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경제인연합회와 한국경제연구원이 17일 발표한 대(對)정부 건의보고서 ‘규제개혁 종합연구’는 중층적인 의미를 지닌다. 우선, 규제를 생산해온 정부의 요청에 의해 규제 대상자인 재계가 저울질해온 사실부터 이채롭다. 재계가 4개월에 걸쳐 등록규제 5025건 전부를 일일이 따져본 것도 유례없는 일이다. 우리가 규제개선 대안의 집대성으로 평가하는 것도 그 때문이다.

전경련은 등록규제 가운데 516건을 폐지, 1148건을 개선 대상으로 분류했다. 5025건 가운데 1664건, 곧 3분의 1가량이 경제와 기업의 발목을 잡아왔으니 ‘규제 공화국’이라는 비유가 적실하다. 전산망이 완비됐는데도 건강보험증 발급을 강제하고, 시각장애인에게 흰색 지팡이만 허용한 예처럼 황당한 규제가 드물지 않다. 책상머리에서 나온 그런 규제가 실효적일 리 만무하다.

문제는 역시 수도권, 경제력집중, 토지·주택, 노동, 서비스, 환경분야 등의 덩어리 규제들이다. 이런 규제 네트워크가 한국 경제를 ‘저성장 트랩’에 가둬 국가의 신뢰도까지 속락시켜왔다. 16일 발표된 외국인 직접투자 유치 실적에서 한국은 지난해 207개국 중 48위로 2002년 29위에 비해 4년 만에 19계단 추락했다.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의 국가경쟁력 순위는 같은기간 29위에서 38위로, 또 세계은행이 산정한 기업환경지수는 지난해 23위에서 올해 30위로 밀려났다. 노무현 정부의 반(反)시장·반기업 정책기조를 제쳐두고는 그 요인을 짚어낼 수 없는 역(逆)주행 대열이다.

“한국은 규제 개수가 많을 뿐 아니라 규제의 품질이 나쁘다”고 한 김종석 한경연 원장의 지적은 탈(脫)규제가 지금까지 ‘산 넘어 산’이었고 앞으로도 그럴 개연성을 비쳐준다. 이번에 폐지 혹은 개선 대상으로 적시한 규제 리스트를 실제로 없애거나 다듬는다 해도 세계은행 기업환경지수가 30위에서 15위쯤으로 오를까말까하다고 한다. 미등록 규제, 은닉 규제, 체감 규제 같은 ‘보이지 않는 규제’까지 과감하게 쳐내지 않는 한 기업환경의 개선은 입에 발린 말일 따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