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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며 생각하며]

미술 작품에 대한 평가

기사입력 | 2021-10-01 11:31

김영나 서울대 명예교수, 前 국립중앙박물관장

고흐 작품 생전엔 인정 못받고
세상 떠난 뒤에 신화로 떠올라

급속하게 변화하는 세태처럼
미술에 대한 견해·평가도 급변

새로움 수용하는 데 시간 걸려
보는 사람들의 열린 사고 필요


최근 유명 연예인들이 자신이 그린 미술 작품을 전시한다는 뉴스를 심심찮게 접한다. 더러는 상당히 비싼 가격으로 팔리기도 하는 것 같다. 현대미술에서 미(美)의 구현이나 기술보다는 아이디어가 중요해지면서 정식 미술학교를 나오지 않았더라도 논리를 갖추면 누구나 미술가가 될 수 있으니 가타부타할 필요는 없을 듯하다. 이제는 미술가냐 아니냐를 떠나 훌륭한 미술가냐 아니냐가 문제가 된다.

그러면 훌륭한 미술가인지 아닌지는 누가 판단하는가? 어린아이가 그린 그림과 파블로 피카소가 그린 그림이 비슷하게 보이는데 왜 피카소는 유명한 화가인가 하는 질문이 나올 수 있다. 필자도 미술사를 공부하던 유학 시절에 훌륭한 작품과 그렇지 않은 작품을 어떻게 구분하느냐 하는 질문을 교수에게 한 적이 있다. 교수는 빙그레 웃으면서 언젠가 알게 될 것이라고 짧게 대답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그것은, 작품을 많이 접하고 훈련을 하면 안목이 생긴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그런데 미술 작품을 보고 그 독자적인 시각과 표현 방법을 알아보는 안목은 쉽게 생기는 게 아니다. 특히, 현대미술의 경우 끊임없이 변하는 미술을 이해하기 위해서는 부단히 공부해야 한다.

이제까지 미술품에 대한 평가는 안목을 갖췄다고 판단되는 문화 집단의 전문가들, 즉 미술사학자, 미술관 큐레이터, 화상, 수집가 또는 평론가 등에 의해 이뤄졌다. 그런데 그들이 항상 옳았던 건 아니고, 어떤 때는 미술가의 독창성이 문화 전문가보다 앞서가기도 한다. 아마 가장 유명한 예는 빈센트 반 고흐(1853∼1890)일 것이다. 생애에 작품 한 점만을 400프랑(현재 가치로 약 1100만 원)에 팔았고, 폴 고갱과 말다툼 끝에 귓불을 자르고, 37세에 스스로 목숨을 끊은 반 고흐의 삶은 불행한 화가의 생애로 마무리되는 듯했다. 그러나 그는 오늘날 가장 유명한 화가이고, 경매에서도 가장 비싸게 팔리는 작가 중 한 사람이다.

왜 당시 평론가들은 반 고흐를 인정하지 않았을까? 반 고흐는 정식 미술학교를 나오지는 않았지만, 1887년 파리에 가서 사설 화실에 다니며 열심히 배우려고 했다. 파리에 간 후 그의 어두운 색채는 인상파 화가들처럼 다양한 밝은 화면으로 바뀌었다. 그런데 그의 화풍은 빠르게 변화해 인상주의를 넘어서 강렬한 원색을 사용하고 표현주의적 터치를 구사하는 독자적인 양식으로 변신했다. 겨우 인상파 화가들의 그림에 익숙해진 평론가들 대다수는 이 부분을 이해하지 못했고 그림이 지나치게 거칠다고 봤다. 반 고흐에 대한 평가가 달라지기 시작한 것은 그가 죽은 지 불과 1년 뒤였다. 1901년에 열린 반 고흐의 사후 개인전은 앙리 마티스나 모리스 드 블라맹크 등 새롭게 등장한 젊은 화가들의 큰 관심을 끌었고, 그의 삶과 열정은 ‘반 고흐 신화’를 낳았다.

오늘날 미술사에서 중요하게 다뤄지는 미술 작품이 인정을 받지 못한 예는 수두룩하다. 크레타 섬 출신으로 스페인에 가서 강렬하고 개성적인 종교화로 이름을 떨친 엘 그레코(1541∼1614)에 대한 평가도 우여곡절을 겪었다. 초자연적 광선 속에 종교적 인물들을 작은 머리와 길게 왜곡된 신체로 표현하면서 엘 그레코는 신비스러운 종교화를 제작하는 화가로 인정받았고, 교회와 귀족들의 후원으로 많은 작품을 제작했다. 그의 표현주의는 종교화의 환상성이 그림을 보는 사람들에게 주는 감정적 효과를 계산한 매우 지적인 성과였다. 그런데 이후에는 엘 그레코에 대한 평가가 갈리기 시작했다. 그의 인체 왜곡이 심지어 난시(亂視) 때문이란 평도 받았고, 그는 흥미로운 이류 화가로 평가됐다. 엘 그레코 작품에 대한 시각이 달라진 것은 19세기 말 피카소가 그의 영향을 받아 청색 시대의 작품을, 그리고 독일에서는 표현주의 운동이 시작되면서였다.

1950년대 후반 미국의 화가 로버트 라우션버그(1925∼2008)는 신문과 잡지에서 오려낸 뉴스나 사진, 박제된 독수리와 염소 등을 작품에 부착하고 그 위에 물감을 마구 칠했다. 그가 뉴욕의 레오 카스텔리 화랑에서 개인전을 가졌을 때 한 추상표현주의 화가는 그의 작품을 발로 찼고, 뉴욕 타임스의 미술평론가 힐턴 크레이머는 작가의 의지, 손에 의한 작품이 아닌 것은 미술이 아니라고 혹평했다. 라우션버그는 작가의 내면세계를 붓과 물감으로 표현하는 것만이 미술이라는 기존 개념에 반발하면서 중요한 것은 제작 행위와 아이디어라고 주장했다. 그는 도시 생활에서 마주치는 여러 평범한 물건이나 이미지로 구성된 자신의 화면도 당대 경험의 표현이라고 보았다.

라우션버그의 작품과 같은 현대미술은 전통적인 시각으로는 이해하기 어렵고 새로운 인식과 해석이 필요하다. 지크문트 프로이트,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스티브 잡스가 자기 분야에서 관습을 뒤집고 새로운 패러다임을 만들어낸 것과 마찬가지다. 하루가 다르게 변하는 세태처럼 미술에 대한 견해와 평가도 달라진다. 새로움이 받아들여지는 데는 시간이 걸리고, 보는 사람들의 열린 사고가 필요하다. 당대의 몇몇 비평가가 혹평했던 라우션버그의 작품은 지금 현대미술의 중요한 전환점으로 평가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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