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브라운관에 비친 MBC탤런트 정호근(39)씨의 인상은 암만 좋게 봐줘도 ‘적당하다’를 넘어 ‘좋지 않다’쪽에 가깝다.

데뷔이후 여태껏 그가 맡은 역만 봐도 그렇다. 주로 일제시대 악질 형사, 주인공을 괴롭히는 악한, 뒷골목의 불량스런 건달…. ‘허준’이나 ‘상도’등 그가 출연했던 드라마들은 큰 인기를 모았으나 정작 정씨는 그늘에 가려져 있었을 뿐이다.

그러나 드라마는 드라마일뿐 현실의 그는 그 어떤 미남배우보다도 아름다웠다. 정씨는 지난 2월 서울 종로구 가회동에 ‘영계 생고기’라는 숯불 갈비집을 차렸다. 그리고 이 음식점은 나눔의 거리에서 가장 먼저 나눔의 가게로 지정됐다. 악당 이미지가 강한 정씨가 나눔가게에 동참했다하니 주변 사람들이 내심 놀란 모양이다.

“이곳이 ‘나눔의 가게’가 된 뒤 아름다운재단 박원순 변호사가 오신 일이 있었는데 제가 나눔행렬에 동참한 것을 놀랍다는 식으로 얘기하셨어요. 저처럼 성질 안 좋게 생긴 탤런트가 좋은 일을 한다는 게 박변호사도 믿기지 않으셨나봐요 (웃음).”

정씨가 나눔의 가게에 동참하게 된 데에는 가슴아픈 사연이 있다. 바로 첫딸인 유진이가 태어난지 3년만인 지난 98년 봄 폐동맥 고혈압으로 세상과 작별한 것이다. 칠삭둥이 미숙아로 태어난 유진이는 1년 반동안 병원신세를 졌다. 유진이의 병간호를 위해 오랫동안 소아과 병동을 드나들던 정씨 부부는 너무나 많은 아기들이 돈이 없어 숨져가는 것을 목격하고 큰 충격을 받았다. 그 뒤 이 부부는 난치병 소아를 위한 자선병원을 세우자고 약속했다. 이들은 아름다운재단에 내놓는 기부금이 아픈 아이들을 위해 쓰이길 희망하고 있다.

탤런트라고 해서 정씨의 형편이 그다지 넉넉한 편은 아니다. 본인 말대로 ‘안좋은 인상’탓에 CF도 드물고 출연료도 많은 편이 아니다. 부업으로 낸 생고기집도 갈비집이라면 으레 갖춰야할 ‘마룻방’하나 없이 탁자 11개가 전부다. 유진이 밑으로 아들과 딸 하나씩을 더 얻었지만 둘째 딸 역시 미숙아로 태어나 위험한 고비를 여러차례 넘겼다. 부인은 지금도 둘째 딸아이의 건강문제로 미국과 한국을 오가는 형편이다. 하지만 소아 자선병원을 세우겠다는 그의 의지만큼은 단 한번도 흔들린 적이 없다. 덧붙여 병원을 세우든 못세우든 자신의 모든 재산을 훗날 사회에 전액기부할 방침이다.

“예쁜짓만 골라하던 유진이가 먼저 떠나간 뒤 한 때 집사람과 죽을 생각까지 했었죠. 이제 그 죽을 결심으로 열심히 일해 죽어가는 아이들을 위한 나눔을 펼치고 싶어요.” ‘나눔 드라마’의 주인공, 탤런트 정호근씨의 다부진 각오다.

/양성욱기자 feelgood@