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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용권 사회부 차장

최근 인기 드라마 ‘슬기로운 의사생활’에서 묘사되는 의사들은 환자에게 진심이다. 그들이 환자는 물론 보호자와 이해를 바탕으로 소통하면, 환자와 가족들 역시 의사들을 신뢰한다. 의사들 사이에서 이런 환자와 의사의 신뢰 관계를 ‘라포(Rapport)’라고 부른다. ‘다리를 놓다’라는 프랑스어에서 온 말로 ‘라포르’라고도 한다. 라포가 없으면 고칠 수 있는 병도 고치지 못하는 일이 발생하기도 한다. 상호 신뢰와 믿음이 중요하다는 의미다.

포퓰리즘 좋아하는 여당이 대선 앞두고 수술실 CCTV 설치법안을 강행하고 있다. 각종 여론조사에서 CCTV 설치를 찬성하는 의견이 80%를 넘은 만큼, 국민 입장에서 또는 환자 입장에서는 좋은 일처럼 보인다. 과연 그럴까. 전 세계적으로 유례없는 이 법안에 세계의사회(World Medical Association·WMA)는 “수술실 CCTV 설치 의무화는 의사에 대한 환자의 신뢰를 무너뜨릴 것”이라고 비판했다. 바로 ‘라포’를 무너뜨린다는 것이다.

CCTV 설치법안 추진 과정에서부터 정부와 여당은 국민과 의사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었다. 극소수의 수술실 범죄 사례를 앞세워, CCTV 찬성 여론조사 결과를 들이밀면서 법 시행 이후 각종 부작용을 우려하는 의사들을 국민 의견에 반하는 수구세력으로 매도했다. CCTV가 설치되면 의사의 불편함보다 환자 입장에서 잃는 것이 더 많을 듯하다. 대리수술 등 소수의 범죄 행위는 방지할 수 있겠지만, 수술 집도의의 과감한 결단과 결정이 필요한 고위험 수술을 기피하는 의사가 많아질 게 분명하다. WMA 역시 “의사들이 어려운 처치는 주저하게 될 것”이라고 우려했다. 흉부외과 등 외과계는 전공하겠다는 의사들이 사라질 수도 있다.

의료인뿐만이 아니다. 거대 여당은 정부와 여당의 문제점을 비판적으로 접근해온 언론 역시 국민과의 관계를 불편하게 만들고 있다. 언론중재법 추진 과정에서도 여론조사를 앞세워 반대 의견을 수구세력으로 몰고 가는 문재인 정부의 행태가 다시 반복됐다. 게이트 키핑과 팩트체크를 거치지 않는 SNS 등의 1인 미디어, 유튜브 등에서 생산되는 가짜 뉴스를 언론 전체의 문제인 것처럼 호도한 탓이다. 이 탓에 상당수 국민은 언론중재법의 불합리함을 지적하는 국내외 학계 및 언론단체의 발표에 냉소적인 모습이다. 이 역시 언론보다는 국민이 손해다. 언론기관의 취재가 위축되면서 입법, 사법, 행정기관에 대한 감시와 견제라는 언론의 기능이 제대로 발휘될 수 없는 탓이다. 현재 세계의학교육연합회 부회장인 안덕선 고려대 명예교수는 의사협회 칼럼에 “당·정·청의 권력으로 언론이나 검찰 그리고 대표적 전문직인 의사에 대한 통제를 해야만 한다는 전체주의적 관료주의 사고는 전문직의 규범을 법으로 해결하려 하지만, 우리나라에서 전문직의 규범에 대한 논의는 진지하고 치열한 논의를 거쳐 국민적 합의를 본 적이 없다”고 지적했다. 코로나19 사태 극복을 위해선 의료인과 국민 간의 라포 형성이 중요하며, 막강한 국가 및 정치권력에 대한 견제와 감시를 위해서도 언론과 국민의 라포가 필수다. 정부와 여당이 그릇된 포퓰리즘으로 방해하지만 않으면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