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폰 금지·온종일 연습실… 반말은 기본이고 폭언·강압 일상

안진용 기자 | 2021-07-29 10:28

이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계 없음. 이 사진은 본문 내용과 관계 없음. 그래픽 = 전승훈 기자



■ 문화일보 연중캠페인 - 존중합니다 I Respect You

⑤ 존중받지 못하는 아이돌 연습생

성공에만 초점 맞춘 아이돌육성
한방에서 잠자고 밤낮으로 연습
외국선 도입 못하는 합숙시스템

“군대보다 더한 통제에 숨막혀
존중받고 싶단 생각조차 못해
스타 되면 나아지겠지 체념할뿐”

회사 지원없이 독자데뷔 불가능
업계 좁아 소문 나면 기회 박탈

데뷔후 최소 3년 수익금 못받아
표준계약서 있지만 무용지물
그만두면 빚에 위약금 폭탄도


“건너 듣던 군대의 모습, 제가 그대로 살았어요.”

걸그룹의 일원이 되겠다는 마음으로 4년간 달려온 A(19)는 요즘 자포자기 상태다. 자신의 삶을 군대에 비유한 그는 “당연히 저는 군대가 어떤 곳인지 몰랐다. 그런데 군대 다녀온 남자들의 무용담을 듣고 있으면 ‘아… 내 얘기인데’라는 생각이 들었다”고 토로했다. 데뷔한 수많은 K-팝 그룹 멤버가 “휴대전화를 못 쓴다”고 입을 모은다. 스마트폰을 중심으로 세상이 재편됐지만 연습생에게는 요원하다. 가족, 친구, 동료들과 기본적인 소통도 제한된다. A는 “요즘은 군대에서도 휴대전화를 쓴다고 들었다”며 “그렇다면 대한민국에서 이제 휴대전화 사용이라는 기본권이 통제된 곳은 이곳밖에 없지 않을까?”라고 씁쓸하게 말했다.

방탄소년단, 블랙핑크의 세계적 성공 속에 K-팝은 이미 음악 산업의 중심이 됐다. 1990년대 최초로 등장한 H.O.T 이후 30년 넘게 K-팝은 발전해왔다. 그 첨병인 아이돌 가수들 역시 철저히 관리되고 또 육성됐다.

여기서 의문이 든다. 왜 외국에서는 유사 그룹이 나오지 않을까? 시도가 없었던 것은 아니다. 일본에서는 방탄소년단을 베낀 탄도소년단이 나왔고, 각국에서 K-팝 그룹을 모방한다. 한국보다 음악 시장의 규모에서 몇 발 앞서 있는 미국, 영국 등에서도 “K-팝을 배우자”며 음반 관계자들이 한국을 방문하곤 했다. 하지만 “K-팝 음악이 잉태되는 현장을 눈앞에서 확인한 그들은 하나같이 ‘벤치마킹이 어렵다’고 고개를 저으며 돌아갔다”고 업계 관계자들은 입을 모은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그 답을 찾다 보면 아이돌 연습생이 ‘존중합니다’ 캠페인을 통해 돌아봐야 하는 존재임을 깨닫게 된다. 현재도 연습생으로 데뷔를 꿈꾸고 있는 B(21)의 일과를 살펴보자. 다른 연습생들과 함께 숙소 생활을 하는 B는 4명이 한방에서 잠을 잔다. 밤낮으로 연습하고 또 연습한다. 식사는 밥만 새로 짓고, 집에서 가져온 반찬으로 해결한다. 그나마도 몸매 관리 차원에서 양껏 먹을 수 없다. 당연히 B도 휴대전화를 쓰지 못한다. 그들의 생활은 좋게 말해 ‘투명’하고, 나쁘게 말해 ‘노출’된다. 사생활이라곤 없다. 프라이버시를 특히 중시하는 서양 문화권 음악 종사자들의 눈으로 봤을 때 한국의 아이돌 가수 육성 시스템은 도저히 도입할 수 없는 것이다. 한 중견 가요기획사 대표는 “K-팝의 인기가 워낙 높으니 투자를 하고 싶다는 외국 자본가가 있었는데, 한국에 와서 연습실과 숙소 등을 둘러본 뒤 ‘미성년자들을 한데 모아 합숙을 시키며 기본권을 통제한다’는 사실만으로도 큰 문제가 될 수 있다고 우려했다”며 귀띔했다.

숙소 생활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규율이 뒤따른다. 2019 대중문화예술산업 실태조사에 따르면 청소년 연예인들의 계약 과정에서 별도의 계약조항 혹은 지침·생활수칙이 있는 경우는 61.4%에 달했다. 연예 활동과 관련된 계약 외 그들을 통제하는 또 다른 조건들이 붙는다는 의미다. 질서를 잡기 위함이라지만, 가끔은 강압적으로 흐른다. B는 “예전 선배들은 물리적 폭행을 당한 적도 있다고 하는데, 요즘 그런 경우는 드물다. 하지만 폭언이나 강압 등 심리적·정신적 폭력 역시 피해가 크다”고 말했다. 반말은 기본이다. 연습생 대다수가 나이가 어리기도 하지만, ‘친하기 때문’이라는 명목하에 대다수가 ‘말을 놓는’다. B는 “어리기 때문에 반말이야 대수롭지 않게 받아들이지만, ‘야’ ‘새X’와 같은 말을 들을 때가 많다”고 토로했다. B에게 “존중받는 느낌을 받은 적이 있나?”라고 물었다. “존중받고 싶다는 생각조차 해본 적이 없다”는 B는 “‘데뷔 후 스타가 되면 나아지겠지’라는 바람이 더 현실적”이라고 말했다.

나이 어린 연습생들이 이런 계약에 응하는 이유는 무엇일까? 그들의 꿈을 이루기 위해서다. 또한 계약을 맺은 연예기획사에 빚을 지고 있기 때문이다. 5인조 그룹을 2∼3년간 트레이닝시킨 후 데뷔할 때까지 통상 20억∼30억 원가량이 투입된다. 이후 앨범 한 장을 낼 때마다 3억 원 정도가 매번 필요하다. 그 비용은 각 연습생에게 청구된다.

만약 소속사를 떠나려면 트레이닝 과정에서 투입된 금액 일부를 회사에 지불해야 한다. 경제적 능력이 되지 않을 때는 ‘다른 회사 이적이 불가하며, 향후 어떤 연예 활동을 하지 않는다’는 각서를 쓰는 경우도 있다. 또 다른 연습생 출신인 C는 회사의 지원으로 콧대를 세우는 성형 수술도 받았다. C는 “연습생 생활을 그만둘 때 회사에서 금전적 보상은 요구하지는 않았다. 하지만 동의 없이 다른 회사로 갈 수 없다는 조건이 달렸다”며 “나는 더 이상 아이돌 가수가 되겠다는 생각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 정도 조건만으로도 괜찮지만, 다른 회사에는 이런 이유로 현 소속사를 떠나지 못하는 동료가 적지 않다”고 전했다.

물론 제도적 장치는 있다. 문화체육관광부는 지난 2019년 대중문화예술분야 연습생 표준계약서를 마련했다. 계약 기간이 3년을 초과할 수 없고, 훈련활동직접비의 범위는 기획자와 연습생이 협의하되 이 비용은 기획자의 경영활동을 위한 비용을 포함할 수 없도록 했다. 또 부당한 금품을 요구하는 것과 인격권 침해 행위도 금지된다.

하지만 A, B, C 누구도 이런 규정을 알지 못했다. 그리고 “알고 있어도 이를 요구할 수 없을 것”이라고 한목소리를 냈다. 이런 원칙을 꺼내면 연습생으로 발탁조차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도 여러 문제를 바로잡는 과정을 거치며 과거와 비교해 요즘은 상황이 나아지지 않았을까? 원조 아이돌 그룹 젝스키스의 멤버였던 강성훈은 1997∼2000년에 이어 2016년 젝스키스로 활동을 재개해 두 세대에 걸쳐 아이돌로 활동한 몇 안 되는 인물이다. 데뷔 시기 하루 2∼3시간 차에서 쪽잠을 자고 김밥만 먹으며 활동을 했다는 그는 “체계적인 시스템은 없었다. 심리 상담 같은 것도 없었기 때문에 너무 힘들어 장롱에 숨은 채 가족들한테 ‘나 집에 없다고 해줘’라고 투정도 부렸다. 존중받는 삶은 기대하기 어려웠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16년 만에 돌아온 가요계에서 가장 달라진 점으로 강성훈은 스마트폰과 SNS를 꼽았다. K-팝 시장이 보다 산업화되며 주먹구구식 회사 운영도 줄어들었고, 활동 환경도 개선됐다. 하지만 언제 어느 곳에서든 그들의 모습이 타인의 스마트폰에 담길 수 있고, 또 SNS를 통해 삽시간에 유통되며 ‘말의 도마’ 위에 오를 수 있다는 살풍경이 도사리고 있었다.

강성훈은 “예나 지금이나 연습생의 삶은 고되다. 태어나서 처음으로 하고 싶은 일이 생기고, 꿈을 이루려는 마음도 절실하다”며 “그 꿈을 위해 부당한 대우도 감수하곤 한다. 결국 먼저 이런 연습생들의 삶을 이해하고 존중해주는 분위기가 조성돼야 한다”고 당부했다.

특별취재팀(리스펙트팀)= 손기은·김성훈·정유정(사회부), 안진용(문화부), 이승주(산업부), 송유근(경제부), 권승현(전국부), 송정은(정치부)

안진용 기자 realyo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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