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로고


통합 검색 입력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인물

“세금 축내는 벌레” “네까짓 게 감히” 마음 후벼파는 민원인들 ‘언어 갑질’

권승현 기자 | 2021-07-12 12:14

■ 존중합니다 I Respect You - 상담원들 ‘날 울린 한마디’

여성 성기 활용한 욕설 많아
퇴근시간대 전화해 ‘트집’도


‘세금 축내는 벌레들’ ‘네까짓 게 감히’ ‘평생 전화만 받고 살아라’.

최근 120다산콜센터 상담원들에게 ‘날 울린 한마디’를 포스트잇에 써달라고 요청했다. 말이 끝나기 무섭게 “꼭 한마디만 써야 하나요?”라는 씁쓸한 농담이 돌아왔다. 취합한 포스트잇에는 욕설부터 성추행까지 마음을 후벼 파는 온갖 말이 적혀 있었다. 말 한마디로 이렇게나 ‘갑질’하기도 쉽지 않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쓸데없는 거 물어보지 말고 전화번호나 알려주라고’라는 문구가 눈에 띄었다. 쌍욕이나 성추행에 비하면 자못 점잖아(?) 보이기까지 하는 문구였다. 이 문구를 꼽은 김성광(가명) 상담원은 “내 수족을 꼼짝할 수 없이 묶어놓는 듯한 말이었다”며 “이게 갑질이 아니면 무엇이 갑질이겠는가 싶었다”고 말했다. 꼭두각시처럼 ‘내가 시키는 거나 해’라는 태도가 그 어떤 욕설, 성희롱보다 상처가 된다는 그의 말은 많은 콜센터 직원의 공감을 얻었다.

가장 많이 꼽힌 유형은 욕설이었다. 120다산콜센터 재단도 정도가 너무 심할 경우엔 법적 조처를 하고 있다. 지난해 불법 주정차 차량을 신고하겠다며 스마트불편신고 앱을 통해 온갖 욕설을 담아 폭탄 문자를 보낸 20대 남성이 대표적이다. 당시 그는 ‘느금마 XX 주차’ ‘XX 배때기에 바퀴벌레 알 깐 년의 주차’ 등 차마 입에 담지 못할 표현을 썼다.

성추행도 부지기수다. 남성 상담원도 심심치 않게 겪는 문제지만, 여성 상담원들이 주로 호소한 대목이다. 포스트잇을 살펴보니, 여성 상담원을 이름, 직책, 존칭 대신 ‘여성 성기’로 지칭한 사례가 여럿 보였다. 여성 성기를 활용한 욕설도 많았다. 한 상담원은 “어떤 민원인은 버스 노선을 물어보고 신음을 내더라”며 “직접적인 문장이 아니라 의성어라 포스트잇에는 적지 못했는데, 손이 덜덜 떨릴 정도로 충격을 받았다”고 말했다.

신음과 같이 ‘날 울린 한마디’로 특정할 순 없지만, 민원인들의 ‘갑질 수법’은 다양하다고 상담원들은 호소했다. 퇴근 시간이 임박해 전화하거나 일부러 트집을 잡아 상담을 1시간 넘게 질질 끌며 괴롭히는 수법이 대표적이다. 특히 비아냥대면서 시간을 질질 끄는 민원인을 만나면 스트레스가 극도로 치솟는다고 한다. 곽정희(가명) 상담원은 “원칙적으로는 30분 이상 상담하면 통화를 종료해야 한다고 안내해야 하지만, 그렇게 하기 어렵다”고 설명했다. 곽 상담원은 1시간 48분간 한 민원인에게 시달린 적도 있다고 했다. 한 상담원은 지난 1월 서울의 한 민원 담당 공무원이 한강에 투신한 사례를 화두에 올렸다. 해당 공무원은 평소 주변에 “민원 업무가 힘들다”고 자주 토로했던 것으로 전해졌다. 이 상담원은 “그만큼 민원 업무가 힘들다”며 “상담원을 존중해주는 민원 문화가 정착됐으면 한다”고 했다.

권승현 기자 ktop@munhwa.com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관련기사

많이 본 기사 Top5

핫클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