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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뉴스와 시각]

노동이사制와 여권의 호도(糊塗)

이관범 기자 | 2021-11-29 11:35

이관범 산업부 차장

공공기관 이사회 멤버로 노조나 근로자 대표를 선임하는 ‘공공부문 노동이사제’ 도입이 ‘초읽기’에 들어갔다는 반응이 나온다. 노조 표를 의식한 것으로 보이는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대놓고 노동이사제 도입을 의무화하는 ‘공공기관의 운영에 관한 법률 개정안’의 국회 처리를 압박하고 180석의 거대 여당이 화답하는 모양새가 연일 이어지고 있다. 여권 내에서는 “야권이 반대하더라도 강행 처리한다”는 기류가 역력하다. 대선도 치르기 전에 ‘입법 독재’의 망령이 배회하고 있다.

노동이사제는 크게 3가지 유형이 있다. 노동조합 간부가 직접 이사회에 참가하거나, 아니면 이사 후보를 추천하는 방식이다. 근로자 대표가 이사회 멤버로 직원을 추천하는 유형도 있다. 현재 국회에 계류된 관련 법안은 후자에 가깝다. 근로자 대표가 추천하거나 사내 투표를 통해 선출된 근로자를 상임이사 또는 비상임이사로 세우는 형식이다. 여권은 노동이사제 도입을 서두르며 선진 유럽에서 보편적으로 적용된다고 강변한다. 하지만 이 같은 주장은 어디까지나 본질을 호도하는 논리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가 조사한 주요 49개국 가운데 노동이사제를 도입한 국가는 14개국에 불과하다. 사회주의 국가인 중국을 제외하면 나머지는 유럽 국가뿐이다. ‘노동이사제의 종주국’이라고 불리는 독일만 해도 현재 여권이 추진하는 노동이사제와는 성격이 다른 제도를 두고 있다. 최준선 성균관대 명예교수는 통화에서 “독일만 해도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고 있기는 하지만, 경영상 의사결정을 하는 경영이사회가 아닌 사후 감독을 주 업무로 하는 감독이사회에만 노동이사가 참여하도록 하고 있다”고 말했다. 자본주의 체제도 전혀 다르다. 노동이사제를 도입하고 있는 독일, 체코 등 유럽 국가는 우리나라가 채택하고 있는 영미식 자본주의와는 뿌리가 다른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하고 있다.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는 주주·근로자·채권자·지역사회 일원 등이 기업을 공동체의 연장으로 보고 경영에 동참한다. 우리나라와 같이 주주 자본주의 체제에 근간을 두고 있는 미국, 영국 등에서는 노동이사제를 법률로 정한 전례가 없다. 더욱이 독일은 주식회사 비중이 소수에 불과하다. 대부분은 노동이사제 도입 의무가 없는 유한회사다.

현실화하면 민간 기업에도 도입 압박이 거셀 것으로 전문가들은 보고 있다. 코로나 19사태에도 파업으로 인한 근로손실일수는 100만 일에 육박한다. 대립적 노사 관계를 이어온 국내 역사나 근로자 이익을 대변해야 하는 노동 이사의 숙명에 비춰 볼 때 경영상 주요 결정을 신속하게 내려야 하는 이사회가 과연 정상적으로 작동할 수 있겠는가. 노동이사제는 연합군이 제2차 세계대전에서 승리한 후 독일 산업을 재편하고, 해체하는 과정에서 생겨난 제도다. 국가 경제의 근간인 기업을 튼튼하게 만들기 위해 고안한 제도가 아니다. 산업 대전환의 시기를 맞아 정부와 기업은 급변하는 국제 정세에 전광석화처럼 대응해야 하는 순간을 맞고 있다. 노동 이사제 도입으로 단체협상의 연장으로 전락한 이사회가 과연 본연의 역할을 제때 다할 수 있을지 되묻지 않을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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