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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후여담]

가상화폐와 선거

기사입력 | 2021-11-25 11:32

이신우 논설고문

16세기 마틴 루터는 95개 조항의 주장을 담은 글을 성당 벽에 붙임으로써 종교 개혁의 불을 댕겼다. 그의 주장은 애초 가톨릭 지도부의 윤리적 배경을 문제 삼는 데서 출발했으나 점차 모든 신자는 제사장이라는 ‘만인 제사장론’으로 확대됐다. 루터의 격문이 종교 혁명의 방아쇠를 당길 수 있었던 것은 당시엔 전혀 새로운 인쇄 기술 덕분이었다. 격문과 성경의 무한 복제 덕에 모든 신자는 누구의 도움도 없이 하나님 앞에 설 수 있게 된 것이다.

니얼 퍼거슨 미국 하버드대 교수의 저서 ‘광장과 타워’는 이 같은 과정을 민중의 네트워크와, 위계제·효율성을 장악한 국가권력의 관계를 통해 설명한다. 그에 따르면 역사상 중요한 변화들은 각종 형태의 네트워크(광장)가 기성의 위계질서(타워)에 도전하는 과정에서 발생한다. 하지만 광장은 본질적으로 무질서하고 혼란스럽다. 자칫 거짓 권력에 악용되기도 한다. 네트워크만으로는 세상이 무리 없이 굴러갈 수 없다. 기성 사회의 일부가 되기 위해서는 위계질서에 편입될 필요가 있다. 이는 정통성을 부여받는 과정이기도 하다.

한때 선진 각국의 중앙은행이나 은행의 은행인 국제결제은행(BIS)은 네트워크와 광장의 산물이라 할 수 있는 비트코인 등 가상화폐를 공공의 이익과 충돌한다는 이유로 반대했다. 그러나 가상화폐들이 최근 들어 서서히 이들 기성 사회의 정통성을 확보하기 시작했다. 미국 증권거래위원회(SEC)가 비트코인 선물 상장지수펀드(ETF)를 승인하면서 제도권 편입을 인정했으며, 국내에서도 한국교직원공제회 등이 비트코인 투자를 정식으로 발표했다. 해외 연기금들도 이미 비트코인이나 관련 기업에 대한 투자를 시작하고 있다.

그런데도 가상화폐는 여전히 무질서하고 혼란스럽다. 지하경제의 악용 가능성도 있다. 가상화폐가 광장과 네트워크 차원을 뛰어넘어 기성 사회의 일원으로 참여하려면 국가의 위계질서가 요구하는 룰을 수용하지 않으면 안 된다. 합법적 경제활동은 세금과도 직결된다. 우리 사회 일각에서는 여전히 가상화폐 자산에 대한 과세 유예를 요구하고 있지만 이는 시장 진입의 합법성을 스스로 부정하는 것이다. 가상화폐는 선거용 포퓰리즘이나 인기 영합의 대상이 아니다. 게임의 규칙을 수용하느냐의 문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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