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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시각]

‘디지털 유산’과 웰다잉

오남석 기자 | 2022-07-04 11:10

오남석 디지털콘텐츠부장

지난해 초 어머니의 유품을 정리하다 휴대전화에 저장된 꽤 여러 건의 통화녹음을 발견했다. 나를 포함한 가족, 혹은 친구들과의 통화가 담긴 음성파일들은 스마트폰 조작에 서툴렀던 어머니의 실수 산물로 보였다. 이제는 들을 수 없는 음성을 전해줬다는 사실만으로도 어머니의 그 실수가 그렇게 반갑고 고마울 수가 없었다. 최근 토종 SNS 싸이월드가 도입한 ‘디지털 상속권 보호 서비스’가 1주일 만에 신청 건수 2000건을 돌파했다는 소식은 그래서 남 일처럼 여겨지지 않는다.

싸이월드는 2000년대 중반 미니홈피 열풍을 이끌었으나 2010년대 쇠락의 길을 걷다 2019년 10월 서비스를 중단했다. 3년 만인 지난 4월 서비스를 재개하면서 한때 3200만 명에 달했던 회원들의 사진과 동영상이 복구됐는데, 이 가운데에는 그사이 세상을 떠난 이들의 것도 포함됐다. 미니홈피에 남은 고인의 흔적을 넘겨달라는 유족의 요청이 이어지자 싸이월드 운영사 싸이월드제트는 이용약관을 고쳐 ‘디지털 상속권 보호 서비스’를 제공하기로 했다. 서비스를 이용하려면 이 회사에 고인(피상속인)의 사망 사실을 확인하는 제적등본, 신청인(상속인)과 고인의 관계를 보여주는 가족관계증명서 등을 제출해야 한다. 이런 번거로움에도 불구하고 서비스 신청이 쇄도한다는 사실은 고인의 작은 흔적이라도 간직하겠다는 유족들의 의지와 고인에 대한 사랑을 보여준다.

그러나 이 서비스를 바라보는 시선이 우호적이지만은 않다. SNS에 남은 사진과 영상, 글 등을 ‘디지털 유산’으로 보고 상속자에게 돌려줘야 한다는 찬성론과 달리 고인의 프라이버시와 ‘잊힐 권리’가 침해당해선 안 된다는 반대론도 만만찮다. 아무리 유족이라 할지라도 고인의 모든 데이터를 볼 권리는 없고, ‘공개 설정’된 게시물 역시 고인이 가족에게까지 보여주고 싶지는 않았을 수도 있다는 얘기다. ‘디지털 유산 상속’을 둘러싼 논쟁은 사람이 죽은 뒤에 정리해야 하는 목록에 시신과 유품, 재산뿐 아니라 ‘디지털 흔적’까지 포함된 시대가 도래했음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이 논쟁이 존엄하게 살다 맞는 죽음, 즉 ‘웰다잉’(well-dying)이라는 화두와 무관치 않은 이유다. 웰다잉의 핵심은 자기 결정권 행사다. 준비 없이 타의에 내맡기지 말고 죽음에 이르는 과정과 사후 정리까지 스스로 결정하는 게 웰다잉에 이르는 길이다.

따라서 디지털 유산에 대한 사회적 논의 역시 자기 결정권에 초점을 맞춰야 한다. 자신의 디지털 흔적을 스스로 정리하도록 하고, 사후에 자신의 계정과 게시물을 어떻게 처리할지 사전에 결정하도록 유도할 필요가 있다. 메타와 구글, 애플 등 정보기술(IT) 분야 빅테크 기업들이 이미 행동에 나섰다. 물론 SNS 업체의 정책에만 기대서는 안 된다. ‘디지털 발자국’(digital footprint)이라는 말이 보여주듯, 한 개인의 디지털 흔적은 단지 SNS 게시물을 넘어 이메일, 접속 및 검색 기록 등 상상할 수 없을 만큼 광범위하다. 법적 개입이 없다면, 권리를 주장할 당사자가 죽고 사라진 이들 데이터는 얼마든지 악용될 수 있다. 목소리 없는 이의 권리를 보호하는 것이 곧 모두의 권리를 지키는 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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