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무현 정부가 말로만 ‘기업하기 좋은 나라’를 외치고 실제론 기업들의 목소리에 귀를 막았다는 지적은 수치로도 증명된다. 경제5단체가 공동으로 정부에 건의했던 규제개혁과제 수용률이 노무현 정부 들어 급격히 악화됐기 때문이다.

문화일보가 21일 대한상공회의소 기업애로종합지원센터에 의뢰, 지난 2000년 이후 지난해까지 19차례에 걸쳐 경제5단체 공동 명의로 정부에 건의했던 1239건의 규제개혁 건의과제 수용률을 조사한 결과 김대중 정부 기간 동안 70~80%에 달했던 수용률은 노무현 정부 들어 60%아래로 추락하더니 10~20%대까지 떨어진 것으로 나타났다.

실제로 노무현 정부 기간(2003~2007년) 평균 수용률은 37.3%였다. 경제단체가 10건을 건의해 반영된 게 4건도 채 안됐다는 의미다. 이는 김대중 정부 기간(2000~2002년)의 69.1%보다 현저히 낮은 수준이다. 사실상 재계만의 일방적인 ‘공허한 외침’이었던 셈.

노무현 정부가 재계 건의에 귀를 막은 것은 노무현 정부 정책 기조의 한계 때문이라는 지적이다. 대기업을 개혁의 대상으로 삼으면서도 동시에 기업하기 좋은 환경을 만들겠다는 것 자체가 앞뒤가 맞지 않는다는 얘기다.

비수용된 건의안 중 상당수가 수도권 규제, 대기업 규제, 노동 규제 등에 관한 내용들이다. 재계의 건의를 수용할 경우 자칫 노무현 정부의 정책 기조를 흔들 수 있다는 우려가 정부 부처 저변에 깔려있었다는 것이다. 결국 규제개혁을 위해 국무총리산하에 설치한 규제개혁위원회는 재계 건의안 중 상당수를 장기 검토 과제로 남기기도 했다. 노무현 정부에서는 안됐지만 새 정부에서는 수용이 가능한 과제들이다.

한 경제단체 관계자는 “규제개혁위원회쪽에선 나름대로 규제 타파를 위해 ‘동분서주’ 노력했지만 결국엔 규제 폐지를 결정하는 주무 부처 단계에서 제동을 거는 경우가 많았다”며 “이제 재계도 노무현 정부와의 기나긴 줄다리기에 지쳤다”고 말했다.

노무현 정부 5년 동안 시달려온 ‘규제악몽’을 새 정부 들어 훌훌 털어낼 수 있을지 경제계가 주목하고 있다.김만용기자 mykim@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