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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론]

‘비천한 출신’도 면죄부일 순 없다

기사입력 | 2021-12-08 11:12

김종호 논설고문

황당무계한 공약도 일부는 솔깃
듣기 좋을 말로 본질 덮는 행태
‘失政 반성’도 진정성 의심 불러

조국 수사 ‘마녀사냥’이라더니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의 사과”
빗나간 인식 근본적으로 바꿔야


얼핏 달콤하게 들릴 언변과 교활한 속임수는 야바위꾼들의 특기다. 화려한 외양의 독버섯과 닮았다. 중독성도 크다. 정치인들의 ‘퍼주기 포퓰리즘’도 그렇다. 사탕발림으로, 결국 국가와 국민에게 돌아갈 큰 폐해는 숨긴다. 그래도 유권자들은 일단 솔깃해한다. 기행(奇行)을 보인 허경영 국가혁명당 대선(大選) 후보 공약이 대표적이다. 국민배당금 매월 150만 원, 노인수당 매월 70만 원, 결혼수당 1억 원, 18세 이상은 코로나19 긴급생계지원금 1억 원 지급 등 33가지를 ‘혁명 공약’이라고 내세웠다. 황당무계하지만, “나름 괜찮은 공약 같다”는 사람들도 있다. “내 공약 표절이 요새 유행”이라는 그의 주장을 터무니없다고만 하기도 어렵다. 다른 여·야 후보도 ‘묻지 마’ 식(式) 포퓰리즘 공약이 수두룩하다.

우선 듣기엔 좋을지언정 앞뒤부터 다른 말로, 본질을 덮는 행태도 횡행한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더 두드러진다. 문재인 정권 실정(失政)을 ‘반성’한 것도 진정성을 의심하게 한다. 그래야 대선에서 유리할 것이라는 판단의 반영이겠지만, 예비 후보 경선 때까지도 대놓고 ‘비호(庇護)’해오다가, 후보 확정 후에는 선(線)을 긋기 시작했다. 그러고도 ‘징벌적 부동산 과세 폭탄’ 등은 더 키울 작정까지 노골화했다. 사상 초유의 ‘국토보유세’ 발상도 그 일부다. ‘토지이익배당’으로 명칭을 억지로 미화하고, 뒤늦게 “국민이 동의하지 않은 상태에선 어떤 일도 하지 않을 것”이라고도 했으나, 사실상 ‘문 정부 실정’의 반복·확대를 예고한 것으로 비친다.

“민주당의 이재명이 아닌, 이재명의 민주당을 만들 것”이라고 해, ‘전체주의 독재 발상’이라는 비판을 또 자초한 그는 ‘입법 독재’를 더 부추기기도 했다. 신문·방송 카메라 앞에서 무릎 꿇고 국민을 향해 큰절하며 “깊이 성찰하고 반성하겠다”고 한 직후, 그 자리에서 열린민주당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간사 회의에서 주문했다. 야당을 ‘저들’로 지칭하며, “저들은 (관련 입법을) 할 생각이 전혀 없는 사람들이다. 발목 잡으면 뚫고 가야 한다” “(여당 상임위원장이) 방망이를 들고 있지 않느냐” “패스트트랙인지 그거 한꺼번에 많이 태워버리지. 그냥 하면 되지 무슨” 운운했다. ‘파렴치의 대명사’로도 불린 조국 전 법무부 장관 수사를 두고 “마녀사냥에 가깝다. 조 전 장관은 선택적 정의에 당한 것”이라던 입장을 이 후보가 최근 바꾼 것도 진심인지 의심스럽다. “내로남불로 국민의 공정성 기대를 훼손하고 실망시켜 드렸다. 제가 할 수 있는 범위 내에서 아주 낮은 자세로 진지하게 사과드린다”고 했다. 하지만 여당 일각에서조차 ‘표변’을 비난했다. 원희룡 국민의힘 선대위 정책총괄본부장은 “매표를 위한 거짓말”이라며 “사과의 진정성을 눈곱만큼이라도 보이려면 최측근에 배치한 ‘조국 수호대’부터 정리하는 게 순서”라고도 했다.

급기야 이 후보는 자신이 변호인으로 나섰던 조카의 잔혹한 ‘모녀 살인’을 ‘데이트 폭력’으로 둔갑시킨 사실, 형수에게 한 쌍욕, 친형의 정신병원 강제 입원 등을 둘러싼 논란에 대해 “비천(卑賤)한 출신이기 때문”이라는 취지의 뜬금없는 말까지 했다. 그는 지난 4일 “제가 출신이 비천하다. 비천한 집안이라 주변을 뒤지면 더러운 게 많다. 진흙 속에서도 꽃은 핀다. 제 출신이 비천한 건 제 잘못이 아니니까, 저를 탓하지 말아 달라”고 했다. “아버지는 시장(市場) 화장실 청소부, 어머니는 화장실을 지키며 10원, 20원에 휴지를 팔았다. 큰형님은 탄광 건설 노동하다가 추락사고로 왼쪽 다리를 잘랐고, 이번에 오른쪽 발목까지 잘랐다고 며칠 전 연락이 왔다”고도 밝혔다.

논란의 대상은 그의 출신이 아니다. 심각한 일탈 행위다. 그런데도 ‘자신의 잘못이 아닌, 비천한 출신’이 일탈 배경이라는 식으로 왜곡했다. 어려운 가정환경을 딛고 이룬 그의 개인적 성취는 돋보이는데도, 그것조차 스스로 깎아내리며 부모·형제까지 욕보인 셈이다. 찢어지게 가난한 집안 출신이어도 피땀 흘려 극복하고, 착하고 성실하게 살아온 대한민국 국민 다수에 대한 모독이기도 하다. 대통령까지 되겠다는 인물이 그래선 안 된다. ‘비천한 출신’도 면죄부일 순 없다. 쉽진 않겠지만, 엉뚱하게 빗나간 인식과 언행부터 근본적으로 바꿔야 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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