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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한·중·일 지식인들의 위험한 ‘아편’

기사입력 | 2021-11-11 11:31

김명섭 연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

아시아에서 3차 대전 촉발 예언
北核에 무역 분쟁과 兩岸 긴장
‘피해의식적 민족주의’ 큰 불씨

민중의 아편 對 지식인의 아편
佛 “레이몽 아롱이 옳았다” 반성
북한 인권 상황 외면은 상징적


제3차 세계대전은 아시아에서 발발하리라는 예언이 나오고 있다. 2019년 우한(武漢) 이후 계속되는 코로나19, 대만해협의 군사적 긴장, 평양 정권의 지속적 핵무장, 그리고 요소수 파동까지 빚은 무역분쟁 등이 그 원인으로 꼽힌다. 사실은 제2차 세계대전도 아시아에서 먼저 시작됐다. 히틀러 군대와 스탈린 군대가 폴란드를 분할 점령해 유럽을 대전으로 끌어들인 것은 1939년이었다. 그보다 앞서 일본은 1931년 만주사변, 1933년 국제연맹 탈퇴에 이어 1937년 장제스(蔣介石)가 이끌던 중화민국과의 중일전쟁으로 전쟁의 포문을 열었다.

일본이 아시아를 전쟁으로 끌어들이는 동안 적지 않은 일본 지식인들은 자국의 전쟁 노선을 비판하기보다 미화하고 환호했다. 더 이상 서양으로부터 인정받는 것에 목매지 말고, 아시아적 정체성을 우선하면서 서양을 초극(超克)해야 한다는 담론이 지식인들을 매료시켰다. 영국과 미국을 귀축(鬼畜)이라고 폄훼하는 대동아(大東亞)주의의 아편(鴉片)이 일본 지식인들은 물론 식민지 조선 지식인들까지 끌어들였다.

19세기 중엽 아편전쟁 직후 유럽에서는 카를 마르크스가 종교를 ‘민중의 아편’이라고 규정했다. 억압받는 민중이 현세의 계급투쟁에는 소홀하면서 내세의 환상에 빠져 있다는 비판이었다. 그러나 20세기 중엽 레이몽 아롱은 마르크스주의가 오히려 ‘지식인들의 아편’이라고 반박했다. 1955년 이 책이 출판될 당시 프랑스 지성계는 아롱과 함께 깨어 있기보다 사르트르와 함께 취해 있기를 원했다. 2017년 러시아 볼셰비키정변 100주년을 맞아 비로소 프랑스 좌파 진영의 대표 신문 리베라시옹은 ‘아롱이 옳았다! 슬프다’라는 제목의 1면 기사를 통해 취해 있던 과거를 반성했다.

프랑스 지성계가 지식인들의 아편으로부터 깨어나는 동안 아시아 지식인들은 ‘피해의식적 민족주의’라는 또 다른 아편에 빠져서 인권을 외면하고, 증오와 전쟁을 부추기고 있다. 과거 제국주의적 전쟁정책에 동조했던 일본 지식인들의 배후에도 피해의식적 민족주의가 도사리고 있었다. 19세기 중엽 서양 열강의 힘에 굴복해서 불평등하게 개항했다는 피해의식이 메이지(明治)유신 이후 덴노(天皇) 중심의 민족주의와 결합해 있었다. 1895년 청일전쟁 승전, 1905년 러일전쟁 승전에 이어서 1914∼1918년 세계대전에서 승전국 중 하나가 될 수 있었던 배후에는 피해의식을 부추기며 국민을 전쟁에 동원했던 지식인들이 있었다.

일본은 1919년 파리평화회의에 5대 승전국들 중 하나로서 전후 국제질서 재편을 주도했지만, 피해의식적 민족주의와 결별하지는 못했다. 파리평화회의에서 ‘모든 인종의 평등’을 명문화하자는 일본의 주장이 인종차별정책을 고수하던 호주 등의 반대로 좌절된 것도 악영향을 미쳤다.

서양 제국주의를 의식하며 일본이 행했던 아시아적 제국주의로부터 피해를 본 한반도에서 민족주의가 성장하는 것은 당연했다. 그것은 일제로부터의 해방 이후 한반도 남쪽에서 산업화와 민주화, 그리고 북쪽에서 핵무장을 추동하는 정신적 동력이 돼 왔다. 어떤 형태로든 거대한 몸집을 갖게 됐지만 여전히 피해의식적 민족주의가 한반도 전체에 만연해 있다. 특히, 남쪽 정부를 비판했던 지식인들의 인권의식이 북쪽 정부를 향해서는 마비되는 이유다.

G2라고 불릴 정도의 성장을 이룩한 중화인민공화국의 상황은 더욱 심각하다. 대만에 대한 민주적이고 평화적인 통일 노력이 부족했음을 자성하기보다 서양 탓만 하는 모습이다. 1997년 홍콩을 평화적으로 반환받은 이후 중국공산당이 보여 온 강압정책이 대만의 독립노선을 강화시킨 사실은 외면하고 있다. 6·25전쟁 당시 중국공산당의 정책 결정을 비판적으로 분석했던 쉬쩌룽(徐澤榮·홍콩식 이름 데이비드 추이) 박사는 10년 이상의 감옥형을 받았다.

아편전쟁의 역사는 1911년 만주족 대청황제의 퇴위와 1997년 홍콩 반환으로 끝났다. 소련의 해체로 유럽 지식인들의 아편도 약효를 다했다. 아시아에서는 과거의 제국주의를 설욕하겠다며 스스로 제국주의적이 되는 경향이 생겨났다. 아시아 지식인들이 피해의식적 민족주의로부터 헤어 나오지 못하면 전쟁의 암운은 더욱 커질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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