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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안쓰럽다, 낮엔 무슨 일?”… 2만원낸 손님, 동정하듯 비하

김성훈1 기자 | 2021-07-15 10:41

문화일보 김성훈 기자가 대리운전 기사로 정식 등록해 지난달 새벽 스마트폰 배차 애플리케이션으로 고객 호출을 받은 뒤 상세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오른쪽 위 사진은 김 기자가 같은 날 배차가 완료된 차량을 주행 중인 모습. 신창섭 기자 문화일보 김성훈 기자가 대리운전 기사로 정식 등록해 지난달 새벽 스마트폰 배차 애플리케이션으로 고객 호출을 받은 뒤 상세정보를 확인하고 있다. 오른쪽 위 사진은 김 기자가 같은 날 배차가 완료된 차량을 주행 중인 모습. 신창섭 기자 그래픽 = 송재우 기자



■ 문화일보 연중캠페인 - 존중합니다 I Respect You

② 은근한 갑질 - 대리기사의 하루 체험해보니

과거보다 폭언·폭행 줄었지만
직업 대한 경멸적 태도는 여전

“밤 일은 오래할 일이 못 된다”
“세상 쉬운일 없어…건투빌어”
하대 섞인 격려성 멘트 다반사

“손자국 남아…창 만지지 마라”
“왜 이리 굼뜨냐” 황당한 핀잔
“대리기사 일당은 얼마나 되냐”
꼬치꼬치 캐묻는 손님도 많아

“술은 여자랑 마셔야…그렇지?”
반말로 노골적 성희롱 발언도


지난달 7일 오후 9시 49분. 서울 마포구 용강동의 공영주차장에서 첫 고객을 맞이했다. 40대 중반으로 추정되는 후덕하고 다정한 인상의 남성 두 명이 주차장 인도 앞 2층 한 바(Bar) 건물 계단을 비틀비틀 걸어 내려왔다. 기분 좋게 차에 올라탄 그들은 모처럼 회포를 풀었다며 만족감을 표했다. “착석한 아가씨가 괜찮았다”는 A 씨의 발언에 조수석에 앉은 B 씨가 맞장구를 쳤다. B 씨는 곧장 “역시 술은 여자랑 마셔야 좋지 않냐”며 내게 계속 동의를 구했다. “불쾌하다. 성희롱성 발언이 될 수 있다”고 말하고 싶었지만, 싸움이 날 것 같았다. 나는 그저 멋쩍게 웃으며 정면을 응시하고 운전만 했다.

A 씨가 술기운에 곯아떨어지고 난 뒤 두 남성의 무르익었던 대화도 막이 내렸다. B 씨는 계속해서 무용담을 이어가고 싶어 했다. 성산대교 남단을 지날 때쯤 그는 “오늘 80만 원짜리 고급 위스키를 마셨는데, 기내 면세점에서 사면 30만 원도 안 한다”며 “팁으로 준 10만 원이 아깝다”고 투덜댔다. 반응이 시큰둥했는지 B 씨는 별안간 “대리기사 하루 일당은 어떻게 되느냐”며 질문했다.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정확한 벌이는 모르지만 5∼7건 호출을 받으면 10만 원 안팎을 번다는 답변에 그는 놀랍다는 듯 “낮에는 다른 일 하시죠?”라고 되물었다. 지하철 5호선 오목교역 인근에서 잠시 정차해 달라던 B 씨는 A 씨를 깨우고 이내 작별 인사를 나눴다. 아파트 주차장에 들어섰을 때 B 씨 휴대전화가 울렸다. 상냥하게 통화를 마친 그는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을 8살 딸”이라고 귀띔했다. B 씨는 주차를 마친 내게 돌연 “세상에 쉬운 게 없다”면서 “건투를 빈다”고 덕담했다. 취업준비생 시절 명절에 만난 친척 어르신들의 훈계성 덕담이 불현듯 떠올랐다. 운행요금은 1만5000원. 건당 보험료 970원, 프로그램 사용료 500원 등 수수료를 정산하고 1만3530원을 벌었다.

지난 5월 27∼28일, 6월 7일 사흘간 나는 대리운전 기사였다. 유명 플랫폼 업체 두 곳에 정식 기사로 등록해 2주간 보험 심사를 마쳤고, 안전 교육도 모두 이수했다. 이 기간 서울 도심에서 총 10건의 호출을 받아 55.7㎞를 주행해 보니 대리기사를 힘들게 하는 ‘진상 고객’은 폭언을 하는 고객이 아니었다. 폭언·폭행을 하면 경찰에 신고하면 된다. 정작 견디기 어려운 것은 2만 원 안팎의 비용을 내고 주인이 돼 ‘은근한 하대’를 하는 고객들이다. 김종용 전국대리기사협회장은 “과거와 달리 폭언·폭행 빈도는 줄어드는 추세”라며 “20만 명에 달하는 전국 대리기사가 가장 괴로워하는 건 대리기사라는 직업 그 자체로서의 존중을 받지 못하는 현실”이라고 말했다.

실제 그랬다. 지난 5월 27일 오후 9시 38분 중구 저동의 한 건물 지하 4층. “대리 부르셨죠, 사장님”이라며 밝게 인사하는 내게 그는 “젊은 사람이 왜 이렇게 굼떠요. 한참을 기다렸네”라면서 되레 핀잔을 건넸다. 호출은 오후 9시 25분에 수락됐다. “이동하는 데 넉넉히 15분가량이 소요될 수 있다”고 전화로 설명했지만, 예정 시간보다 2분 일찍 도착했다는 항변조차 하지 못한 채 급하게 운전대를 잡았다. 이 고객은 차에 대한 애정이 남달랐다. 광이 나는 흰색 독일산 대형 세단. 그는 “도로 위 돌멩이가 튀지 않게 조심해서 운전해 달라”고 신신당부했다. “오전에 세차했다”며 손자국이 남을 수 있으니 되도록 유리창을 만지지 말라고도 덧붙였다. 조수석에서 휴대전화를 만지작거리던 사장님은 대뜸 라디오를 틀어달라고 요구했다. 기기조작에 서툴러 하는 모습을 본 그는 “기사 양반이 아우디는 안 몰아봤네”라며 너털웃음을 짓더니 직접 스위치 노즐을 돌려 볼륨을 조절했다. “처음부터 자기가 하면 될 것을…”이라는 말이 목구멍 끝까지 차올랐다.

28일 오전 2시 22분 영등포구 양평동 인근에서 탑승한 고객 C 씨는 주행 내내 ‘인간 내비게이션’ 면모를 뽐냈다. 목적지는 9.8㎞ 거리의 지하철 9호선 양천향교역, 내비게이션에 표시된 최소 주행시간은 11분이었다. 그러나 C 씨는 서부간선도로를 지나 올림픽대로를 거치는 ‘티맵’을 전적으로 불신했다. 단순 작업을 반복하는 인공지능(AI) 탑재 이전의 로봇이 된 기분이 들었다.

그는 호사가였다. 목적지로 가는 동안 “몇 살이냐” “결혼은 했냐” “전업이냐” 등 민감한 개인정보에 대한 질의가 이어졌다. “서른다섯 미혼, 전업”이라고 답했다. 그는 대리비를 내면 이런 질문을 해도 된다고 생각하는 듯했고, 나는 거부할 방도가 없었다. 그는 “밤일은 오래 할 것이 못 된다”며 “공무원 시험에라도 도전해보라”고 조언했다. 나랑 몇 살 차이 나지 않는 것 같았는데, 산전수전 다 겪은 인생 선배처럼 말했다. 알려준 지름길은 내비게이션보다 10여 분이 더 걸렸다. “동생 같아 보여 안쓰럽다. 젊었을 때 하는 고생은 사서도 한다더라. 힘내라”는 응원의 인사까지 듣다 보니 오전 3시가 넘어서야 귀가할 수 있었다.

지난 9일 밤 모처럼 ‘손님’ 자격으로 대리기사를 호출했다. 백발의 노신사가 헐레벌떡 뛰어오더니, “목적지까지 안전하게 모시겠다”며 상냥하게 인사했다. 인천 중구 중산동에서 서울 마포구 자택까지 43㎞ 거리를 이동하면서 많은 이야기를 나눴다. 1949년생인 그는 서울 유명 공과대학을 졸업하고 대기업을 다녔다고 했다. 어렸을 적 자신의 부친이 자동차 부품가게를 운영했는데, 그때부터 자연스레 차를 좋아했던 게 인생 2막을 선택하는 데 영향을 줬다고 말했다. 대리기사로 일하며 언제가 가장 힘드냐고 묻자, 그는 “손님들이 나를 동정할 때”라고 말했다.

“그들은 내가 말년에 고생한다고 늘 걱정합니다. 악의가 없다는 건 알고 있어요. 그래서 매번 웃어넘기지만, 동정의 배경엔 제가 좋아서 택한 직업을 은근히 하대하는 감정이 깔려 있습니다. 벌이도 괜찮고, 프로의식을 갖고 일하고 있습니다. 저는 불쌍하려고 대리기사가 된 게 아니거든요.”

김성훈 기자 powerkimsh@munhwa.com


특별취재팀(리스펙트팀)= 손기은·김성훈·정유정(사회부), 안진용(문화부), 이승주(산업부), 송유근(경제부), 권승현(전국부), 송정은(정치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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