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미지 크게보기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지난 23일 문화일보 회의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50년 넘게 테니스를 즐긴 게 건강비결"이라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

■100세 시대 명사의 건강법 -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

하루 평균 2건 일정 거뜬 소화
한때 소주 20병 두주불사 전설
70세부턴 단 한 잔도 안마셔
“음식 안 가리는 잡식성 이죠”

‘김동호’하면 먼저 ‘부산국제영화제’가 떠오른다. 1996년 부산영화제를 창설할 때부터 15년간 집행위원장을 지내며 한국 영화제를 세계시장에 론칭한 선구자적 인물로 평가받아 왔기 때문이다. 오늘날 한국 영화가 세계시장에서 주목받는 것은 그의 공로와 부산국제영화제의 성공이 크다는 평가도 나온다. 내달 5일 열리는 제27회 부산국제영화제를 앞두고 대한민국 영화계의 전설로 불리는 김동호(86)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을 지난 23일 만났다. 서울 서대문역 인근에 있는 바비엥에서 한강포럼이 주최한 오세훈 서울시장 초청 조찬간담회 장소였다. 그는 이날 오전 7시 30분에 열린 행사 참석을 위해 자택인 경기 광주시 남종면 분원리에서 5시 30분에 집을 나섰다.

김 전 위원장은 조찬모임을 마치고 제법 무거워 보이는 가방을 어깨에 메고 나타났다. 가방을 대신 들어 드렸다. 역시 무거웠다. 노트북과 책이 들었다고 했다. 노트북이라는 말에 조금 놀랐다. 이동 중이나 다음 일정 사이에 잠시 짬을 활용, 노트북으로 업무를 보거나 원고를 쓴다고 한다. 그는 중앙일보에 ‘남기고 싶은 이야기’를 지난 3월 26일부터 격주로 연재하고 있다. 구순을 바라보는 나이가 무색하리만큼 에너지가 넘쳤다.

인터뷰는 문화일보에서 진행했다. 앞서 차를 권하자 ‘냉’ 녹차를 주문했다. 차는 따뜻하게 마시는 것이 일반적인데 의외였다. 커피도 냉커피, 물도 냉수만 마신다. 이유를 묻자 “어릴 때부터 습관”이라고 했다.

인터뷰 이후 일정은 광화문에서 지인들과의 오찬모임이었다. 그리고 오후에 예술의 전당에서 열리는 한경아르떼필하모닉 정기연주회에 참석하는 일정이 잡혀 있다. 아침 일찍부터 빡빡한 일정이다. 전날엔 경기 파주시 임진각에서 오후 8시에 열린 제14회 비무장지대(DMZ) 국제다큐멘터리영화제 개막식에 참석하고 자정에 집에 도착했다고 한다. 이날도 연주회에 참석하고 광주 집에 도착하면 자정 무렵은 될 것 같았다. 다음 날은 경기 화성시에서 열리는 문화예술축제와 그다음 날은 파주 헤이리예술마을에서 열리는 제2회 헤이리국제음악제에 참석 일정이 있었다.

영화뿐만 아니라 연극, 음악회, 뮤지컬, 무용에 이르기까지 웬만한 문화예술 공연은 잊지 않고 참석한다. 29일에도 한국예술종합학교 명예교수인 무용가 정승희가 77세를 맞아 자신의 이름을 딴 ‘정승희 무용단’과 함께하는 기념 공연에 참석한다. 선과 율동의 미학인 무용분야에까지 조예가 깊다. 수첩을 보여줬다. 일주일 일정이 빼곡히 적혀 있었다. 하루 평균 2건, 많게는 4건이 채워져 있었다. 김 전 위원장만큼 바쁘게 사는 명사도 드물어 보였다.

이미지 크게보기 지난 23일 문화일보 회의실에서 가진 인터뷰 도중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수첩에 빼곡히 적힌 일정을 보면서 설명하고 있다. 김동훈 기자

김 전 위원장은 대중교통을 이용한다. 일정이 대부분 서울에서 있어 이동 시 걷는 것만 해도 상당하다. 교통이 많이 불편할 텐데 서울로 이사 오시는 것이 좋지 않은지 물었다. 서울 광진구 광장동에서 40년간 살다가 정리하고 3년 전 그곳으로 이사해 부인과 살고 있다고 한다. “무엇보다 공기가 좋고, 이동량이 많다 보니 걷기운동은 덤”이라고 했다. 보통 새벽 5시에 일어나 걷기운동을 한다. 매일 서울을 대중교통으로 오가는 것을 포함하면 하루 1만 보는 거뜬히 넘는다. 대단한 체력이다. 해외 출장도 한 달에 한 건꼴로 있다. 11월엔 영국과 카자흐스탄 두건이나 잡혀 있다. 저 연세에 어떻게 저 많은 일정을 소화할 수 있을까 감탄사가 절로 나왔다.

건강관리 비결은 테니스다. “50년 넘게 주말마다 테니스를 즐깁니다”. 한 경기에 평균 30분 정도 소요되는데, 무려 4게임을 소화한다. 테니스는 순발력과 지구력이 필요한 운동으로 젊은 사람도 해내기 힘든 데 놀랍다. “매주 금요일 오후 3~6시 서울 반포종합운동장에서 고교후배들과 테니스를 합니다. 일요일엔 경기 양평에 가서 대학 후배들과 칩니다. 고 민관식 전 국회부의장이 생전엔 주요 파트너였어요.”. 외국 출장 때만 아니면 빼먹지 않는다. 아침에 달리기와 북한산 백운대 등산을 자주 했지만, 80대 이후엔 하지 않는다.

그는 폭음하는 것으로 유명하다. 요즘도 약주를 많이 하는지 물었다. “한창때 앉은 자리에서 새벽까지 소주 20병을 마셨다”고 했다. 잘못 들었나 싶어 다시 물었다. 두주불사형 애주가다. 부산국제영화제 기간 중 해운대 해변의 포장마차를 돌며 영화인들과 밤새도록 소주잔을 기울이기도 했다. 아무리 많이 마시고 새벽에 집에 들어가도 4시에 일어나 일과를 소화해 냈다. 거의 철인 수준이다. 그러나 “2006년 1월 1일 아침, 70세가 되던 해 건강을 위해 더 이상 술을 마셔선 안 되겠다 싶어 그날부터 지금까지 단 한 잔도 입에 대지 않았어요”. 절제력과 자기관리가 철저해 보였다.

건강을 지키기 위해 식단 관리는 어떻게 할까. “특별히 좋아하는 음식도, 가리는 것도 없어요. 잡식성이죠. 허허허”. 그 흔한 고혈압과 당뇨는 물론이고 달리 약 먹는 것도 없다고 했다. 보청기를 이용하지 않는데도 대화하는 데 전혀 불편함이 없을 정도로 청력도 뛰어났고, 돋보기도 쓰지 않고 수첩에 적은 일정을 볼 정도로 시력도 좋다. 타고난 건강체질로 보였다. “가난해 경기고, 서울대를 다닐 때 청량리에 있는 집에서 걸어서 다니다 보니 체력이 단련된 것 같다”며 웃었다. 그러면서 “가난이 몸에 밴 탓인지 돈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게 결국 늘 마음 편하게 일을 하도록 만들어 준 것 같다”고 덧붙였다. 건강하게 장수하는 비결로 보여지는 대목이다.

이미지 크게보기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지난 23일 문화일보 회의실에서 가진 인터뷰에서 "가난이 몸에 밴 탓인지 돈에 대한 욕심이 없었던 게 결국 늘 마음 편하게 일을 하도록 만들어 준 것 같다"고 말했다. 김동훈 기자

영화인들이 그를 특별하게 생각하는 것 중 하나는 영화인들 경조사에 빠지지 않고 참석한다는 것이다. 그런데 정작 본인은 아무에게도 연락하지 않고 경조사를 소문 없이 치르거나 알고 찾아와도 봉투를 받지 않았다. “집사람이 약국을 운영한 덕분에 공직에 있을 때부터 탐욕을 버리고 지낼 수 있었습니다. 부모님 별세하셨을 때나 3남매 결혼시켜도 양가 합의로 가족끼리 조용히 올리는 것이 마음 편해서 그렇게 했어요. 남에게 부담 주는 일은 정말 싫거든요.” 거목의 오유지족의 삶이 느껴졌다.

■김동호 전 부산국제영화제 집행위원장이 걸어온 길.

김동호 전 위원장은 1937년 강원도 홍천에서 태어났다. 경기중·고와 서울대 법대를 졸업했다. 이후 한양대 행정대학원에서 석사와 동서대에서 영화예술학 명예박사 학위를 받았다.

1961년 문화공보부(현 문화체육관광부)에서 공직을 시작한 이후 문화과장, 문화국장, 공보국장 등을 거쳤다. 1980년 요직인 문공부 기획관리실장에 올라 8년간 재직한 뒤 1988년 한국영화진흥공사 사장에 취임했다. 영화와 운명적인 만남이 시작된 것이다.

당시 비전문가 관료 출신이 낙하산으로 취임한다는 이유로 영화감독협회 등이 반대 성명을 냈다. 그러자 그는 영화인과 매일 만나 현안을 토론하고 매년 100편 이상의 영화를 보면서 영화 공부를 한 일화는 유명하다. 영화 배우와 감독으로도 활동했다.

이어 예술의전당 사장을 거쳐 1992년 4월부터 1993년 3월까지 문화부 차관을 역임했다. 공연윤리위원장을 지낸 후 공직에서 물러났을 때 김지석 당시 부산문화예술대교수 등이 찾아와 제안하면서 부산영화제가 태동했다. 국내외 각종 영화제의 심사위원도 맡았다. 1964년 국전에서 입선해 1965년 한국미술협회 회원이 될 정도로 미술 분야에도 조예가 깊다. 서예에 능하며 광주비엔날레 이사도 여러 차례 지냈다. 현재도 재단법인 백영수미술문화재단 이사장을 맡고 있다.

그는 부산국제영화제를 세계적인 영화제로 격상시킨 지금까지 영화와 관련된 여러 단체의 수장을 맡아 영화인들 사회에서 큰 산(山)으로 존경받는다. 대통령 소속 정책자문기구인 문화융성위원회 초대 위원장, 민주평화통일자문회의 문화예술분과위원회 위원장, 대한민국 대중문화예술상 심사위원장, 한국영화동반성장협의회 회장, 강릉국제영화제 이사장, 단국대 영화콘텐츠전문대학원 원장 등을 역임했다.

국내·외 각종 영화제 심사위원으로도 다수 활동했다. 청룡영화상 심사위원장, 도쿄필름엑스영화제 심사위원장, 타이페이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 제7회 후쿠오카 국제 영화제 심사위원장, 제26회 로테르담 국제영화제 심사위원장, 소치국제영화제 심사위원, 제28회 시애틀국제영화제 심사위원, 인도국제영화제 심사위원….

김 전 위원장은 문화예술계의 발전과 변화를 위한 문화행정 분야에 많은 업적을 남겼다. 이러한 공로로 은관문화훈장(2005), 체육훈장 맹호장(1999)황조근정훈장(1993),홍조근정훈장(1977)을 비롯해 대한민국 영화대상 공로상(2005), 제5회 말레이시아 골든 글로벌 어워즈 평생공로상(2022), 제3회 광화문문화예술상(2022), 제15회 우디네 극동영화제 평생공로상(2013), 제5회 아시안 필름 어워드 공로상(2011), 제2회 올해의 영화상 영화인상 (2011), 제23회 도쿄국제영화제 우정상 (2010), 자랑스러운 영화인상 (2010) 등 일일이 열거할 수 없을 정도로 굵직한 상을 수없이 받았다.

4살 연하인 부인 홍명자 여사 슬하에 큰딸(김대환)은 바이올린 전공의 단국대 교수, 가운데 아들(김주환)은 컴퓨터를 전공해 미국 버클리대 교수를 하다 현재는 구글에 다니고 있다. 막내딸(김지환)은 초등학교 교사로 있다.

박현수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