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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의원에 자르라고 할거야”…출근하자마자 민원인 협박성 전화

김성훈1 기자 | 2021-07-26 10:29

그래픽 = 송재우 기자 그래픽 = 송재우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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④ 국회의원 비서관의 하루

“어이, 의원과 친한데”로 시작
갑자기 “안 듣고 있지” 폭언

‘손빨래 해라’ ‘텃밭 가꿔라’
의원들의 부당한 업무지시도

보좌진 사이에도 ‘계급 갑질’
회식비용 처리 등 덤터기까지

피감기관엔 무리한 자료 요구
국감땐 공무원에게 되레 갑질


‘뚠~두두둥… 뚠~두두~두두두둥….’

# 오전 7시. 침대에서 밭은기침을 뱉고 일어난다. 연이어 옅은 한숨을 내뱉는다. 알람을 끄면서 휴대전화를 보니, 오전 6시 30분쯤 문자가 와 있다. ‘언님’(의원님)의 업무 지시 문자다. “당에 연락해서 이거 알아보고…”. 아, 오늘도 하루 업무가 이렇게 예고 없이 시작됐구나…. 요즘 웬만한 기업들은 나인 투 식스(오전 9시~오후 6시) 외 연락은 불법에 가까운 비매너라고 다들 조심하는 분위기라던데, 오전 6시 30분 문자, 실화냐?

‘에휴 그래도 이 정도가 어디냐’ 속으로 되뇌었다. 실제로 주변에 더한 의원이 많기도 하다. 본인 스타킹을 손빨래시킨 의원, 본인 텃밭 가꾸라고 종용한 의원, 회관 보좌진 월급을 빼앗아 지역 보좌관에게 준 의원 등등… 최근엔 비서에게 음식물 쓰레기를 버리라고 하면서 “먹고 싶은 거 있으면 먹고”라고 말해 모욕감을 준 의원도 있었다. 말 그대로 ‘굳이’ 모욕을 준 셈이다. ‘그래, 우리 언님은 양반이다!’ 스스로를 독려하며 출근한다.

# 오전 8시 40분. 의원회관에 도착한다. 무슨 일인지 보좌관이 이날 따라 일찍 나와 회의실에서 선배 비서관과 후배 비서를 혼내고 있다. “너(5급 비서관)는 변호사 맞냐?”로 시작된 갈굼은 “너는 여기 나가서도 어디 변변한 로펌 하나 못 가겠다” 식의 막말로 이어진다. 국회의원 보좌진 직급은 비서(6∼9급) 각 1명, 비서관(5급) 2명, 보좌관(4급) 2명으로 나뉜다. 보좌관은 이윽고 화살을 비서에게 돌린다. “야 이비(이 씨+비서의 줄임말)야. 너는 이게 가운데 정렬로 보이냐?” 무슨 홍보문건을 만들었는데, 디자인이 마음에 안 드는 모양이다. “아니 이건 컴퓨터가 가운데 정렬을 한 건데요…”라며 대꾸하는 이비. 가서 말해주고 싶다. ‘친구야 그건 사실문제가 아니야. 저 사람은 그냥 화풀이하는 거라고’.

# 오전 11시. 방에 전화가 걸려온다. 전화기가 울리기를 몇 번, 주위를 둘러보니 다들 일이 있어서인지 방에 없다. ‘하, 내가 전화까지 받아야 하나’ 속으로 툴툴대며 수화기를 집어 든다. 아니나 다를까, 전화를 가장 받기 싫은 이유, 민원인이다. 민원인은 대개 비서관인 나한테 말해봤자 해결될 수 없는 정치 문법 이야기를 늘어놓는다. 이 사람은 한 수 위다. “어이, 내가 당신 의원이랑 친한데 말이야…”로 시작한 잔소리가 끝도 없이 이어진다. 그러다 갑자기 들리는 폭언. “당신 내 말 안 듣고 있지? 내가 당신 의원이랑 얼마나 친한 줄 알아? 내가 의원한테 당신 자르라고 말 한마디 해? 어?” 속으로 욕이 절로 나온다. 이런 류의 폭언은 익숙하면서도 동시에 찝찝하다. 저렇게 친분을 늘어놓는 사람 중에 현실에서 의원과 진짜 친분이 있는 사람은 극히 드물지만, ‘혹시라도?’라는 생각이 지워지질 않기 때문이다. 의원은 말 그대로 비서의 생살여탈권을 쥔 존재다. 밉보이면 끝이다. 20대 국회에서 모 의원실에서는 보좌진이 수시로 바뀌었다. 4년 동안 재직한 보좌진 수만 57명에 달한단다. 정원이 8명인 걸 감안하면 줄 서는 맛집처럼 회전율이 엄청나다. 의원이 조금만 더 나쁜 쪽으로 노력(?)하면 60명 보좌진도 상상의 영역은 아니다. 이철희 청와대 정무수석의 “보좌관은 의원 마음”이라는 말은 현실과 여전히 거리가 멀다.

그래도 점심시간이 왔다. 당 출입 기자들과 오찬 자리를 갖기로 했다. 친한 기자 한 명이 속한 꾸미(무리 지어 다니는 모임)에서 기자 서너 명이 나오기로 해 나도 옆방 보좌관 선배랑 함께 나가기로 했다. 이 보좌관 선배는 그래도 나랑 죽이 잘 맞는 편이다. 그런데 식당 예약자명이 처음 보는 사람 이름으로 돼 있다. 왁자지껄 식사가 끝나고 계산을 할 타이밍, 보좌관 선배가 나한테만 귓속말을 건넨다. “어, 우리 쪽 피감기관에서 계산하고 갔어.” 절로 나오는 감탄. “역시 선배 실력 어디 안 갔네요!”

# 오후 4시. 이름도 기억 안 나는 협회, 지역구 사무실 등에서 온 손님들을 맞이했다가 보내고 나도 자료 요구 거리를 찾고 있다. 국회의원은 소속한 상임위원회별로 다양한 피감기관을 맡게 되고, 보좌진은 의원실 자격으로 피감기관에 자료를 요청할 수 있다. 국정감사 시즌이 되면 관리·감독을 명분으로 한 먼지 털기가 반복되기도 한다. 모시는 의원이 예산결산특별위원회 위원이라도 되면 갑이 될 기회(?)는 더 늘어난다. 청탁금지법 때문에 고가의 선물을 받는 등의 적폐는 사라졌지만, 여전히 국회가 갑이다. 예산을 타내려는 공무원이 끝없이 몰려오는데, 이분들이 애쓰는 것에 비해 우리는 그 많은 자료를 다 들여다볼 틈이 없다. 우리로서는 어쩔 수 없는 면이 있지만 그 자체가 갑질일 수 있겠다는 생각은 든다. 어, 마침 보좌관이 자료 요구 거리를 찾았단다. 얼마 전 산업통상자원중소벤처기업위원회(산자중기위) 소속 의원실에서 피감기관에 5년치 법인카드 내역서를 요구했다던데, 우리도 대충 그러잔다. 그래 그러자. 그러고 치우자.

# 오후 6시. 퇴근하려는데 적폐로 유명한 방(B 의원실) 9급 비서가 결국 퇴사했다는 말이 들린다. 수석보좌관이 9급 비서에게 회식비 덤터기 씌운 사건이 터진 곳이다. 그간 들은 이야기를 종합해보니, 회식 당시 B 의원실 수석보좌관은 9급 비서에게 “나중에 n분의 1 할 테니, 우선 네가 먼저 좀 결제하라”며 결제를 종용했다고 한다. 9급 비서는 수석보좌관의 말을 믿고 약 60만 원에 달하는 회식비를 본인 카드로 결제했다. 문제는 이후 수개월이 지난 뒤에도 수석보좌관은 물론 회식을 함께한 5명의 상사 중 아무도 9급 비서에게 돈을 주지 않았다는 것이다. 9급 비서가 “n분의 1을 하기로 했으니, 돈을 갹출해 주시면 안 되겠느냐” 요청했지만 오히려 수석보좌관으로부터 “내가 안 줄까봐 그러느냐. 더 안 주고 싶어졌다”는 궤변 겸 폭언을 들었다고 한다. 역시 이곳, 정글 같은 곳이다.

더 놀라운 건 B 의원실 사람들이 9급 비서가 부유한 집안 자제인 것을 알고 애초부터 ‘삥을 뜯고자’ 9급을 채용했다는 말이 나오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 9급 비서가 한남동 고가의 아파트에 거주하는 등 부유한 집안 출신이었다고 한다. 이를 면접 중(자기소개서 거주란에서) 확인한 수석보좌관이 주변에 “얘(9급 비서)를 뽑으면 뭐라도 갖다 바치지 않겠느냐”고 했다는 후문이다. 정작 9급 비서가 지난해 업무 중 그런 기미를 보이지 않자 의원실 상사들이 ‘회식비 작당’으로 ‘뽕’을 뽑은 것이다. B 의원실 상사들은 9급이 업무에 미숙할 수밖에 없는 점을 악용, 평소 “너는 집이 잘살아서 일을 이렇게 못하냐?”는 식의 조롱을 일삼았다고도 한다. 절로 한숨이 나온다. 이때 칸막이 위로 들려오는 보좌관 목소리. “자~ 저녁 먹으러 갑시다.”

A 비서관, 김성훈 기자 powerkimsh@munhwa.com

※ 이 기사는 국회 보좌진이 여러 달에 걸쳐 겪거나 목격한 일을 취재해 하루 시간대 순으로 재구성한 것이다.


특별취재팀(리스펙트팀)= 손기은·김성훈·정유정(사회부), 안진용(문화부), 이승주(산업부), 송유근(경제부), 권승현(전국부), 송정은(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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