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연호 연세대 사회과학대학장 겸 연세-EU 쟝모네센터 소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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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유럽 포괄 노사모델 본질은
동종 산업별 임금 수준 동일화
투명성 확고하고 임금문제 집중

양대 노총은 정반대 행태 심각
주먹구구 운영에다 정치투쟁
약자인 척하며 타 조직원 차별

우리가 모방하려 했던 북유럽식 사회제도 중의 하나가 그들의 안정적인 노사관계였다. 미국의 정치경제학자이며 ‘집단행동의 논리’의 저자 맨슈어 올슨 교수는 왜 북유럽식 노사관계 모델이 영미적인 모델보다 더 안정적이고 효율적인지 분석하려 한 바 있다. 그의 주장을 요약하면, 전국적 단위로 또는 산별로 광범위하게 조직화한 노동 조직은 하위 노조의 편협한 요구에 근거해 대규모 분규를 개시할 가능성이 작다는 것이다. 따라서 이러한 ‘포괄적’ 노조 조직이 존재하는 북유럽 국가들은 기업별 노조 중심인 미국보다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향유할 수 있었으며, 이는 경제의 지속적 성장으로 연결됐다는 주장이다. 그의 이론은 잘 발달된 복지국가와 안정적인 노사관계를 가진 북유럽 국가나 중부유럽의 독일이 신속하게 전후 복구에 성공할 수 있었던 원인을 설명하는 근거로 자주 인용됐다.

우리나라에서도 ‘포괄적 조직화’라 불리는 전국적 규모의 노조화 필요성이 불안정한 산업 관계를 치유하기 위한 대안으로 꾸준히 제안됐었다. 노동자는 압축적 경제성장과 금융위기 극복의 희생양이며 사회적 약자라는 인식도 있었기에 지식인들은 북유럽식 노사관계 모델을 이들의 권익 향상을 위한 대안으로 지지했다.

그런데 2000년대 들어 정치사회적 강자가 돼 버린 노조의 행태를 보며 포괄적 조직화 이론의 한국적 적실성에 대한 회의가 등장하기 시작했다. 북유럽식 노사정관계의 핵심은 투명성과 철저한 이익 중심적 접근이다. 예컨대, 스웨덴의 노조는 정치적 행동은 자제하고 노동자의 이익을 대변하기 위한 세속적 이익집단으로 행동했다. 물론 그들만의 정치적 견해가 있었고, 자신들이 선호하는 정당도 있었다. 그러나 노사관계를 논의할 때는 합리적으로 임금과 복지 문제에 집중하고, 정치적 이슈는 지지 정당인 사민당을 통해 의회에서 논의했다.

노조가 경계해야 할 것 중의 하나가 이익집단임을 망각하고 외부집단에 권력을 휘두르거나 계급적 연대 의식을 상실한 채 같은 노동자들에게 갑질을 저지르는 약탈 세력화하는 것이다. 그런데 스웨덴 노총(LO)은 사회의 제한된 가치를 분배할 수 있는 공적 제도의 수준에까지 이르렀다는 평가를 받는다. 어떻게 가능했을까?

노조가 포괄적 조직화하기 위한 명분은 노동자들 간의 연대 의식과 이타성이다. 스웨덴의 금속노조는 대기업·중소기업 노동자의 임금 수준을 동일화시켰고, 자신들의 임금 상승을 자제해 타 산업부문 노동자들의 임금이 오를 수 있는 여지를 마련했다. 자본가와 국가를 상대할 때는 투명성과 합리성으로 강력히 무장했다. 그리고 노동환경 개선과 각종 차별 해소를 위해 진력했다. 그 결과 노조에 대한 스웨덴 국민의 신뢰도는 정당·대기업·은행보다 높다.

포괄적 조직화는 산업관계의 안정을 도모할 수 있는 장치지만, 잘못되면 사회경제적 권력화의 위험이 있다. 2021년 기준 우리나라 노조 조직률은 14.2%다. 그런데도 한국노총과 민노총이 포괄적 노동 조직인 양 행사하는 영향력은 조직률이 65%가 넘는 스웨덴 노조 이상인 것 같다. 특히, 민노총은 사회적 약자인 척하면서 조직원의 이익을 위해 타 조직의 구성원을 차별하기 일쑤다. 회계와 운영은 주먹구구식이며, 임금 협상과는 무관한 정치·안보 이슈를 시위 주제로 삼기도 한다. 올슨 교수의 주장처럼 편협한 이익집단이 시위나 로비를 벌일 경우 이익은 자기 조직에 집중되지만, 그 폐해는 사회적으로 광범위하게 분산된다.

자정 능력을 상실한 거대 노동 조직은 기업과 자본에 공포의 대상이 될 수밖에 없다. 강력한 노조가 존재하는 나라에는 여전히 제조업 자본이 투자를 회피하려는 경향이 강하다. 그래서인지 미국, 독일, 영국 등 주요 선진국의 노조 조직률은 21세기 들어 거의 모두 하락세다. 스웨덴의 노조 조직률도 한때 90%대에 이르렀으나, 지난 10년 사이 27%가량 하락했다.

노동은 이제 4차 산업혁명이라는 자본보다 더 가공할 적에 직면하고 있다. 여론의 신뢰를 획득하지 못한다면 그들은 인공지능(AI)과 로봇의 희생물이 되고 말 것이다. 기술이 노동자를 사회적 약자로 동정할 가능성은 거의 없어 보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