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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과학기술 강국 이끌 지도자 기대한다

기사입력 | 2021-10-22 11:13

박성현 前 한국과학기술한림원 원장 서울대 명예교수

지금은 지능디지털화의 시대
4류 정치가 국가발전 걸림돌

한·미동맹→ 과기동맹 승화 땐
서방 선진국들과 협력 쉬워져

대선 주자들 현실을 직시하고
과학기술 공약 개발에 관심을


요즘 대선 후보들이 공약을 내놓고 있지만, 과학기술 정책에 대한 공약은 별로 보이지 않는다. 한국 경제를 세계 10위권 국가로 키워준 과학기술에 대한 관심이 국정에서 밀려난 것 같고, 국민적 관심사도 아닌 것 같다.

우리나라는 선진국으로 분류되면서도 선진국답지 않고 진영 논리와 정치 논리가 과학기술 전문성을 압도해 국가 경제가 타격을 받는 일들이 발생하고 있다. 지난 4년 동안의 맹목적인 탈원전 정책으로 에너지 정책이 주먹구구식 정책의 대명사가 돼 버렸다. 세계 최고 수준의 경제성과 안전성을 확보한 원자력발전 기술은 회복하기 힘들 정도로 망가지고 있다.

삼성의 고(故) 이건희 회장은 지난 1995년 중국 베이징(北京)에서 “우리 정치는 4류, 관료는 3류, 기업은 2류”라고 했다가 곤욕을 치른 적이 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그의 언급은 지금도 틀리지 않는다. 정치는 퍼주기 식 포퓰리즘의 늪에서 벗어나지 못하면서 미래에 대해서는 안중에도 없는 후진국형이고, 관료 사회는 영혼을 잃고 본연의 기능을 못 하고 있다. 그나마 기업들이 혼신의 힘을 다해 일하고 있어 국가 경제를 간신히 지탱하는 형국이다.

돌이켜보면, 우리나라는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저개발 농업국으로 세계 최빈국이었다. 그러나 1970년대에 들어서면서 박정희 대통령의 과감한 중화학공업 정책 추진으로 산업화에 성공하고, 1990년대에 들어서는 정보통신기술(ICT) 발전에도 순발력 있게 적응함으로써 정보화에도 성공해 한강의 기적을 경험했다. 지금 우리는 빅데이터, 인공지능(AI), 사물인터넷(IoT), 자율주행자동차 등 4차 산업혁명 지능디지털 변환 시대에 살고 있다. 급변하는 이 디지털 시대에 우리는 얼마나 잘 적응하고 있고, 앞으로 국가 경제를 튼튼하게 할 수 있는 과학기술 강국으로 부상할 수 있을까?

스위스 국제경영개발원(IMD)이 발표한 ‘2020년 세계 디지털 경쟁력 평가’를 보면 한국은 63개국 중 8위다. 이 평가는 지식·기술·미래 준비도 3개 분야로 이뤄진다. 우리나라는 새로운 기술을 이해·발견·확장할 수 있는 역량을 측정하는 지식 분야에서 10위, 디지털 혁신 역량을 나타내는 기술 분야에서 12위, 디지털 변환에 대한 미래 준비 정도에서 3위를 기록해 종합 8위로 어중간한 위치다.

한국은 지난 수십 년간 산업화·정보화에 성공했고, 이제 매일 급변하는 지능디지털화 시대의 길목에 있으면서 과학기술 강국으로 발전할지 아니면 추락할지 기로에 서 있다. 4류 정치가 과학기술을 억눌러 국가 발전을 저해하고, 전문성이 요구되는 정부의 과학기술 분야 지도자 자리를 낙하산식 코드 인사가 차지하는 상황이 계속된다면, 과학기술 후진국, 경제 후진국으로 다시 돌아갈지도 모른다.

이 시점에서 과학기술 강국으로 가기 위한 당면한 중요 과제 3가지를 제시해 본다.

첫째, 정부는 과학기술의 3대 혁신 주체들인 기업, 정부 출연 연구소와 대학이 상호 협력 체계를 갖추고 마음껏 자율적으로 연구·개발(R&D)에 매진토록 각종 규제를 없애고 자유로운 연구 여건을 조성해 줘야 한다. R&D 정책에서도 정부 주도의 하향식(top-down)이 아니라, 혁신 주체가 주도하는 상향식(bottom-up)이어야 효율적이다. 물론, 고위험(high risk) 기술 개발에는 정부 주도의 R&D 투자나 정책금융 지원이 필요하다. 그러나 이 경우에도 정부는 현장 전문가들의 의견을 존중하고 협력자의 입장에서 지원하는 게 바람직하다.

둘째, 과학기술 강국을 이끌어갈 유능한 인재 양성이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는 1명의 유능한 창의적 인재가 ‘100만 명을 먹여 살린다’는 말이 있다. 초·중·고·대학 교육에서 컴퓨팅 사고력 기반의 소프트웨어, 데이터 과학, AI 등의 정보교육이 강화돼야 한다. 현재 정보교육에 배정된 시수는 초등학교 17시간, 중학교 34시간으로 총 51시간이다. 이는 전체 초·중등 공교육 시수의 0.4%에 불과하다. 미국을 비롯한 선진국은 200∼400시간 이상의 정보교육을 운영하고 있다. 이제는 교육의 패러다임을 바꿔야 할 때다. 정보교육을 초·중·고에서 대폭 강화해야 하고, 대학에서도 모든 학문 분야에 필수로 정보교육 과목을 넣어야 한다. 그리고 암기식 지식 전달 교육이나 선다형 수능시험도 창의적 인재 양성에 적합하지 않다.

셋째, 한·미 군사동맹을 과학기술 동맹으로 승화·발전시켜야 한다. 한·미 동맹은 북한의 남침을 억제하고 대한민국의 번영을 담보해 주는 중요한 역할을 해 오고 있다. 4차 산업혁명 시대에 국가 경쟁력을 계속 키워 나가려면, 과학기술 선진국들(미국, 일본, 독일, 영국 등)과 긴밀한 협조 관계가 필수적이며, 한·미 군사동맹을 과학기술 동맹으로 승화시키면 서방 선진국들과의 협력이 쉬울 것이다. 지난 5월 한·미 정상회담에서 AI와 양자 기술 등 미래 첨단 기술 파트너십에 이미 합의한 바 있다. 이런 파트너십의 구체적 실행은 한·미 간의 과학기술 동맹을 촉진할 수 있을 것이다.

대선 주자들도 길목에 서 있는 대한민국의 현실을 직시하고 과학기술에 관한 공약 개발에 깊은 관심을 가지기를 희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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