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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녹슨 시간’ 벗겨내며… 쇠락한 옛 도심의 살아보려는 몸부림

박경일 기자 | 2021-07-29 10:12

북성로에서 가장 먼저 리노베이션된 카페 ‘삼덕상회’를 운영하는  천광호 화백이 스케치한 북성로 공구박물관 건물.  지금은 시간과공간연구소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북성로에서 가장 먼저 리노베이션된 카페 ‘삼덕상회’를 운영하는 천광호 화백이 스케치한 북성로 공구박물관 건물. 지금은 시간과공간연구소 사무실로 쓰이고 있다.



■ 대구 북성로·향촌동 ‘도시재생 여행’

일제때 대구 최대 번화가… 해방뒤 공구 거리로 흥청거린 곳
이제는 누추한 골목마다 비어버린 상가·값싼 선술집만 남아

2011년부터 활동가들이 스토리 있는 건물 골라 ‘시민 중심’투자
레트로 분위기 카페 시작으로 갤러리·편집숍 등으로 부활 꿈꿔



대구=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도시는 고유의 분위기와 존재 방식이 있습니다. 비슷해 보이지만 도시는 다 다르지요. 한 도시를 보는 시선으로는 다른 도시를 해석하기 어렵습니다. 제가 사는 도시를 중심으로 다른 도시를 해석하려 한다는 건, 실은 다른 도시가 아니라 그 도시에 견줘 제가 살던 도시를 되돌아보는 방법에 더 가까운 일입니다.

도시에 가면 이런 것들을 관찰합니다. 내가 살던 도시보다 더 개방적인지, 아니면 폐쇄적인지. 내가 살던 도시보다 전체적으로 어두운지, 혹은 밝은지…. 개방적이거나 폐쇄적이라면, 어둡거나 밝다면, 그 이유는 과연 무엇인지…. 그래서 파악하게 되는 건 내가 사는 도시, 곧 내가 사는 자리입니다.

도시 사람들에게 다른 도시를 여행한다는 것의 의미는 어쩌면 자신이 살고 있는 도시와 그 도시에 사는 자신의 좌표를 확인하는 일인지도 모르겠습니다. 이번 여행의 목적지는 대구입니다. 대구의 이름난 관광지나 눈부시게 휘황한 중심이 아니라 한때 번성했으나 이제는 쇠락해가고 있는 구도심의 뒷골목입니다.

오래전의 흔적이 박제처럼, 혹은 폐허처럼 남아 있는 곳입니다. 그곳에서는 녹슨 시간을 벗겨내고자 했던, 그래서 과거의 영광을 다시 불러내 보고자 했던 시도가 있었습니다. 아니, 도시재생의 시도는 아직도 계속되고 있으니 ‘현재진행형’입니다.

지금부터는 도시재생의 시도가 도시에 만든 것들, 그리고 그걸 보는 방법의 얘기입니다. 이건 여행을 제안하는 게 아니라 ‘도시를 여행하는 방법’에 대한 제안입니다. 여태 사라지지 않은 것과 다시 되살려진 것들이 뒤섞인 풍경은 좀 어수선합니다. 한때의 번성도, 그 번성의 영광을 재현하려는 재생도 완결이나 완성은 없습니다. 도시는 생명처럼 살아 움직입니다. 나무가 자라 쓰러지고, 쓰러진 자리에 다시 싹이 트는 것처럼 말입니다.


# 그 도시 사람들은 무엇으로 먹고살까

대구에서 여행을 시작하기 전에 먼저 ‘조언’ 한마디를 듣고 가자. 대구 도심 ‘근대 골목 투어’의 최초 기획자이자 대구 북성로의 도시재생사업을 이끌었던 권상구 시간과공간연구소 이사에게 청해 들은 ‘도시 여행법’에 대한 조언이다. “도시를 여행할 때는 그 도시의 사람들이 무슨 일을 하면서 먹고사는지를 눈여겨보세요. 그래야 그 도시의 정체성을 들여다볼 수 있습니다.” 도시의 정체성을 알고 나면 비로소 그 도시를 ‘어떤 시선으로 봐야 하는지’를 알게 된다. 도시를 바라보는 ‘프레임’이 생긴다는 뜻이다. 권 이사는 이렇게 단언했다. “(여행자가) 프레임을 갖고 있지 않으면 (도시가) 안 보입니다.”

도시의 외형이나 느낌보다는 도시가 가진 맥락을 이해하는 게 중요하다는 뜻이겠다. 그에게 대구를 물었다. 그는 대구가 가진 보수적 정서를 ‘상인의 전통’에서 찾았다. 대구는 근대 이후부터 ‘소규모 제조에 기반한 판매업’이 성한 상업도시였다는 것. 대구는 아직도 소상공인 비율이 가장 높은 도시다. 상인들은 이득을 중심으로 움직이고, 부를 축적하고 나면 정치적 변화를 두려워하는 법. 그러나 반전이 있다. 임계점을 넘는 순간 상인들은 가장 빠르게 변화의 물결 맨 앞자리에 선다. 이 설명을 듣고 나면 도대체 이해할 수 없었던 실타래가 풀리는 느낌이다.

대구 정서가 ‘상인의 전통’에서 출발한다면 대구에서 ‘가장 대구다운 공간’은 어디일까. 그곳을 찾아간다. 대구 북성로. 대구 사람들에게 북성로는 그냥 ‘북성로’다. 서울 사람들에게 명동이 ‘명동’이고 종로가 ‘종로’이듯, 대구 사람들에게 북성로는 ‘북성로’ 그 지명만으로도 충분하다.

일제강점기에는 대구의 최대 번화가이기도 했고, 그 뒤로는 미군 부대에서 흘러나온 군수품을 기반으로 공구 거리로 흥청거렸던 곳. 지금은 함께 쇠퇴해가는 신세지만, 북성로는 한때 유흥업소들로 넘쳤던 향촌동과 이어져 있었다. 향촌동은 그냥 유흥가가 아니었다. 6·25전쟁 당시 대구로 피란 온 문인들이 술과 노래와 기행으로 한 시대를 풍미했던 곳이기도 하다.

대구 출신이 아니라면 북성로의 복합적 정체는 비유로 이해할 수밖에 없을 듯하다. 서울로 비유하자면 예전의 청계천 세운상가에다 명동을 비벼 넣은 뒤, 거기다가 값싼 식당이 즐비한 파고다 공원 뒤편 낙원동 분위기를 섞는다면 대구의 북성로와 비슷하지 않을까. 물론 이것만으로 북성로가 가진 다양한 표정을 다 보여주진 못하지만 말이다.


# 북쪽 성벽을 헐어 길을 내다…북성로

북성로는 대구 최초의 신작로였다. ‘북성(北城)’이란 이름대로 대구읍성의 북쪽 성곽을 헐어낸 자취가 그대로 길이 됐다. 돌로 쌓았던 대구읍성 북쪽의 성벽은 두께 그대로 북성로의 폭이 됐다. 북쪽 성벽이 북성로가 된 것처럼 동성로(東城路) 역시 동쪽(東) 성곽(城)이 헐린 자리에 놓인 길이다. 서성로와 남성로의 지명도 역시 똑같은 방식으로 붙여진 것이다.

대구읍성이 허물어진 시대로 돌아가 보자. 읍성을 허물어버린 건 친일 관료인 대구 관찰사 박중양이었다. 읍성 북쪽에 대구역이 들어선 이듬해인 1906년, 몰려든 일본인 거주자의 청원을 받은 박중양이 조정의 승인 없이 대구읍성을 헐어냈다. 뒤늦게 철거 사실을 알게 된 조정이 ‘철거 불가(不可)’ 명령을 내렸지만 그는 읍성 해체를 강행했다. 박중양이 성을 헐어낸 건 이번이 처음이 아니었다. 한 해 전 박중양은 진주판관 자리에 있을 때도 진주성 일부를 팔아넘겨 해체했다. 임진왜란 당시 왜병 5만여 명의 침략에도 난공불락이었던 진주성이 촉석루만 남기고 사라져버린 이유다.

성곽을 허물어 만든 길인 북성로 일대는 일제강점기부터 1960년대까지 명실상부한 대구의 대표 번화가였다. 1932년에 엘리베이터까지 있었던 미나카이 백화점이 북성로에 들어섰고, 1935년에는 대구 최초로 도로포장이 이뤄졌다. 해방을 거치고 6·25전쟁을 겪으면서 주변에 미군보급창이 들어서자 여기서 흘러나온 군수물자를 기반으로 북성로는 공구 골목으로 변신했다. 이 과정에서 대구 최대 번화가 자리는 북성로 바로 옆 향촌동으로 옮겨갔다. 그리고 1980년대 들어 상권은 동성로로 빠르게 이동해가면서 향촌동은 급속도로 쇠퇴했다.

도시 성장단계의 정점을 지난 북성로와 향촌동이 이번 대구 도시 여행의 주된 목적지다. 이곳에서 봐야 할 것은 쇠퇴한 도시 골목 풍경과 함께 무너진 도시가 다시 스스로의 문제를 해결하며 재생하고 있는 모습이다. 쇠퇴한 도시 뒷골목의 풍경은 북성로와 향촌동 어디에나 있다. 누추한 골목과 비어버린 상가, 낡고 쇠락한 상점. 주머니가 가벼운 중년 이상의 손님들이 드나드는 값싼 선술집과 밥집들…. 북성로의 골목은 늙어서 초라하지만 한편으로는 정돈된 수직의 도시에는 없는, 잘 설명할 수 없는 온기가 있다.


# 오래된 공간에 입혀지는 새로운 가치

북성로와 향촌동의 도시재생은 집합적이거나 전면적이지 않다. 이곳의 도시재생이 다른 도시의 도시재생과는 사뭇 달라 그렇다. 가장 큰 차이는 ‘시민 중심의 민간투자방식’이라는 점이다. 도시재생 공간이 골목에 띄엄띄엄 숨어 있는 건 그래서다. 활동가들은 근대건축물의 구조를 분석하고 스토리를 뒤져 가치가 있다고 판단되는 근대의 건물을 골라낸 뒤, 그걸 시민들에게 소개하고 투자를 권했다. 더불어 도시재생사업의 취지와 방향성에 대한 시민 교육도 시작했다.

북성로 땅값이 가장 비쌌을 때가 1988년 무렵이었다. 그 이후로 상권이 무너지면서 땅값은 추락했다. 도시재생사업이 시작된 2011년에 북성로 땅값은 그때의 절반 수준에 불과했다. 성장의 단계는 진작 끝났고 재생의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렇게 지금까지 10년째 도시재생사업이 진행되고 있다.

북성로와 향촌동의 골목을 보물찾기하듯 돌아보며 새로운 가치로 되살려지고 있는 공간을 둘러보는 재미가 제법 쏠쏠하다. 여태 남아 있는 근대자산도 볼만하지만, 그 자산에 부여한 새로운 가치가 더 흥미진진하다. 도시재생을 시작하면서 가장 먼저 들어선 것은 카페다. 대구뿐만 아니라 전국의 도시재생 공간을 돌아보면서 느끼는 것인데, 커피야말로 도시재생의 첫 관문을 여는 소중한 열쇠다.

허물어져 가는 근대 건축물을 다시 손보고 지키는 건 고친 건축물이 수익을 가져다줄 때만 가능하다. 가장 간편한 수익원은 커피다. 커피는 희한하게도 다른 상품과 달리 소비자들의 가격저항이 훨씬 덜하다. 카페 분위기가 좋다면, 혹은 향이 좋다면 커피 가격쯤은 문제가 되지 않는다. 근대건축물을 근사하게 꾸민 카페에서 입장료를 받는다면 거부감이 크지만, 커피를 좀 비싸게 파는 것쯤은 너그럽게 이해해준다.


# 레트로 카페와 진짜 옛날 풍경

사정이 이러니 ‘커피가 지켜준’ 유산이 적지 않다. 커피가 아니었다면 진작에 사라졌을 공간이 많다는 얘기다. 북성로에서도 가장 눈여겨볼 만한 도시재생 공간은 바로 카페다. 대표적인 곳이 북성로의 복합문화공간 카페 ‘대화의 장’이다. 문 닫은 대화장여관을 손봐서 만든 혁신적인 공간인데, 카페 겸 펍 대화살롱과 대화강당, 태국음식을 내는 다이닝펍 ‘대화빌라’, 동호인 모임을 할 수 있는 ‘대화클럽’, 공유 주방인 대화주방 등이 한울타리 안 여러 건물에 흩어져 있다.

이 밖에도 섬유공예가가 적산가옥을 사들여 갤러리와 박물관으로 꾸민 카페 ‘박물관이야기’, 고풍스러운 개화기 느낌의 ‘어울리 커피클럽’, 북성로 카페의 시작을 알렸으나 코로나19로 영업을 중단하고 있는 ‘카페 삼덕상회’ 등도 북성로의 레트로 분위기를 만끽할 수 있는 카페들이다. 노년층이 모이는 콜라텍이나 오래된 선술집이 들어선 북성로와 향촌동 곳곳에 이런 카페가 묘하게 조화를 이루며 들어서 있다.

여기다가 6·25전쟁 당시 피란 내려온 예술가들이 모여들었던 다방과 음악감상실을 엮어 함께 돌아본다면 훌륭한 도보여행 코스가 된다. 원로음악가들이 자주 찾았다는 백조다방이나 구상 시인이 자주 드나들었다는 ‘화월여관’, 이중섭 화가가 대구에 머물던 당시에 숙소로 사용한 ‘경복여관’은 진작 사라졌지만, 그때 그 건물은 기념표식과 함께 아직 남아 있다. 해방 이듬해 문을 연 음악감상실 ‘녹향’은 제자리는 아니지만 그래도 향촌문화관 지하로 옮겨 살아남았다. 북성로에서 이런 곳들만 찾아다닌다 해도 하루로는 짧다.


# 카페에서 갤러리로, 다시 편집숍으로

커피가 도시재생 공간에 여행자들을 두 시간 정도 머물게 한다면, 체류시간 네 시간짜리 공간은 갤러리다. 북성로는 대구역과 가까워 건물 1층을 창고로 쓰는 오래된 건물이 많다. 도시재생이 시작되면서 천장이 높은 창고가 예술가들의 작업장으로 변모하고 있다. 조각가 손영복의 작업실인 ‘복아트팩토리’가 대표적인 곳이다. 개인 작업실이면서 때로는 공연장으로, 때로는 전시장으로 변모하는 공간이다. 운이 좋다면 여기서 전시회나 공연을 만나볼 수 있다.

카페가 두 시간, 갤러리가 네 시간. 그렇다면 그다음은 ‘편집숍’이다. 재능을 기반으로 컬렉션을 통해 구성한 매력적인 공간이 만들어지면, 여행자들의 체류시간을 하루쯤으로 늘릴 수 있다. 이게 도시재생을 통한 관광객 유입이 고도화되는 순서다. 북성로와 향촌동의 도시재생은 아직 여기까지 도달하지 못했다. 힘겹게 만들어낸 도시재생 공간도 건물주에 의해 쫓겨나 폐업하기도 하고, 북성로의 한쪽이 재개발 아파트 건설로 뭉텅 잘려나가기도 했다.

하지만 성장을 멈추고 동맥경화가 일어난 도시재생 공간의 문제를 도시 스스로가 해결해가고 있는 모습을 대구의 북성로에서 볼 수 있다. 도시재생으로 상권이 활성화되고 나면 자본이 몰려들어 도시재생을 이끈 이들과 원주민이 높은 임대료 등으로 밀려나게 되는 이른바 ‘젠트리피케이션’ 현상이 뒤이어 오지만 대구의 도시재생 활동가들은 그걸 ‘당연한 도시의 순환과정’이라고 본다. 다만 그렇게 진행되는 속도를 늦추는 게 관건이라는 얘기다. 문화적 소양과 함께 자본을 갖춘 이들이 북성로로 들어와 주기를 바라고 있다. 혹시 또 모를 일이다. 북성로와 향촌동 일대를 여행하다가 마음에 딱 맞는 공간을 찾게 될지.


# 다시 꾸는 ‘메이드 인 북성로’의 꿈

북성로 골목에 북성로 기술예술융합소 ‘모루’가 있다. 10년 넘게 방치되던 쪽방 여관 건물을 개조해 만든 이 공간은 북성로 숙련공들의 뛰어난 ‘기술’에다 젊은이들의 창의적인 ‘예술’을 융합하기 위한 공간이다. 모루는 또 공구 골목 일대에서 치열하게 생계를 이었던 자생적 기술자의 성실한 생애를 기리는 공간이기도 하다.

모루의 마당과 전시실에 과거 북성로에서 만들어졌던 이른바 ‘메이드 인 북성로’ 제품을 전시하는 것도 그래서다. 수십 년 전에 만들어진 메이드 인 북성로 제품을 구하는 건 쉽지 않았다. 과거 북성로가 전성기를 누리던 시절에 골목에 있었던 작은 회사들을 빠짐없이 조사했고, 이 목록을 들고 전국의 고물상을 뒤져 이 회사에서 만든 제품을 찾아냈다. 그렇게 경주의 고물상에서 찾아낸 게 모루 마당에 전시해놓은 대형 수직 발동기다. 발동기는 북성로 골목에 있었던 조양철공소에서 1984년에 만든 것이다. 발동기 몸체에는 돋을새김한 ‘CHO YANG(조양)’이란 회사 이름과 ‘TAE GU(대구)’라는 지명이 선명하다. 조양철공소는 작은 회사였지만, 기술력을 인정받아 1961년에는 농림부장관상을, 이듬해에는 대통령상을 받기도 했다.


기념공간뿐만이 아니다. 모루에서는 공구사용법 체험과 교육을 하고, 북성로의 기술생태계 교육과 투어도 한다. 기술 노하우 전수 프로그램도 있고, 만들기 체험도 진행한다. 자전거를 고치고, 전기와 수도를 배우고, 목공과 유리 공예를 배울 수도 있다.

모루는 다른 도시의 도시재생 방향과는 전혀 다른 대구 북성로가 가닿고자 하는 목표를 보여준다. 아무도 기술을 배우지 않고 직접 무엇인가를 만드는 문화가 소멸하는 시대. 한때 번성했으나 이제는 끊기다시피 한 ‘만드는 공간’의 전통을 되살려보자는 게 북성로 도시재생의 방향이다. 대량생산으로 ‘이미 만들어진 것’을 소비하는 데 익숙한 도시에서 새로운 전통의 가치를 만들어보자는 것이다.

‘인스타 감성’의 근사한 커피숍이나 적산가옥 풍 건축물의 미감으로만 도시를 살려낼 수 있는 건 아니다. 쇠락해가는 도시를 기술을 중심으로 시민, 예술가가 융합하는 도시로 되살려 내는 것. 이것이야말로 공구 골목 북성로가 꿈꾸는 궁극적인 목표다. 이들의 다부진 꿈은 과연 실현 가능할 것일까.


■ 도시재생으로 만든 복합문화공간

대구의 도시재생공간은 북성로 말고도 여러 곳에 있다. 그중 하나가 중구 수창동의 ‘수창청춘맨숀’이다. 수창청춘맨숀은 1976년 지어진 KT&G 연초제조창 직원 관사 아파트를 리노베이션해 만든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20년 가까이 유휴공간으로 방치되다가 폐 산업시설 활용 문화재생사업으로 미술 전시와 음악, 무용, 연극 공연 등을 아우르는 문화공간이 됐다.

대구 중구의 수창청춘맨숀. KT&G 연초제조창 직원 관사 아파트를 리노베이션해 만든 복합문화예술공간이다. 대구 북성로 공구 골목의 오래된 건물을 손봐 빈티지 스타일로 재탄생한 카페 ‘북성로’. 일제강점기의 건축물 뼈대에 1950년대 건축물이 중첩된 건물이 인상적이다. 북성로 향촌동의 선술집 골목에 나란히 걸린 간판. 북성로 공구 거리에 착안해 볼트와 너트 모양의 이른바 ‘공구빵’을 구워 파는 ‘팩토리 09’. 북성로의 숙련공들이 젊은이들과의 협업으로 공구빵을 굽는 틀을 만들었다. 북성로 골목의 쪽방 여관건물을 개조해 만든 기술예술융합소 ‘모루’. 숙련공들이 모여들었던 북성로의 기술적 전통을 이어가는 공간이다. 대구 청라언덕 위에 들어선 대구 제일교회 야경. 제일교회는 경북지역 최초의 교회로 1986년 대구 약전골목에 있었다. 청라언덕의 교회는 1994년에 고딕양식으로 새로 지은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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