데이터 ‘제대로 읽기’ 더 중요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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류근관 서울대 경제학부 교수, 前 통계청장

단편 자료 짜깁기 땐 가짜뉴스
빅데이터 시대 악용 여지 여전
올바른 정책 위해 경각심 필요

노인 일자리 급증 비판에 앞서
60세 이상 인구 급증 함께 보고
실증에 입각한 국정 추구해야

봄은 오는데 계절의 다양성은 줄고 있다. 봄·가을은 짧아지고 여름·겨울은 길어진다. 덥거나 추워야지 온화해선 안 되는 모양이다. 이는 양극화로 치닫는 우리 사회를 닮았다. 다양한 견해가 실종되고 정파적 주장만 난무하다. 실천적으로 문제를 해결하려면 데이터를 봐야 하는데 데이터는 종종 무시되거나 잘못 이용된다. 데이터는 스스로 말하지 않는다. 쓰기에 따라 유용할 수도 있고 그렇지 않을 수도 있다.

국내외를 막론하고 데이터가 잘못 해석되는 경우가 많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연합군은 전투기 생존율을 높이고자 했다. 살아 돌아온 전투기를 보니 주로 날개와 꼬리에 적기의 포탄을 맞았다. 많은 군사 전문가는 전투기의 날개와 꼬리를 보강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통계학자 에이브러햄 월드(1902∼1950)의 생각은 달랐다. “날개와 꼬리는 공격을 당해도 전투기가 살아 돌아왔다. 적기로부터 엔진을 공격받은 전투기는 생존하지 못했으니 돌아오지도 못했다. 보강할 데는 날개와 꼬리가 아니라 엔진이다.” 죽은 자는 말이 없다. 말이 없다고 처음부터 없었던 건 아니다.

교통사고 위험은 직선 도로에서 더 높다는 보도가 있었다. 교통사고가 주로 직선 도로에서 발생했다는 게 근거였다. 이는 대개의 도로가 직선이라는 사실을 말해 줄 뿐 직선 도로가 더 위험하다는 걸 말해주진 않는다. 친부모가 계부모보다 자식을 더 학대한다는 기사도 있었다. 통계를 보니 아이들이 주로 친부모에게 매 맞더라는 게 근거였다. 대개의 아이가 친부모 밑에서 자라고 있을 뿐이다. 고속도로에 비해 지방도로가 시설 투자가 안 돼 보행자 사고가 많다는 견해도 있었다. 고속도로엔 보행자가 없으니 보행자 사고도 없을 뿐이다.

한국의 노인빈곤율은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중 압도적 최상위를 차지한다. 우리 노인 세대가 그렇게 가난한가. 아마도 과장됐을 것이다. 노인 보유 자산 중 부동산 비중이 높아 소득이 저평가된 부분이 있다. 매월 우리 통계청은 경제활동인구조사에 근거해 고용동향을 발표한다. 일자리 증가와 관련된 최근 몇 년간의 언론 보도를 보면 모두 노인 일자리만 늘었다고 비판한다. 지난달의 언론 보도를 예로 들어 보자. ‘취업자가 41만 명 늘어나는 데 그쳤다, 그마저 60세 이상이 전체의 97%를 차지한다, 우리 경제의 주력인 40대는 고용이 줄었다.’ 연령대별 고용 변화를 제대로 파악하려면 인구 변화도 함께 봐야 한다. 전년에 비해 40대 인구는 10만 명 줄었고, 60세 이상 인구는 무려 53만 명이 늘었다. 40대는 절대적으로 보면 고용자 수가 줄었으나 고용률로 보면 늘었다.

결론적으로, 데이터를 제대로 읽는 혜안(慧眼)이 중요하다. 빅데이터 시대에 데이터가 많다고 해서 문제가 저절로 해결되지는 않는다. 잘못된 주장이나 정책이 단편적 데이터로 뒷받침되면 어느새 가짜가 진짜로 둔갑하게 된다. 잘못된 주장이라 할지라도 이를 뒷받침하는 단편적인 자료는 얼마든지 찾아낼 수 있다. 현실은 복잡다기하고 자료는 다양하다. 자료는 전체적으로 보고 연결해서 봐야 제대로 보인다.

한때 미국 의회는 담뱃세를 일시적으로 인상했다가 다시 원상회복하기로 했다. 그런데 담뱃세를 원상회복하면 가격에 민감한 청소년 흡연이 늘 것이라는 실증 근거가 제시됐다. 의원들은 약속을 지키는 것보다 청소년 보호가 우선이라는 실용적 입장을 받아들였다. 담뱃세를 원상회복한다는 원래 계획을 철회했다. ‘샤탈린의 500일 계획(Shatalin’s 500 Days Plan)’, 이는 보리스 옐친과 미하일 고르바초프의 명에 따라 1989년 당시 소련 최고 경제학자 샤탈린이 주도해 작성한 구소련 경제개혁의 청사진이다. 이 책의 서문은 놀랍기 그지없다. ‘사적 재산권을 부정한 결과 소련은 서방 세계에 뒤졌다. 소련의 70년 역사는 이를 보여주기에 충분하다.’ 이념이나 사상보다 현실을 직시한 고백이라 생각된다.

봄이 오는 길목에서 꿈꿔 본다. 실증에 입각한 견해들이 자리 잡아 우리 사회가 좀 더 실용적인 방향으로 나아가기를. 이제 우리도 자료로 뒷받침되지 않는 정책이면 과감하게 포기할 줄도 아는 정치권, 정책 당국자가 나올 때가 되지 않았는가.

문화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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