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사진=감낙중기자

최근 법조계 분위기가 뒤숭숭하다. 특정 사건 수사를 둘러싸고 검사의 자질문제가 잇따라 불거지는 한편 형사소송 절차를 둘러싼 법원과 검찰의 갈등도 심화되고 있다. 역대 검찰 간부 중 후배 검사들이 가장 존경하는 사람 중 한명인 심재륜 전 고검장을 만나 최근 검찰의 문제와 법조계의 현안 등에 대해 들어 보았다.

―최근 제이유사건 수사를 맡은 검사가 피의자에게 위증을 강요했다는 폭로가 물의를 빚으면서 검사의 자질 문제가 거론되고 있습니다.

“제가 초임 때는 3명의 검사가 같은 방을 썼는데 선배들이 다방에서 커피를 시켜 놓고 피의자가 보는 앞에서 다방 종업원과 희희덕거리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시대가 바뀌지 않았습니까. 아무리 경험이 적은 검사라고 하지만 피의자를 앞에 두고 손톱을 깎는 행동까지 했다는 것을 보면 검사의 자질도 달리고 자세나 양식에 대한 교육이 소홀한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듭니다. 검사에게 가장 중요한 것은 피의자를 승복시켜야 한다는 것입니다. 저도 수많은 사람을 구속시켰지만 한번도 피의자가 저를 원망한다는 얘기를 들어본 적이 없습니다.”

―말씀하신 대로 검사들의 자질이 달리는 이유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검사 수가 늘어나다 보니 그런 점도 있겠지요. 늘어나는 수요를 충족하려다 보니 법조인 마인드가 갖춰지지 않은 비법과대생들이 늘어나는 것도 한 원인이라고 할 수 있고…. 가장 중요한 것은 검사로 임용하면서 자질이랄까 심성 테스트가 이루어지지 않는 것입니다.”

―몇년 사이 검찰의 수사를 둘러싸고 잡음이 부쩍 많이 들립니다.

“검사들의 실력도 떨어지고 수사에 치밀성이 부족한 것 같습니다. 빨리 실적을 거둬야 하니까 무리수도 많이 두는 것 같습니다. 과거에는 왜 6개월씩 잠복하고 그랬겠습니까. 한대 쥐어박고 말지…. 요즘은 실력도 인내심도 부족한 것 같습니다. 제이유사건 같은 경우는 수사 전체에 문제가 있는 것 같습니다. 사건의 본질이랄 수 있는 권력과의 유착이나 이런 것은 없고 배임, 횡령 등 모두 곁다리 아닙니까? 살인사건이라 하더라도 증거가 없으면 수사를 포기해야 하는 겁니다. 그런데 요즘은 미리 찍어놓고 하다보니 문제가 생깁니다. 셋만 불어라 나머지는 봐주겠다. 계좌추적하고 탈세조사해서 국세청에 통보하겠다고 협박하는 일도 다반수인 것 같고…. 어디에 무슨 증거가 있다는 혐의를 갖고 압수수색을 하는 게 아니라 일단 압수수색을 해서 증거를 찾겠다는 식입니다. 제이유사건 보십시오. 회사를 완전히 망가뜨린 것 아닙니까. 저는 이용훈 대법원장의 공판중심주의 운운하는 거 모두 마음에 안들지만 단 한가지 압수수색 영장 함부로 떼주지 말라는 것 이것은 정말 찬성합니다.”

―이용훈 대법원장이 추진 중인 공판중심주의의 문제점은 무엇이라고 생각하십니까?

“지금의 재판체계도 분명히 공판중심주의로 돌아가고 있는데 갑자기 이를 강조하는 바람에 국민들로 하여금 현재는 전혀 그러지 않는 것 같은 착각을 일으키게 하고 있습니다. 그 배경에 판사 패권주의가 있다는 의심도 떨쳐버릴 수 없고요. 아무래도 사법체계의 중심이 영장단계에 있으면 역학관계상 검사의 힘이 세지고 공판단계에 있으면 판사의 힘이 세질 수밖에 없으니까요. 그렇지만 미국이나 우리는 제도뿐 아니라 법감정 내지 전통도 다르거든요. 불구속 재판 운운하지만 우리나라 기준으로 보면 모든 범죄는 초동에 진압해야 합니다. 아무리 나쁜 사람도 3년 지나면 구속도, 유죄판결도 받기 힘든 게 현실 아닙니까? 미국이나 독일은 재판을 3년 이상 끌어도 법정구속하고 사형까지 시킵니다. 우리나라에서는 한번 불구속하면 영원히 구속은 불가능합니다. 판사가 볼 때 정말 문제가 있다고 생각하면 기소 후에 재판과정에서도 얼마든지 석방할 수 있습니다. 판사가 피고인을 풀 수 있는 방법이 10개쯤은 되는데요.”

―1991년 서울지검 강력부를 창설,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많은 조직폭력배를 구속했는데 그때 구속된 김태촌씨가 영화배우를 협박한 혐의로 최근 기소됐습니다.

“우리가 범죄와의 전쟁을 시작할때 우리나라의 조폭이 마피아의 초기 단계에 접어들고 있었습니다. 이승완이라는 사람이 호청련을 전국 조직으로 결성하고 일본 오사카(大阪)에 지부도 만들면서 전국 조폭의 80%가 조직화되고 있었어요. 현직 안기부 고위 간부도 정치적 목적으로 밀어주고 있었습니다. 범죄와의 전쟁을 통해 마피아 초기단계를 분쇄했다고 평가합니다. 우리나라가 마약범죄에 있어 세계적인 모범국가가 된 것도 그 때문입니다. 그런데 김대중 정부 들어 상당수 조폭세력이 다시 부활하고 말았습니다. 특히 벤처 붐을 타고 경제력까지 갖추게 된 것이 요즘 조폭세계의 문제입니다.”

―조직폭력이 기업화되고 있다면 심각한 일일텐데요.

“전통적으로 폭력배라는 것이 시장에서 텃세를 부리는 행태에서 출발한 것 아닙니까. 1980년대 들어 경제가 부흥하자 밤 업소와 같은 유흥가를 장악하면서 연예계와 연결이 됐거든요. 그러다 가끔 정치 쪽의 요청에 따라 전당대회 같은 데로 움직이는 정도였는데 벤처 바람이 불자 쉬운 돈벌이 방법이 생긴 거죠. 이런식이었어요. 엔젤그룹에 청와대 등 권력기관 유력인사들의 이름을 올려놓고 펀드를 만들어 홍콩 같은 데서 검은 머리의 외국인을 데려다 회사를 차린 뒤 코스닥에 상장해서 한탕하고 튀는 겁니다. 그동안 문제된 벤처비리 사건이 모두 이런 겁니다. 조폭들이 벤처업계에 깊숙이 침투해있어요. 몇년 전에 금감원 국장이 자살한 사건이 있었는데 저는 개인적으로 자살로 보지 않습니다.”

―조폭의 세력이 그렇게 커졌다면 수사과정에서의 외압도 만만치 않았을 것 같습니다. 게다가 조폭들과 술을 마시거나 골프를 쳐서 물의를 빚는 판·검사들도 있고요.

“제가 범죄와의 전쟁을 할 때도 격려를 빙자해서 수사상황을 알아보려는 사람들이 많았습니다. 그쪽과 유착돼 있는 사람이라는 것을 뻔히 아는데 ‘빨리 안잡고 뭐하냐’고 해요. 떠보는 거죠. 그러다 보니 김태촌 등 조폭 쪽에서도 우리 움직임을 손바닥 들여다보듯 알고 있었습니다. 어느 조폭이 명함에다 무슨 파 두목, 부두목이라고 새기고 다닙니까. 건설회사 대표이사, 전무, 상무 이런 식이지요. 그러니까 순진한 판·검사들이 술도 먹고 엮이게 되는 것이지요. 특히 김태촌은 시쳇말로 한번 코 꿰면 절대 안놓습니다. 수사하던 검사가 장난 삼아 김태촌의 외제 시계를 하루 동안 차고 있다가 얼마나 고생을 했는데요.”

―대구 고검장 시절 대전 법조비리 사건에 항명, 해직되자 소송을 해서 복직하는 등 파란이 많았습니다. 아직도 대전 법조비리 사건이 김태정 당시 검찰총장 부인이 연루된 옷로비 사건을 덮기 위해 부풀려진 것이라는 생각에 변함이 없습니까?

“그럼요. 당시 제가 ‘항명’을 하지 않았으면 많은 무고한 판·검사들이 희생됐을 것입니다. 대전 법조비리 사건은 시종일관 옷로비 사건과 궤를 같이 했고 이희호 여사의 소환까지 거론되면서 청와대와 검찰 수뇌부의 이해가 일치했던 것이지요.”

―김태정 총장 등 ‘가해자’들과는 화해를 했습니까?

“화해의 대상이 아니라고 생각합니다. 언젠가 아는 사람의 자제 결혼식에 갔는데 마주쳤어요. 악수를 하자고 손을 내밀더군요. 나도 모르는 사이에 그손을 뿌리치게 되더군요.”

인터뷰=이상호 전국부장 soo-lj@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