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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규철 한국개발연구원(KDI) 경제전망실장

물가가 매섭게 치솟고 있다. 지난 6월의 소비자물가 상승률은 외환위기 이후 가장 높은 전년 동월 대비 6%에 달했다. 지난 2년여 동안 코로나 위기를 힘겹게 버텨 왔는데, 이제 인플레이션이 우리 경제를 위협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전 세계는 대규모 재정 지출과 초저금리 정책 등으로 자금을 풀며 위기를 버텼다. 위기가 진정되며 수요는 늘었는데, 우크라이나 전쟁으로 원자재·곡물을 중심으로 공급이 줄면서 인플레이션이 높아졌다. 미국과 유럽에서는 인플레이션이 8%를 넘어서면서, 1970년대 석유파동의 경험을 불러내고 있으며, 스태그플레이션 논쟁까지 촉발됐다. 문제는, 마땅한 대응 수단이 없다는 점이다. 인플레이션이 경기 과열 때문이라면, 수요 감소 정책을 쓰면 된다. 그러나 인플레이션이 공급 부족으로 발생하면 경기도 나빠지기 때문에, 수요 감소 정책은 경기침체로 이어질 수 있다. 더군다나, 원자재·곡물을 수입에 의존하는 우리가 인플레이션의 근원을 해소하기는 불가능하다. 어떻게 대처할 수 있을까?

물가 안정이 최우선 목표인 한국은행에 이목이 집중된다. 기준금리 인상은 수요를 둔화해 물가 안정을 유도하므로, 공급 부족에는 잘 쓰지 않는다. 기준금리 인상의 파급 시차를 고려하면, 단시일에 물가 안정을 기대하기도 어렵다. 대신, 기준금리 인상은 경제주체의 기대심리를 억누르며 인플레이션 장기화를 막는 데 목적이 있다. 우리보다 인플레이션이 높고, 경기 회복세가 강한 미국의 금리 인상을 그대로 추종한다면, 경기침체 가능성이 커진다. 물가와 경기 사이에서 균형을 잡고 기준금리 인상 속도를 정하는 난제가 남아 있다.

정부는 국민이 이 시기를 견뎌내는 데 집중하고 있다. 특히, 국제유가가 상반기에 46.8%나 올랐는데, 유류세 인하는 경제 전반에 이용되는 석유류 가격 부담을 줄일 수 있다. 저소득층이 교통·식료품·외식에 대한 지출 비중이 높다는 점에서 취약계층 보호도 필요하다. 연료비·식료품비 등에 대한 생계 지원을 강화하고, 취약계층 지원금에 물가 상승을 반영해 현실화하는 정부 대책은 유효할 수 있다. 물론, 인플레이션을 고려하면 선별 지원이 바람직하다. 공급망 관리, 유통·물류 고도화, 경쟁 촉진도 효과를 거두길 기대한다. 필자에게는 재정 건전성 강화가 눈에 띈다. 과거 초인플레이션이 발생한 국가들에서 공통적으로 대규모 재정 지출 확대와 이를 뒷받침하는 통화 발행이 있었으며, 초인플레이션이 끝나는 계기는 재정 긴축이었다. 우리 경제가 그 상황은 아니지만, 재정 건전성 강화는 그 자체로도 필요하고 기대 인플레이션 안정에도 기여할 것이다.

인플레이션이 수입물가 상승에서 발생했기에, 국민이 부담을 나눌 수밖에 없고, 그 과정에서 갈등도 깊어지고 있다. 상품·서비스 가격, 임금이 오르면서 경제주체 간 부담이 전가되고 있으며, 특히 협상력이 약한 주체들이 어려운 처지에 놓인다. 일부 계층에만 짐을 지우는 것은 바람직하지도, 지속 가능하지도 않다. 너도나도 가격과 임금을 올리며 인플레이션 악순환에 빠질 수 있다. 비록 경제 상황이 엄중하고 모두 힘든 시기를 보내고 있지만, 상대와의 장기적인 관계를 존중하면서 의연함을 유지하는 상생의 지혜와 관용이 절실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