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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대주택도 커뮤니티·육아시설 늘려야 성공…‘패러다임’ 바꿔야

기사입력 | 2021-10-01 10:23


유동균 서울 마포구청장

세계에서 가장 살기 좋은 도시는 10년째 같다. 바로 오스트리아 빈. 컨설팅업체 머서(Mercer)가 매년 발표하는 이 평가의 공식 명칭은 ‘Quality of living city ranking’, 말 그대로 ‘삶의 질’을 따진다는 것인데 빈은 이 평가에서 무려 10년 동안 부동의 1위를 지켰다. 비결 중 하나는 주거 정책. 그리고 그 중심엔 지은 지 100년이 다 돼가는 ‘카를 마르크스 호프(Karl Marx Hof)’가 있다.

이곳은 1930년 빈시가 노동자의 주거 안정을 위해 지은 대규모 공공임대주택이다. 공동세탁장, 유치원, 병원, 우체국 등 공공시설이 전체 건물면적의 20%를 차지한다. 특히 단지 내 시설에서 아이들의 저녁 식사를 챙겨줘 부모의 육아 부담을 한결 덜어준다. 공동주택이 4면을 둘러싸고 가운데 커뮤니티 공간인 정원을 배치한 단지들이 녹지 위로 1100m나 이어져 외관만 보면 마치 고급 주택단지 같다.

서울 마포구는 기초자치단체로는 드물게 공공임대주택 사업을 하고 있다. 주거가 삶의 가장 크고도 중요한 문제라 여기는 게 어디 필자뿐이겠는가. 정부와 지방자치단체는 다양한 공공임대주택 정책을 시행하고 있고, 이 틈을 메울 대안으로 사회주택까지 여럿 등장했다. 그럼에도 여전히 젊은이들은 ‘지옥고’(지하방·옥탑방·고시원)를 겪으며 결혼을 하지 않고, 하더라도 집값과 육아의 이중고를 이유로 아이를 갖지 않는다. 나이가 들면 외롭고 아픈 법이다. 해를 거듭할수록 임대주택은 주거 취약계층의 거처 역할을 넘어 거주자의 주거 편익을 강조한 대상자별 전문화된 주택으로 그 기능이 확장돼야 한다는 생각이 커졌다.

카를 마르크스 호프 이야기로 돌아가 보자. 그곳에는 노동자를 위한 육아시설과 급식 시스템이 갖춰져 있다. 우리의 임대주택도 저렴한 임대료만 앞세우는 게 능사는 아니다. 청년에게는 소통을 위한 커뮤니티가, 신혼부부에게는 육아 시설이 필요하다. 어르신에게는 건강과 여가를 위한 공간이 있어야 한다. 다양한 세대가 한데 어울려 산다면 금상첨화다. 외관 역시 유럽의 고급 주택단지까지는 아니라도 기존의 가난하거나 장애가 있는 사람이 사는 곳, 혹은 슬럼가의 이미지를 씻어내야 한다.

하지만 아무리 좋은 정책도 국민이 동의하고 받아들이지 않으면 실현될 수 없다. 임대주택의 패러다임 전환도 마찬가지다. 일부에서는 임대주택이 들어서면 아파트 가격이 내려가고, 일대가 우범지역이 될 수 있다는 우려의 목소리가 여전하다. 하지만 실제 행복주택이나 임대주택이 들어선 지역에는 새로운 대중교통 노선과 기반시설이 생기고, 이로 인해 젊은 인구가 유입된다고 하니 기우가 아닐 수 없다.

과거 세대의 앞선 주거 정책 덕분에 ‘집은 사는(buy) 곳이 아닌 사는(live) 곳’이 실현된 도시의 시민들은 자가 보유율이 30%를 겨우 넘고, 60% 정도가 공공임대주택에 살면서도 세계 최고의 삶의 질을 누린다. 머릿속에 이들의 모습과 함께 ‘정치꾼은 다음 선거를 생각하고, 정치가는 다음 세대를 생각한다’는 한 경제학자의 말이 떠오른다. 지금이야말로 주거 정책에 눈앞의 이익보다 100년 후를 내다보는 지혜가 발휘될 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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