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8년 5월 9일 아침. 아시아·태평양 국제 경제인회의 참석차 한국을 방문한 영국 기업인 리처드 번스타인은 광명 전철역 부근 음악밸리를 찾았다. 거리마다 클럽과 노상 음악 카페가 늘어서 있는 음악의 거리에서 조용한 분위기의 재즈 카페를 골라 와인 한잔을 마신다. 잠시 뒤 폭 31m의 널찍한 음악의 거리로 나와 거리의 악사들이 자유롭게 연주하는 팝, 록, 힙합, 댄스 음악의 흥에 흠뻑 취한다. 리처드는 음악의 거리를 500m 정도 걸으면 만날 수 있는 음악 공원 숲 벤치에서 여행으로 쌓인 피로를 푼다. 이어 세계 대중음악전시관, 음악방송국, 가요박물관, 전통 악기 공방 등을 차례로 둘러보고 뮤지컬 전용극장 표까지 예매한 뒤 회의가 열리는 부산행 고속철에 올랐다.

가상인물 리처드의 행적을 쫓다보면 광명시가 구상하고 있는 음악밸리의 윤곽을 미리 알 수 있다. 광명시는 2008년까지 경부고속철도 광명역 역세권인 일직동 7만여평을 음악의 생산과 유통, 소비, 각종 공연이 동시에 이뤄지는 국내 최초이자 세계적인 음악밸리로 만들 계획이다.

광명시가 야심차게 추진하고 있는 음악도시는 세계대중음악 전시관, 음악 클럽 및 카페, 음악관련 상품 판매장, 복합공연장, 음악 아카데미 등이 모여있는 이색 도시. 1년 365일 음악으로 가득찬 도시를 뜻한다. 한류의 실질적 콘텐츠를 채우고 새로운 음악 조류를 쏟아내 정보과학이나 문화, 예술의 영향력이 세계 질서의 새로운 축을 이룰 소프트 파워 시대에 대비하겠다는 포석이다. 대중음악 분야로 특화해 비틀스의 고향이자 세계적인 음악도시인 영국 리버풀 못지않은 ‘한국의 리버풀’을 실현할 계획이다. 고속철도에 이어 인천국제공항에서 광명역으로 연결되는 제2공항철도, 광명경전철 등 부채살처럼 뻗는 교통망이 들어서게돼 한류 문화의 발신기지가 될 수 있는 입지적 요소는 충분히 갖췄다.

최봉섭 광명시 정책개발팀장은 “음악도시에서 대중음악 분야의 최고 콘텐츠를 만들어내 침체된 음반 시장 활성화와 소프트웨어 산업 활성화의 기폭제가 되도록 할 방침”이라며 “한 자리에서 음악 창작과 음반 제작, 현장 판매 등을 할 수 있도록 해 기획사와 인디뮤지션을 입체적으로 지원하는 체제도 갖출 것”이라고 말했다.

가요박물관의 경우 ▲고 이난영, 남인수 등의 유성기 음반을 들을 수 있는 대중가요원로관 ▲70년대 DJ의 방송 모습 등을 재현하고 방송 내용을 직접 CD로 구울 수 있는 추억의 음악실 ▲대중가수 명예의 전당 ▲온라인 박물관 ▲골든디스크 전시관 ▲북한 대중가요관 ▲어린이 만화음악 체험관 등으로 꾸며진다.

광명시는 새로운 문화적 자원을 확보하기 위해 쿠바와의 교류도 추진하고 있다. 지난해 한국을 방문했던 릭 펠리페 쿠바 문화 산업교류협회 사무국장과 만나 향후 문화교류를 활성화하기로 했다. 재즈음악과 춤의 본고장이자 세계문화의 강력한 코드로 뜨고 있는 쿠바음악과 한국 음악을 접목하는 작업에 나서거나 각종 공연을 유치할 경우 광명이 쿠바음악의 아시아 허브로 자리잡게 될 것으로 보인다.

광명시는 음악을 경제적 유발효과를 창출하는 산업으로 육성하기 위해 지난해 5월 제1회 광명 월드 음악 축제를 연 데 이어 올 10월 혁신적 스타일로 제2회 월드음악 축제를 개최할 계획이다.

광명(光明)시에서 좋은 소리를 널리 전하는 광명(廣鳴)시로 변신하고 있는 광명시는 올해부터 생활 속 음악운동의 하나로 주민 1인 1악기 운동도 펼치고 있다. 광명시민들의 음악 선호도에 대한 실태조사를 진행한 뒤 시범적으로 5개 동에서 기타, 리코더, 하모니카, 오카리나 등 1인 1악기 배우기 강좌도 열 계획이다.

광명시에 앞서 꾸준한 투자를 통해 만화산업 등 문화 산업을 본 궤도에 올려놓은 부천시도 첨단 문화산업 도시로 바뀌고 있다.

부천시는 기존 만화 인프라를 기반으로 지난 2002년 4월 1000평 공간에 만화산업 종합 지원센터를 설립했다. 만화작가 50여명과 캐릭터, 팬시, 만화 출판사 등 벤처기업 16개사를 유치했다. 각종 애니메이션의 원작을 제공하고 적극적인 해외 수출에도 나서는 등 부천의 첨단 문화 콘텐츠가 뜨고 있다. 부천의 만화산업은 전국문화산업클러스터 평가에서 두 차례나 최우수상을 받는 등 성가를 인정받고 있다.

또 부천시는 오는 2008년까지 국비와 지방비를 포함해 부천 영상문화단지내 5000평 부지에 총 600억원을 투입하는 가칭 ‘부천 만화 영상산업 클러스터’를 3월에 착공한다.

부천시는 지금까지 육성해온 부천 만화정보센터, 한국만화박물관, 부천국제학생애니메이션 페스티벌, 부천 만화산업종합지원센터, 경기 디지털 아트 지원센터 등을 이 곳에 모을 계획이다.

안정민 부천시 만화팀장은 “각종 만화 산업 인프라가 집적되는 이 클러스터가 완공될 경우 학습 만화 한편을 제작하더라도 기획과 원작 만화 창작은 물론 디자인, 제작, 유통 등을 원스톱으로 처리할 수 있어 최고 수준의 노하우를 발휘할 수 있게 된다”고 말했다.

부천시는 이 시설이 건립되면 아시아 최고 경쟁력을 갖춘 만화 애니메이션 특화도시로 발전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오는 9월에는 세계 30여개국 만화가들의 한마당 잔치인 ‘제7차 세계만화인대회’를 열어 ‘세계속의 부천’으로 진입하고 있음을 보여줄 계획이다. 9월30일부터 10월 3일까지 부천시 복사골 문화센터와 경인전철 송내역 북부광장 등지에서 열린다. 이 대회는 한국만화가협회와 부천시가 공동으로 유치한 대회로 300여명의 세계 각국 만화인들이 집결한다. 같은 기간에 부천 국제코믹 북페어전도 열린다.

이 대회에서는 ▲국제만화 원화전 ▲만화작품 전시회 ▲만화가와 출판사가 참여하는 부천 프로젝트 프로모션 ▲만화 로봇 캐릭터 전시회 ▲각종 애니메이션 상영 ▲학술세미나 등이 잇따라 열린다.

홍건표 부천 시장은 “최근 프랑스의 세계적 만화·애니메이션 도시인 앙굴렘을 방문했을 때 만화가 예술의 한 장르로 자리를 굳히고 있다는 점에 깊은 인상을 받았다”며 “세계 만화인 대회를 계기로 출판 만화 시나리오 작가를 적극 양성하고 부천이 앙굴렘처럼 세계 만화 영상산업 메카가 되도록 준비에 최선을 다하겠다”고 말했다.

전국부 차장 jinye@munhwa.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