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천지현황(天地玄黃:하늘과 땅은 검고 누르다)하고 우주홍황(宇宙洪荒:우주는 넓고 거칠다)하니, 일월영측(日月盈仄:해와 달은 차면 기운다)하고 진숙열장(辰宿列張:별과 별자리들은 열을 이루어 펼쳐져있다)이라.”

‘똑딱’하는 순간 5자가 넘는 한문 문장을 외는 80세의 ‘한문 암송왕’이 탄생했다. 한국기록원은 오억근(80·사진)씨가 3077자의 한문 문장을 9분35초만에 암송, 대한민국 최고의 한문 한자 암송기록을 세웠다고 30일 밝혔다.

오씨는 지난 2일 서울 마포구의 한국기록원에서 천자문, 소학, 명심보감, 사서삼경 등의 한문고전 12편에 실린 한문 2192자에 토 885자를 붙여 모두 3077자의 문장을 9분35초만에 암송했다. 오씨의 암송을 들었던 한국기록원 김덕은 원장은 “논어, 맹자, 대학, 중용, 명심보감 등 주옥같은 내용을 일정한 음률로 빠르게 암송하는 데 놀랐다”며 “요즘 젊은이들이 즐기는 랩을 듣는 것보다 더 흥겹고 즐거웠다”고 소감을 밝혔다.

40년간 공무원으로 일하다 퇴임한 뒤 성균관 전의(典儀)를 지낸 오씨가 한문 암송 기록도전에 나선 이유는 10년 전 우연히 라디오에서 들은 사연 때문이다.

오씨는 “영문 암송 덕분에 영어를 유창하게 말하게 된 중국인의 사연을 듣고 어린 시절 글방에서 천자문을 소리내어 읽던 생각이 났다”며 “어려운 형편에 중학교도 못갔지만 40여년 동안 붓과 한문 고전을 손에서 놓은 날이 없었기에 나도 한번 해보자는 생각이 들었다”고 도전 이유를 설명했다.

이후 10년을 직장과 집을 오가는 출퇴근길에서, 퇴근 후 옥상에서 한문 암송에 주력했던 오씨는 올해 대한민국 최고기록을 세워 10년 수행의 염원을 이뤘다.

오씨는 “나이가 점점 들어가니 기억력도 많이 떨어지고 건강도 안 좋아져 할 수 있을까 의심도 했었다”면서 “오히려 한문 암송을 시작한 이후에 기억력도 좋아지고 건강도 회복됐다”며 기뻐했다. 그는 “이번 도전이 끝이 아니라 앞으로 더 큰 기록을 세울테니 기대해달라”고 말했다.

한동철기자 hhandc@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