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팬데믹 돈풀기·공급대란, 인플레 압박…경제회복 vs 물가억제 ‘딜레마’ 봉착

기사입력 | 2021-11-18 10:46



■ 김경수의 Deep Read - 글로벌 인플레, 원인과 파장

韓·美 지난해부터 통화량 치솟은 건 막대한 재난지원금 탓… 대선 후보 ‘돈풀기’ 공약, 한국경제 불안 가중
‘수요 견인·비용 인상’ 혼재하며 복잡한 양상… 임금·물가 상호 자극하면‘1970년대 경제 악순환’재연 가능성


지난달 미국 소비자물가지수(6.2%)가 치솟았다. 걸프전 직전 유가가 폭등했던 1990년 이후 최대치다. 한국도 2012년 이후 최대치(3.2%)다. 같은 달 미국 생산자물가(PPI)도 에너지 등 상품가격을 중심으로 가파른 오름세를 보였다. 같은 추세가 우리나라, 중국, 일본, 독일에서 일어나고 있다.

인플레이션은 화폐적인 현상이다. 배후엔 돈 풀기가 있다. 팬데믹 시대 막대한 재난지원금 같은 것이 통화량을 늘리고 인플레이션을 자극한다. 대선 후보들의 돈 풀기 공약과 압박이 물가를 더 자극하고, 임금과 상승 작용해 한국경제의 불안을 가중시킬 수도 있다.

◇팬데믹 경제의 딜레마

지난 10개월 동안 미 연방준비제도(연준·Fed)를 비롯한 중앙은행들은 인플레이션이 코로나19 팬데믹으로 인한 공급 사슬의 병목에 따른 일시적인 현상이며, 팬데믹이 사라지면 스스로 해결될 것이라고 자신했다. 그러나 물가가 진정되지 않고 더 큰 오름세를 타자 소비자와 투자자들은 불안해하고 있다. 소비자의 실질구매력이 감소하고 있으며 투자자들은 금, 가상화폐 등 인플레이션을 헤징할 자산을 찾고 있다.

더욱이 ‘포워드 가이던스’에 혼선이 생기면서 채권시장의 변동성이 커졌다. 올 들어 인플레이션을 구글에서 검색하는 빈도가 전 세계적으로 크게 늘어나는 형국이다. 블룸버그의 한 칼럼니스트는 ‘우리는 (중앙은행이 주장하는) 일시적인 인플레이션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야기해야 한다’는 제목의 기고문에서 물가가 항구적으로 증가하지는 않겠지만 그렇다고 금방 사그라지지도 않을 것이라는 요지의 주장을 했다.

포스트 팬데믹 경제의 회복을 이끌어야 할 중앙은행이 인플레이션 압력에 맞서야 하는 딜레마에 빠졌다. 글로벌 경제 중심인 Fed가 잘못 대처할 때 세계 경제 전체가 낭패를 볼 위험이 있다.

◇글로벌 인플레의 원인

인플레이션 원인은 셋이다. 우선 수요 측면. 경기순환과정에서 발생하는 실업률과 경기 중립적 상태에서 일어나는 자연 실업률 갭에 따른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이다. 경기 과열 때 일어난다.

다음은 유가, 환율, 공급망 등 기업의 생산비용에 미치는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 당초 글로벌 공급사슬은 생산공정의 분업화에 따른 규모와 범위의 경제가 생산성을 높이고 물가를 낮추는 데 기여했다. 그러나 현재 핵심부품에서 요소수, 볼트와 너트의 부족, 물류 병목에 이르는 다양한 요인으로 제대로 작동하지 못하는 공급사슬이 기업의 생산활동을 옥죄고 있다. 지난 5월부터 원유, 석탄, 천연가스 등 모든 에너지 가격이 천정부지로 오른 데는 경제 회복에 따른 재고 부족만이 아닌 에너지 투자가 급감한 것이 작용했다. “돌이 부족해서 석기시대가 끝난 것이 아니다”라고 했던 아메드 자키 야마니 전 사우디아라비아 석유장관의 말을 떠올리게 된다.

세 번째는 ‘기대 인플레이션’이다. 통상 인플레이션과 실업률 사이에는 부(-)의 관계가 성립한다. 호황에서는 실업률이 감소하고 인플레이션 압력이 높아지며, 불황에서는 실업률이 늘어나고 인플레이션 압력은 줄어든다. 그러나 지난 20년간 실업률 변동에도 불구하고 인플레이션은 안정적인 모습을 보인다. 한국을 비롯한 43개국 중앙은행의 물가안정목표제(IT) 통화정책이 정착돼 기대 인플레이션이 매우 안정적이게 됐기 때문이다.

기대 인플레이션은 통상 국채 수익률에서 동일 만기 물가연동국채(TIPS) 수익률을 차감해 얻는다. 투자자들이 향후 5년 동안 예상하는 연간 기대인플레이션은 1년 전보다 훨씬 높아졌다. 이 수치 자체는 문제 될 것이 없으나, 만약 앞으로도 기대 인플레이션이 계속 높아진다면 임금이 물가를, 다시 물가가 임금을 자극하는 ‘1970년대의 악순환’이 재연될 가능성도 있다. 이 경우 인플레이션은 스스로 진정될 수 없다.

◇인플레 자극하는 돈 뿌리기

밀턴 프리드먼은 “인플레이션은 언제 어디서나 화폐적인 현상”이라는 경구를 남겼다. 인플레이션의 배후에는 예외 없이 ‘뿌린 돈’이 있다는 말이다. 첫 번째 그래프는 미국의 M1 통화량 추이를 보여준다. M1이 2020년부터 천장을 뚫기 시작한 건 정부가 지급한 천문학적 재난지원금이 그 배경이다. 미 정부가 Fed에 예치한 자금을 재난지원금으로 지출했고 이 돈이 다시 은행예금으로 예치된 것이다. 두 번째 그래프는 같은 기간 우리나라의 M1 추이를 보여주는데, 정도의 차이가 있을 뿐 유사한 패턴을 보인다. 이 역시 ‘재난지원금’ 때문이다.

지난해 4월 미 Fed는 IT에서 평균 IT로 통화정책을 변경했다. 중대한 변화다. 2% 목표인플레이션을 달성하기 위한 선제적 조치 대신 사후적으로 평균 2% 인플레이션을 맞추겠다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것은 IT 통화정책 아래서 인플레이션이 더 이상 고용, 성장 등 경제에 대한 유용한 정보를 주지 못한다는 판단에 따른 것일 수도, 혹은 폴 크루그먼의 주장대로 인플레이션을 20세기 현상으로 봤기 때문일 수도 있다.

물가 안정과 함께 Fed의 또 다른 책무는 고용이다. 고용은 후행지표다. 고용률은 경제가 침체에서 벗어나도 예전 수준으로 돌아오는 데 많은 시간이 소요된다. 2009년 6월부터 팬데믹 직전까지 무려 128개월의 경기 확장에도 불구하고 고용률은 간신히 글로벌 금융위기에 따른 침체 직전 수준으로 회복됐을 뿐이다. Fed가 금리 정상화를 꺼리는 가장 큰 이유다. 그러나 만약 임금과 물가의 악순환이 일어난다면 금리 인상은 조기에 단행될 수밖에 없다. 그것은 잠자던 기대 인플레이션이 깨어나는 것을 뜻하기 때문이다.

◇경제의 ‘경로 의존성’

경제는 경로 의존적이다. 언제나 그렇듯, Fed의 통화정책은 포스트 팬데믹 글로벌 경제의 경로에 지대한 영향을 미칠 것이다. 모든 중앙은행의 문제이기는 하나 현재 Fed가 당면한 큰 도전은 인플레이션 지속성에 대한 판단이다.

중립적 통화정책 기조가 지나치게 빠르면 회복하는 글로벌 경제의 싹을 자르게 되고, 반대로 지나치게 지체돼 뒤늦게 가속페달을 밟는다면 큰 혼란이 야기될 수 있다. 더욱이 수요 견인 인플레이션과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이 혼재돼 복잡한 상황이 전개되고 있다. 경기순환 과정에서 일어나는 인플레이션은 통화 당국이 적절한 긴축 정책으로 대응하면 그만이다. 그러나 공급 측면에서 일어나는 비용 인상 인플레이션은 물가와 고용을 모두 잡는 것을 불가능하게 한다. 어느 하나를 잡으면 나머지 하나를 희생해야 하기 때문이다.

성균관대 명예교수, 전 한국경제학회장


■ 세줄 요약

팬데믹 경제의 딜레마 : 전 세계적으로 물가는 계속 오르고 소비자의 실질구매력은 감소하며 투자자들은 인플레이션을 헤징할 자산을 찾고 있음. 각국, 포스트 팬데믹 경제 회복과 인플레이션 억제 사이의 딜레마에 봉착.

글로벌 인플레의 원인 : 수요가 견인하는 경기 과열, 공급 대란에 따른 비용 인상, 높은 기대 인플레이션이 물가 상승 원인. 기대 인플레이션이 계속 높아지면 임금과 물가가 상호 자극하는 ‘1970년대 악순환’이 재연될 가능성.

인플레 자극하는 돈 뿌리기 : 밀턴 프리드먼에 따르면 인플레이션은 화폐적인 현상임. 그 배후엔 막대한 재난지원금 등 돈 뿌리기가 도사림. 지금은 팬데믹 돈 풀기에 공급 대란이 겹쳐 글로벌 인플레이션을 지속 압박하는 형국.


■ 용어 설명

‘포워드 가이던스’는 중앙은행이 미래 통화정책 방향을 시장에 예고하는 정책 커뮤니케이션 수단.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때 도입. 불확실성을 해소하고 시장을 안정화한다는 평가를 받음.

‘기대 인플레이션’이란 경제 주체들이 향후 경제 상황 분석을 토대로 예상하는 미래의 인플레이션, 즉 물가에 대한 전망. 기대 인플레이션이 높다는 건 물가가 계속 오를 것으로 내다본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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