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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관범 산업부 차장

‘이재용 삼성전자 부회장은 왜 사면해야 하나?’ 이 같은 질문을 문재인 대통령과 만난 간담회에서 사면을 건의한 최태원 SK그룹 회장에게 직접 묻는다면 그는 뭐라고 대답할 것인가. 아마도 그라면, “나를 보면 알 수 있지 않겠냐”며 반문할 것이다. 옥중 이력을 보면 최 회장이 이 부회장보다 단연 경험이 많다. 이 부회장이 옥중에서 어떤 고민을 해왔는지 누구보다도 더 잘 공감할 수밖에 없다. 최 회장은 2015년 8월 14일 새벽 광복절 특사로 출소했다. 2년 6개월 수감 생활을 마치고 사회에 나오자마자 바로 다음 날 경영에 복귀했다. 사흘 만에 최고 경영진과 확대 경영회의를 소집하고 획기적인 투자 확대와 혁신적인 청년 일자리 창출을 독려했다. 특히 “내가 앞서서 풍상을 다 맞을 각오로 뛰겠으니 전 구성원이 대동단결해서 매진해 달라”고 당부했다고 한다.

최 회장의 경영 복귀 일성은 빈말이었을까. 신뢰도가 높은 편인 공정거래위원회 자료를 살펴보면 진위를 가늠해 볼 수 있다. SK그룹의 상시 종업원 수는 2015년 8만2678명에서 2020년 11만4481명으로 무려 3만1803명이나 증가했다. 증가율은 무려 38.5%였다. 같은 기간 삼성그룹의 상시 종업원 수는 25만4031명에서 26만2127명으로 8096명 늘었다. 증가율은 3.2%. 30대 그룹 평균 고용 증가율이 0.6%인 점을 고려하면 재계 서열 1위인 삼성이 부족했다기보다는 3위인 SK가 월등했던 것으로 해석된다. 하이닉스 인수 효과가 아니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정작 인수가 이뤄진 시점은 2012년이다. 최 회장 복귀 후 SK는 공격적인 투자와 인수·합병(M&A)은 물론, 이에 준할 만큼 사회적 가치 실현에 열을 올리는 모습을 대내외에 보여왔다. 지난해만 해도 인텔의 낸드 플래시 메모리 사업부를 10조3000억 원에 인수했다. 이제는 아예 이사회에서 CEO 경영 성적을 평가할 때 사회적 가치 실현을 재무적 성과 만큼이나 비중 있게 본다. 물론 최 회장의 실험은 이제 막 반환점을 돌았을 뿐이다. 평가는 국민이 할 것이다. 성공한다면 사회적 가치와 재무적 가치를 동등하게 중시하는 새로운 기업가 시대의 서막을 열었다는 평가를 받게 될 것이다. SK와 삼성의 시간이 극명하게 엇갈린 5년이었다.

정·관계에서는 사면을 대통령의 고유 권한이라고 말한다. 정치인이나 관료 모두 사면에 대해 언급하는 것 자체를 대통령의 고유 권한을 침범하는 ‘불경’으로 여기는 분위기다. 하지만 반만 맞는 얘기다. 사면은 국민의 고유 권한이다. 대통령도 국민의 뜻을 우선해서 판단해야 한다. 광복절 특사 대신 13일 가석방으로 풀려난 이 부회장을 보노라면 과연 현 정부가 반도체·배터리·바이오산업의 패권을 두고 안보 전쟁을 벌이는 현 정국에서 이 부회장에게 국가 경제 발전에 헌신할 기회를 줘야 한다는 경제계와 국민적 요구에 귀를 기울였는지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이 부회장은 지난 5년 동안 검찰과 법원, 교정시설을 오가며 날을 보냈다. 검찰 및 특검 소환 조사 10회, 구속 영장실질심사 3회, 재판 참석만 94회에 이른다. 일자리를 걷어찰 심산이 아니라면 이제라도 경영 복귀의 발목을 잡는 ‘취업 제한’ 등은 풀어줘야 할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