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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해완 정치부 차장

우리 헌정사에서 국회가 정부 예산안을 회계연도 개시일(매년 1월 1일)을 넘겨 처리한 적은 단 한 차례도 없었다. 2009년과 2011년에는 예산안이 회계연도 마지막 날인 12월 31일 국회 본회의를 통과했고, 2013년과 2014년에는 새해 첫날인 1월 1일에 국회 문턱을 넘었다. 그러나 내년도 예산안을 놓고 여야가 극한의 대립구도를 이어가면서 ‘초유의 준예산 편성 사태’가 벌어질 수 있다는 전망이 조심스럽게 제기되고 있다.

최근에 만난 더불어민주당의 한 중진의원은 국민의힘이 예산안을 심사할 국회 기획재정위원회 소위원회 구성에 비정상적으로 미온적이었다면서 “여당은 준예산 사태를 염두에 둔 것 같다”고 말했다. 며칠 뒤 국민의힘은 준예산 사태 가능성을 공론화했다. 성일종 정책위의장은 지난 15일 “민주당은 윤석열 정부 예산을 한 푼도 통과시킬 수 없다고 하고 있다”며 “헌정 사상 최초로 준예산이 편성되는 것 아니냐는 우려가 있다”고 밝혔다.

준예산은 국회가 회계연도 개시일 전까지 예산안을 확정하지 못할 경우 1년 전 예산에 준해 국가 예산을 잠정적으로 집행하는 조치를 뜻한다. 정부는 국회에서 예산안을 의결할 때까지 ‘국가기관의 유지 및 운영’ ‘법률상 지출의무의 이행’ ‘이미 예산으로 승인된 사업의 계속’ 등에 국가재원을 사용할 수 있다.

준예산은 최대한 피해야 할 일종의 컨틴전시 플랜이다. 정세균 민주당 대표는 준예산 가능성이 언급됐던 2009년 당시 “준예산은 나쁜 것”이라고 평가한 바 있다. 2013년 정부와 여당은 준예산이 편성되면 정부 지출의 40% 이상이 집행되지 않아 ‘셧다운’(정부의 업무정지)이 발생할 수 있다고 발표했다. 준예산 편성으로 정부와 공공기관의 계약직 직원과 학교 시간제 교사 등이 일시적으로 해고되는 사태가 뒤따를 수 있어 나온 경고였다. 이 밖에도 도로·철도 건설 등 사회간접자본(SOC) 사업, 연구·개발(R&D), 서민복지 예산 등도 제때 집행되지 않는다.

준예산 편성의 위험성은 이뿐만이 아니다. 2011년 한국법제연구원은 보고서에서 “현행 헌법과 국가재정법에 준예산 집행이 명시돼 있지만 ‘요건’ 등은 구체적으로 담겨 있지 않다”면서 위헌 가능성을 지적했다. 학계에선 준예산 조항의 취지가 국회 공전이나 처리 지연 등을 상정한 것이 아니라, 천재지변이나 국회 해산 등 불가피한 상황을 전제로 준예산 조항을 넣은 것이란 해석도 나왔다. 준예산이 편성되더라도 정부의 주요 사업과 관련, 신규 사업을 자동으로 배제하는 것인지, 기존 사업이라도 일체의 확장을 불허하는 것인지에 대한 정의도 불분명하다.

이처럼 단 한 번도 경험해보지 못한 설익은 준예산 제도를 놓고 여야는 각 진영의 이해타산에 젖어 폭주 기관차처럼 마주 보고 달리고 있다. 심지어 여의도 정가에선 “준예산 사태가 벌어지면 여야는 상황 발생의 탓을 상대에게 돌려 어떻게든 반사이득을 보려 할 것”이란 이야기마저 들린다. 이번 국회는 불명예스러운 최악의 기록들을 양산하고 있다. 초유의 준예산 편성이란 부끄러운 기록을 하나 더 보태지 않길 간절히 바랄 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