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민주적 규범 위협하는 李후보 발언

기사입력 | 2021-11-26 11:44

김용호 서울대 아시아연구소 방문학자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선 후보가 야당을 무시하고 국회의 민주적 절차를 훼손하는 발언을 공개적으로 스스럼없이 하는 것을 보면, 과연 민주적 소양을 갖춘 정치지도자인지 의심하게 된다.

그는 24일 당 소속 국회 상임위원장·간사 및 정책위원장과 가진 간담회에서 정기국회 운영과 관련해 야당을 “저들”로 지칭하며 “발목을 잡으면 뚫고 가야 한다”고 했다. 더구나 서영교 행안위원장의 “법안이 1800여 건 있는데 여야 의견을 조율하겠다”는 발언에 대해서는 “위원장이 방망이 들고 있지 않나, 단독 처리할 수 있는 건 하자니까”라고 반박했다. 야당을 존중하긴커녕 적으로 간주해 협의 대신 ‘패싱’을 종용했다.

또, 박완주 정책위의장이 주요 쟁점 법안을 설명하자 이 후보는 “패스트트랙인지 그거 태우는데 한꺼번에 많이 태워 버리지, 그냥 하면 되지 무슨”이라고 했다. 이 후보에게서 민주주의는 결과에 못지않게 합의 과정이 중요하다는 인식을 기대하긴 어려워 보인다. 그는 왜 이렇게 비민주적인 모습을 보이는가.

첫째, 그의 스트롱맨(strongman) 정서 때문에 그는 국회의 심의나 여야 협의는 시간 낭비라는 인식이 강하다. 흔히 독재자들이 민주적 심의 과정을 사치라고 보기 때문에 국회를 무시하게 된다. 야당은 이미 이 후보의 행태에 “섬뜩함을 느낀다”고 논평했다.

둘째, 이 후보는 국회와 정당에 대한 국민의 불신을 악용해 자신을 ‘유능한 행정가’로, 국회의원들을 ‘무능한 정치인’으로 대비시켜 표를 얻으려는 전략적 극단주의 발언을 한다. 이처럼 유능-무능, 선-악이라는 이분법적 단순 논리로 국민을 선동하는 것이 포퓰리스트인데, 이 후보는 이런 기질이 다분하다.

셋째, 여당 국회의원들이 벌써 비겁할 정도로 대선 후보에게 정치적 의존성을 보여준 것이다. 차기 총선에서 공천권을 쥐게 될 대선 후보에게 국회의원들이 굽신대는 것이다. 여당 국회의원 중에서 입법부를 무시하는 이 후보의 발언에 대해 제대로 비판하는 목소리가 없다는 게 우리 국회의 서글픈 현실이다.

결국, 유권자가 이런 비정상적인 정치 현실을 바로잡아야 한다. 내년 대선에서 표로써 비민주적 후보를 응징하고, 진정한 민주적 인사를 대통령에 선출해야 한다. 그러지 않으면 우리의 대의제 민주주의는 살아남지 못할 것이다. 미국을 비롯한 세계 각국에서 민주주의가 어떻게 무너지는지를 연구한 스티븐 레비츠키와 대니얼 지블렛 미 하버드대 교수는 민주적 규범(norm)이 뒷받침되지 않으면 국회를 비롯한 민주적 제도만으로는 민주주의가 유지될 수 없다고 강조한다. 민주적 규범을 전혀 갖추지 못한 대선 후보가 당선되면 민주주의가 위기에 빠질 것임은 불을 보듯 뻔하다. 유권자들은 총칼을 든 군인들만이 민주주의를 망가뜨리는 게 아님을 명심해야 한다.

포퓰리즘은 민주적 선거를 통해 등장하기 때문에 소리 없이 민주주의의 뿌리가 뽑히게 된다. 아돌프 히틀러가 선거를 통해 권력을 장악한 독재자라는 사실을 잊지 말아야 한다. 우리나라에서도, 영웅이 등장해 수많은 정치·경제·사회 문제를 한꺼번에 해결해 주기를 바라는 국민 정서가 강할수록 선거를 통해 새로운 독재자가 등장할 수 있다. 내년 3·9 대선에 대한민국 민주주의의 사활이 걸려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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