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최상철 화백의 ‘無物’

기사입력 | 2021-11-17 11:21

김종호 논설고문

“욕심을 버리거나 줄이려고 애쓴다는 것 또한 얼마나 큰 욕심일까. 무심(無心)의 경지를 알 수 없는 내게는 그런 생각조차 이미 또 다른 이름의 욕심이 아니던가. 그리려는 열망을 안고, 어찌 욕심 없는 그림에 이를 수 있겠는가. 하나의 욕심을 지우기 위해 또 다른 욕심을 부르는 생활이 여유 없이 살아가는 내 삶의 어리석은 모습이 아닐까.” 추상미술의 독창적 세계를 열어온 최상철(75) 화백의 말이다.

‘그리기를 거부하는 화가’로도 불리는 그는 서울대 미대 회화과를 1969년 졸업한 지 10년 뒤부터 ‘붓’을 버렸다. 색칠한 종이 위에 접착테이프를 한 줄씩 붙였다가 떼어내는 작업을 반복한 작품이 그 시작이었다. 뒤이어, 캔버스에 고무 패킹 2개를 던져서 떨어진 두 지점을 선으로 연결하기를 999번 되풀이하기도 했다. 검은 물감을 묻힌 돌멩이를 캔버스 위에 놓고 기울여, 굴러가는 흔적을 남기는 작업을 1000번 반복한 작품들도 대표적이다. 거의 모든 작품을 ‘제목이 없다’는 뜻의 ‘Untitled’로 발표하다가 2004년부터 노자(老子)의 ‘복귀어무물(復歸於無物)’을 차용한 ‘무물’로 제목을 달기 시작한 그는 이렇게 설명한다. “무물이란 사물이 생성되기 전의 들끓는 혼돈의 상태를 의미한다. 근원적 지점, 궁극적으로 무의 상태에 다가가기를 바라는 마음의 한 모습이다. 어떻게 하면 그림 이전의 상태에 다다를 수 있을까 하는 내 마음의 이상향 같은 것이다. 내 체취를 걷어낼수록 진정으로 나다운 길에 들어설 수 있을 것 같다.”

그는 형이상학적 물리 법칙인 ‘우주율(宇宙律)’이 창작 주체이고, 작가는 그 결과를 발견·수습하는 역할을 한다고도 여긴다. 그의 ‘무물’ 신작 14점을 선보인 개인전이 서울 종로구 통의동 아트스페이스에서 지난 10월 28일 시작됐다. 오는 27일 끝난다. 시인·극작가·미술평론가인 장소현의 시 ‘버리기, 비우기, 얼룩- 최상철의 그림농사’를 새삼 떠올리게도 한다. 한 대목은 이렇다. ‘바흐의 무반주 첼로 곡이나 푸가의 우주율/ 또는 산사(山寺)의 풍경소리나 독경 소리/ 울림……/ 텅 빈 울림/ 거기 나는 없다/ 엎드리는 경건함만 가득할 뿐/ 엎드리는 것은 가득한 무심/ 나는 없다, 빈 그림자마저도…/ 어디로 갔을까, 어디로 가는 것일까/ 비우고 또 비우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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