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로고


통합 검색 입력
전체
사설
시평
시론
포럼
오후여담
[뉴스와 시각]

‘헬조선’ 누른 K컬처 ‘지옥’

장재선 기자 | 2021-11-26 11:41

장재선 문화부 선임기자

‘이런 드라마 만드는 한국 굉장하다!! 해외매체 반응 최신 업데이트.’ ‘영국 전문가 “한국인이 아니라면 불가능해요.” 충격 발언’ ‘공개하자마자 일본 드라마 제치고 1위.’

유튜브에서 최근 쉽게 발견할 수 있는 동영상 제목들이다. 넷플릭스를 통해 세계적으로 화제가 된 드라마 ‘지옥’에 관한 것이다. 이른바 ‘외국인 리액션 동영상’이다. 한국 대중문화가 세계시장에서 쾌거를 이룰 때마다 젊은 유튜버들이 앞다퉈 만든다.

문화의 힘을 실감한다. 지옥 같은 나라라며 ‘헬조선’을 운위했던 젊은이들이 드라마 ‘지옥’으로 자부심 놀이를 하는 셈이니.

과거 구미(歐美)라고 했던 유럽과 미국은 우리에게 오랫동안 선진문화권이었다. 변방국인 한국은 그 선진문화를 배워야 할 존재였다. 지금은 그런 관념이 희미해졌으나 사라진 것은 아니다. 젊은이들은 유럽과 미국인들이 한국 문화를 접하고 경탄하는 ‘리액션 동영상’을 통해 기존 관념을 완전히 뒤집어 버린다. 한 평론가는 이를 두고 “전복(顚覆)의 쾌감을 누리는 것”이라고 했다.

기억할 것이다. 20세기 말 일본 대중문화에 문호를 개방했을 때, 우리 시장이 몽땅 잠식당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높았던 것을. 그러나 되레 우리 문화 경쟁력이 커졌고, 오늘날은 일본 시장을 한국 작품들이 점령한 상황이 됐다.

‘지옥’의 연출자 연상호 감독은 우리 사회에 문화개방 흐름이 퍼지던 시기에 청년기를 보냈다. 창의력이 성장하는 배경이 됐을 것이다. 그는 “홍콩의 강시 영화 시리즈를 즐겨봤다”며 비주류 하위문화(Subculture)에 대한 애정을 밝힌 적이 있다. B급 영화와 만화에 빠져 지냈다는 그가 세계 최대의 OTT업체 넷플릭스를 통해 주류 문화시장에서 각광을 받는 것은 흥미로운 역설이다.

연 감독은 ‘지옥’에서 죄와 벌, 이성과 광기 등 다양한 주제로 질문을 던지되 답을 제시하지 않는다. 신이 왜 인간의 운명에 간섭하는지 굳이 따지지 않기 때문에 철학적으로 불가지론(不可知論)에 가깝다. 그러면서도 신을 숭배하는 인간의 관습을 뒤집는 대사로 극적 카타르시스를 선사한다. “저는 신이 어떤 놈인지도 모르고 관심도 없어요. 확실히 아는 건 여긴 인간들의 세상이라는 겁니다. 인간들의 세상은 인간들이 알아서 해야죠.”

‘지옥’은 찬사만 듣는 게 아니다. 무거운 주제를 제대로 녹여내지 못한 킬링 타임용 작품이라는 비판도 있다. 폭력 등의 자극을 지나치게 활용했다는 지적도 불거졌다.

연 감독은 그런 반응들이 다양하게 나오는 것을 당연하게 받아들인다. 자신의 세계관에 대해 평론가들이 이름 붙인 ‘연상호 유니버스’를 젊은 창작자들이 신봉하는 대신에 갖고 놀아주기를 바란다. 자기 작품을 기본으로 무엇이든 더 만들어 서브 컬처로 파생시켰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에게 중요한 것은 제패가 아니라 소통이다. 세계 시장에서 1위를 차지하는 것 못지않게 더 많은 사람이 즐기며 노는 마당을 펼치는 것에 가치를 둔다. 그러고 보면, K-컬처에 대한 외국인 반응 동영상도 자기 과시를 넘어서 세계인과 함께 즐거움을 만들어가는 쪽으로 진화할 듯싶다.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많이 본 기사 Top5

핫클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