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미 자유무역협정(FTA)이 미국 대통령의 통상촉진권한(TPA)만료 하루 전인 지난 30일 공식서명됐다.

이에 따라 한·미 FTA는 미 의회 비준과정에서 협정문 수정 없이 찬성·반대로만 통과여부가 결정될 수 있을 것으로 전망된다.

협정문 서명 때 카를로스 구티에레스 미 상무장관은 “한·미 FTA는 미국이 지난 15년간 체결한 무역협정 가운데 상업적으로 가장 의미있는 협정”이라며 “미 행정부는 가능한 빠른 시일 내에 의회가 이번 한·미 FTA로 인한 미국의 이득에 대해 확신할 수 있도록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민주당 출신의 낸시 펠로시 하원의장을 비롯한 민주당 지도부들이 서명식 전날 ‘한·미FTA를 지지할 수 없다’는 성명을 발표, 향후 험난한 의회 비준과정이 예상된다.

◆“몇표 차로 비준여부 결정될 듯” = 워싱턴의 통상전문가들은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처럼 미 의회 비준과정에서 기존의 FTA협정은 몇표 차이로 통과돼 왔다”며 “이번에도 백악관은 의회의 면밀한 표계산을 거쳐 승산이 있는 시점에서 비준을 요청할 것”이라고 내다봤다. 민주당 지도부의 반대성명, 유력한 대선주자인 힐러리 클린턴 상원의원의 반대 의사 등이 향후 전도를 어둡게 하고 있지만 FTA 비준여부는 공화당표의 결집과 민주당표의 분산 여부에 따라 결정될 것으로 전망된다.

미 행정부는 FTA를 둘러싸고 늘 의회의 반대에 부딪혀왔다. 실제 지난 90년대 초NAFTA 비준과정에서 민주당 출신의 빌 클린턴 대통령은 의회 내 민주당의 반대에 봉착했다. 당시 미시간 출신의 데이비드 비니어 원내총무는 반대세력을 결집시킬 정도였다. 당시 클린턴 대통령은 하원에서 234표 찬성, 반대 199표로 NAFTA를 통과시켰다. 하지만 이는 공화당의 지원 덕분이었고 민주당 표만 보자면 찬성은 102표, 반대 156표였다. 이후 미국이 체결한 여러 FTA에 대한 미 의회의 찬반 표차는 갈수록 줄어들고 있다.

◆미 민주당 지도부 반발 = NAFTA 때처럼 이번 한·미 FTA 반대를 주도하는 민주당 핵심도 미시간 출신의 샌더 레빈 세입위원회 무역소위원장 등이다. 레빈 위원장을 포함한 민주당 하원 지도부가 29일 “현재 체결된 대로는 한·미 FTA를 지지할 수 없다”고 반대입장을 공식적으로 천명했다. 문제는 NAFTA 체결 시기는 클린턴 대통령의 임기 초였지만, 지금은 조지 W 부시 대통령의 임기 말이라는 점이다. FTA 같은 민감한 현안에서는 백악관의 주도면밀한 표계산과 장악능력이 요구되는데 이미 이민법 개혁안에서 좌초한 부시 대통령의 능력이 변수다.

벌써부터 민주당 출신의 펠로시 의장은 1일자로 끝나는 대통령의 ‘통상촉진권한’을 갱신해주지 않겠다고 못박는 등 통상현안에 대해서 행정부와 대립각을 세우고 있다. 특히 여기에 한국이 올 연말 대통령 선거를 치르게 되는 점도 변수다. 통상 미 의회는 상대국의 FTA 비준을 지켜본 뒤 비준에 응하기 때문에 한국 국회의 비준이 늦어질 경우 미 백악관도 의회비준을 먼저 요청하기 힘들 것으로 전망된다. 또 한국의 미국산 쇠고기 수입문제도 미 의회의 분위기를 크게 좌우할 것으로 보인다.

워싱턴 = 최형두특파원 choihd@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