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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평]

‘어게인 평창2018’ 헛꿈 버릴 때다

기사입력 | 2021-11-04 11:44

김홍균 前 외교부 한반도평화교섭 본부장

문-김정은-트럼프 리얼리티쇼
3년 뒤 현주소는 北核 더 증강
억지로 北 긍정하기 神功 수준

무리한 남북 이벤트 폐해 심각
천안함·연평도 공격과도 연관
다음 정부에 부담 떠넘길 위험


북한이 한 해에 두 번씩이나 핵실험을 하고 수십 발의 미사일을 쏘아대다가 2018년 평창동계올림픽 참가를 내세워 갑자기 평화 공세로 돌아선 이후 3차례 남북 정상회담이 열리고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과 김정은 위원장이 3번이나 만났다. 문재인 정부는 김 위원장의 이른바 ‘비핵화 결단’을 금과옥조로 삼았으며, 트럼프 대통령은 리얼리티쇼 정상회담과 자신의 천부적인 딜메이커 능력으로 금방이라도 북한 비핵화를 이룰 것처럼 자신했다. 하지만 2019년 하노이 정상회담 실패와 함께 모든 쇼가 끝난 지금 과연 무엇이 달라졌나?

북한의 비핵화는 한 걸음도 진전하지 못하고 있지만 북한의 핵·미사일 능력은 오히려 증강됐다. 북한은 우리 미사일 방어망을 회피해서 공격할 수 있는 KN-23을 포함한 신형 단거리 탄도미사일 3종 세트를 완성했고, 핵탄두 장착이 가능한 것으로 추정되는 장거리 순항미사일을 개발했으며, 열차에서 발사하는 단거리 미사일을 보여주는 한편, 성공하면 게임체인저가 될 수 있다는 극초음속 미사일과 미니 SLBM의 시험발사까지 마쳤다. 북한은 정상회담이 진행되는 중에도 숨겨 놓은 우라늄 농축시설에서 핵물질을 계속 생산하는 것은 물론 최근에는 영변 핵시설도 재가동함으로써 라파엘 그로시 IAEA 사무총장이 북한의 핵 활동이 ‘전속력으로 진행(full-steam ahead)’되고 있다고 평가하기에 이르렀다.

김 위원장은 지난달 북한판 무기박람회 격인 국방발전전람회 기념 연설에서 ‘조선반도에 조성된 불안정한 정세 아래서 군사력을 부단히 키우는 것은 혁명의 시대적 요구이자 지상책무’라며 ‘우선 강해지고 봐야’ 한다고 말했다. 그러면서 ‘우리는 남조선을 겨냥해 국방력을 강화하는 것이 아니다’ ‘우리의 주적(主敵)은 전쟁 그 자체이지 남조선이나 미국 등 특정한 그 어느 국가나 세력이 아니다’라는 알 듯 모를 듯한 궤변도 했다. 그가 ‘최대의 주적은 미국’이라고 말한 게 불과 몇 달 전이다.

문 정부는 북한이 아무리 부정적인 말을 해도 그 안에서 긍정적인 면을 찾아내는 신공을 보인다. 북한이 우리나 미국을 적으로 보지 않는다는 것은 대화를 시작할 의사가 있다는 신호를 보낸 것이라고 한다. 북한이 자신들의 미사일 발사를 도발이라고 부르지 말라고 엄포를 놓자 애매한 ‘깊은 유감’만 표시했다. 우리 외교장관은 미국더러 북한에 제공할 구체적인 인센티브를 제시하라고 하고, 중국이 공세적이라는 표현에 발끈했다. 통일장관은 국제올림픽위원회(IOC)가 북한의 올림픽 참가 자격을 정지시키고 미국 등 국제사회가 신장·위구르 인권 문제 등으로 동계올림픽 참가에 회의적인 태도를 보이는 가운데 남북이 기쁜 마음으로 손을 잡고 내년 2월 베이징올림픽에 가자고 제안했다. 이 눈물 나는 노력의 목표는 하나, 베이징올림픽 계기 남북 정상회담 이벤트의 실현인 것으로 보인다.

정권 임기 말 무리한 남북 정상회담이 가져오는 폐단은 노무현 정부 마지막 해이던 2007년 10·4 정상회담이 잘 보여준다. 당시 임기가 몇 달도 남지 않았던 노 정부는 북한과 엄청난 규모의 경제협력사업에 합의했다. 경제특구 건설과 해주항 활용, 개성공단 2단계 개발 건설 착수, 개성∼신의주 철도, 개성∼평양 고속도로 개·보수 추진, 안변·남포 조선협력단지 건설, 백두산 관광 위한 백두산∼서울 직항로 개설 등 공수표를 마구 남발한 것이다. 지키지도 못할 약속만 잔뜩 떠안은 이명박 정부에 대한 북한의 빚 독촉이 결국 천안함 폭침과 연평도 포격이라는 전대미문의 도발로 이어졌다는 분석에 고개가 끄덕여진다.

‘하노이 대첩’에서 쓴맛을 본 후 핵·미사일 능력 확장에 매진하는 북한은 제재 해제 확답을 듣기 전에는 협상에 나올 의사가 없다. 미국은 북한과의 대화에는 열려 있지만 북한을 협상장에 모셔오기 위해 먼저 제재를 풀 생각은 없다. 미국과 매사 부딪치는 중국이 중재에 적극 나설 리도 없다. 모든 여건이 남북관계 진전에 불리한 상황이다. 지금 정부가 할 일은 국방을 굳건히 하고 동맹을 튼튼하게 유지하면서 차기 정부에 순조롭게 공을 넘기는 것이다. 섣불리 ‘어게인 평창2018’을 추진했다간 다음 정부와 국민에게 무거운 짐만 지울 게 뻔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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