심재륜 전 고검장은 인터뷰에서 1997년 김영삼 대통령의 차남 김현철씨와 정권의 실세였던 김기섭 안기부 기조실장을 구속하면서 겪었던 뒷얘기를 공개했다.

―김현철씨를 구속한 뒤 ‘나 같은 사람은 절대로 검찰총장이 될 수 없을 것’이라고 했는데요.

“제가 제가 검찰을 떠나며 퇴임사에서도 말했지만 불과 얼마 전까지만 해도 검찰의 가장 중요한 역할은 청와대의 의도가 담긴 소위 하명(下命)사건을 수사하는 것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습니다. 그런 사건은 거의 다 안기부나 경찰청 특수수사과 등 청와대 지휘를 받는 기관에서 넘어왔는데 깔끔하게 처리하면 명검사 소리를 들었습니다. 중수부장이 되기 전까지만 해도 중요사건의 수사 진행 상황은 물론 나중에 발표문까지 청와대와 사전에 조율을 했는데 김현철씨 사건 때 그런 과정을 무시했더니 난리가 났습니다. 당시 제 밑에 있던 수사기획관은 청와대 메모를 저한테 전달하지 못하고 갖고 있다가 기자한테 들켜 곤욕을 치르지 않았습니까. 그러니까 어떤 정권이라도 나 같은 사람은 검찰총장을 시킬 이유가 없다는 말이었습니다.”

―당시 청와대나 안기부 등으로부터 구체적인 외압이 있었습니까?

“김현철씨하고 현직 안기부 기조실장이 연루되다 보니 청와대뿐 아니라 안기부에서도 압력이 많았습니다. 수사가 한창 진행 중이라 기자들이 제방을 에워싸고 있는데 현직 안기부 고위간부가 대낮에 수표 다발을 들고 왔더라고요. ‘우리 부장님이 수사하느라 고생한다고 위로금을 보냈다’는 거지요. 그냥 뿌리치면 적개심만 유발하고 문제가 생기겠다 싶어 핑계거리를 생각하다가 ‘우리 조직의 특성상 나한테 주면 곤란하고 총장님한테 드리면 좋겠다’고 했지요. 그러자 그 간부가 ‘다들 그동안 잘 받던데 왜 그러십니까’ 그러더군요. 나중에 대구고검장으로 내려가니까 안기부 쪽에서 감시를 심하게 하더군요.”

―안기부의 금품공세는 김현철씨의 구속을 막기 위한 것이었습니까?

“청와대 쪽은 김현철씨의 구속을 막기 위해 움직이는데 안기부 쪽은 오히려 김기섭씨를 위해 맹렬히 뛰는 바람에 수사와 사법처리가 쉽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어쩔 수 없이 김현철씨를 먼저 소환, 구속하는 절차를 밟아 김기섭씨의 구속을 관철시킨 겁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