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 때는 고유가 사태가 파동으로 지나갔지만 이제는 진짜다. 이미 전세계의 석유생산이 절정기를 맞고 있다. 에너지 문제가 최대 화두가 된 세상이 온 것이다. 마땅한 부존자원이 없는 한국으로서는 에너지 문제가 우리 뺨을 때릴 때까지 기다리는 것은 너무 늦다.

“기회는 꼬리가 없습니다. 도저히 뒤에서 잡을 수 없고 앞에서 미리 포착해야 하지요. 하지만 러시아가 점차 에너지를 무기화하고 중국, 인도네시아 등조차 에너지 수입에 급피치를 올리고 있습니다. 소리없는 에너지 전쟁이 벌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한국의 입지는 점점 좁아져만 갑니다.”

한국 최초로 ‘애덤 스미스 이래 100대 경제학자’로 꼽히기도 했고 지난 2000년 산업자원부 장관을 역임한 김영호(66) 유한대 석좌교수는 동북아가 에너지 공동체를 형성하면 이같은 국면을 슬기롭게 돌파할 수 있다고 강조한다. 그는 한국·중국·일본이 협력해야 러시아의 자원 무기화 등을 막을 수 있다고 보고 있다. 이와 관련, 오는 4월 서울에서 러시아, 일본 등의 에너지분야 고위관리들과 기업들이 참여하는 민간국제회의인 신에너지질서회의가 열린다. 이를 주도하고 있는 김 교수와 함께 역동적인 대체에너지 개발의 꿈을 현실로 옮기고 있는 현장을 찾았다.

강화도 전등사의 남문 주차장 인근 공터.

한창 제작 중인 여러개의 소규모 풍력 발전기가 눈에 띄고 지붕에서 떨어지는 물을 계단식 빗물통으로 정화하는 독특한 빗물정화시스템이 아름답다. 기계장치를 전혀 쓰지않고 부들과 갈대, 박테리아 등으로 빗물을 정화한다. ‘물의 오브제’라는 이 빗물 정화시스템 이름은 왠지 비밀을 간직한 느낌을 준다.

이 곳은 강화도의 여러 마을을 생태에너지 마을 겸 대체에너지 메카로 바꾸기 위한 의욕적인 프로젝트가 펼쳐지는 전진기지다. 이를 위해 강화도의 유서깊은 사찰인 전등사가 한국도시건축병리연구소에 25만평이라는 사찰 땅을 무상으로 선뜻 빌려준 것도 놀랍다. 바이오 캠프에서는 주민은 물론 어린이들까지 참여해 소규모 풍력발전기를 제작하는 등 11개 대안에너지 프로젝트가 진행되고 있다.

전등사 안에 풍력·태양전지·지열시스템을 망라한 바이오 캠프를 조성하고 있는 양성욱(40) 한국도시건축병리연구소장에게는 대체에너지 개발이 단순히 에너지난을 해결하는 소극적 개념이 아니다.

“강화는 하나의 농촌 공간에 불과하지만 지역에 걸맞은 에너지 순환 모델을 만들 경우 이는 위기에 처한 농촌문제 해결의 대안이 될 수 있습니다. 마을 사람들이 똘똘 뭉쳐 대규모 대체 에너지원을 직접 만들 경우 에너지 자립은 물론 이를 팔아 높은 부가가치를 올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예컨대 강화도 바람 특성에 걸맞은 풍력발전기를 주민들이 직접 개발하거나 이를 산업화하는 것도 가능하지요.”

양 소장이 제안한 순환형 에코 빌리지 프로젝트는 강화군 불은면의 몇몇 마을에서 실제로 적용되기 시작했다. 마을 주민들은 각 마을 특성에 걸맞은 태양 및 풍력발전, 바이오 액체비료 생산 인프라 등을 구축해 생태건축 빌리지로 탈바꿈할 계획이다. 빗물조차 그대로 흘려보내지 않고 이를 정화해 마을에 필요한 물을 스스로 충당하거나 수생식물 등을 길러 훌륭한 에코 관광 코스를 만드는 구상도 포함돼 있다.

강화 현장을 둘러본 김 교수도 대체에너지 개발이 막대한 고용창출력 등으로 침체에 빠진 경제를 살릴 수 있다는 데 주목한다.

김 교수는 한국의 하이브리드차 개발이 앞당겨질 수 있도록 정부가 적극 지원해야 한다며 자신의 뼈아픈 경험까지 솔직하게 털어놨다.

지난 2000년 5월11일. 당시 산자부 장관이었던 그는 미국 샌디에이고에서 열린 제4차 아시아·태평양 경제협력체(APEC)에너지장관회의에서 한국에서 2001년에 제1회 APEC 대체에너지 전시회를 개최하겠다고 제안했고, 이날 만장일치로 통과됐다.

이 구상은 한국이 APEC내 신재생 에너지 질서를 주도할 수 있는 절호의 기회였지만 김 교수가 장관직에서 물러난 뒤 전시회의 존재 자체가 미약해졌다는 것.

“올해 2월 교토의정서 본격발효를 앞두고 한국도 연료전지의 폭발성에 주목해야 합니다. 신재생에너지의 총아인 연료전지는 2010년 쯤이면 반도체 시장(330억달러)의 3배에 육박하는 900억~1000억달러의 시장을 형성할 것으로 전망됩니다. 일본은 발빠르게 올해 2월부터 차세대 대체 에너지인 연료전지를 일반가정에까지 보급하기로 했는데 우리가 우물쭈물하다가는 기회를 놓칠 수밖에 없습니다. 연료전지 등 대체에너지산업을 수출산업으로 키워야 합니다. 역설적으로 동북아 지역은 중국이 마이카시대로 돌진하는 등 인구가 밀집돼 엄청난 공해를 배출하기 때문에 오히려 가장 큰 환경 마켓이 형성될 수 있습니다.”

김 교수는 경기침체가 지속될 것으로 예상되는 새해에는 대체에너지 문제 해결을 위해 정부가 보다 큰 구상과 전략을 가져야 하며 재생가능한 에너지와 자원을 통해서 경제과정을 쇄신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전국부차장 jinye@munhwa.com


'에코 건축 빌리지'란?

바람이나 태양, 땅의 열 등을 이용해 에너지를 직접 만들어 자급하는 본격적인 ‘에코 건축 빌리지’가 국내에도 곧 등장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도시건축병리연구소(소장 양성욱)는 강화군 불은면의 고능리, 두운리, 상동암리 등 3개 마을에 태양전지, 풍력발전, 순무의 열매에서 바이오디젤을 추출하는 사업, 숲속 박물관사업 등 다양한 생태에너지 모델을 적용할 계획이다.

도쿄대 건축학과에서 재생에너지 시스템 연구로 박사 학위를 받은 양 도시건축병리연구소 소장은 우리 전통 속에서 에너지원을 찾아내는 데 귀재다. 그는 세계적인 지열, 단열, 축열 시스템인 석빙고도 전등사나 강화군의 한 마을에 적용할 방침이다.

또 강화 특산물인 순무의 꽃과 열매가 휘발성이 강한 특성에 착안해 이를 ‘꿈의 에너지’인 바이오 디젤로 바꾸는 실험도 병행하는 등 신토불이(身土不二)에너지 개발에 박차를 가하고 있다.

이 연구소는 전등사안의 바이오센터에서 각종 대체 에너지 실험을 하고 있다. 전통사찰인 전등사에 세계적인 대안에너지센터인 영국의 대체기술센터(CAT)에 육박할 만한 훌륭한 교육장이 조성되고 있는 셈이다. 이곳에서 어린이들조차 장난감 차를 움직이거나 작은 전구를 켤 수 있는 작은 풍력발전기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은 대체 에너지가 새로운 경제기적을 만들어낼 수 있음을 웅변한다.

또 순무열매에서 바이오디젤을 추출하는 사업, 숲속 박물관사업, 녹색체험마을 사업 등 에코 건축빌리지에 걸맞은 다양한 사업을 벌여나갈 계획이다.

예진수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