.com

이미지 크게보기그림 같은 마을 안반덕의 고랭지 채소밭이 붉고 파란 지붕과 조화를 이뤄 이국적인 풍경을 보이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