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화일보 로고


통합 검색 입력
정치
경제
사회
문화
국제
인물

어리면 ‘下待’ · 늙으면 ‘꼰대’ 취급… 관용·배려없는 ‘정글사회’

손기은 기자 | 2021-07-12 12:16



■ 문화일보 연중캠페인 - 존중합니다 I Respect You

갈등의 일상화…‘갑질 문화’ 왜 판치나

카페·음식점 등서 주문때
20대 알바에 반말 당연시
“현실 힘든데 모멸감까지…”

산업화 이룩한 장·노년층
‘퇴물’로 취급당하기 일쑤
“정당한 평가 못받아 불만”

권리만 주장·의무 등한시
강자가 득세하는 세상 돼
소통과 시민성 확장 절실


MZ세대(1980년대 초∼2000년대 초 출생)가 열광하는 음악 장르인 힙합의 중요 키워드는 ‘리스펙트’(존중)다. 권위에 대한 저항, 상대에 대한 ‘디스’가 난무한 상황에서도 상호 존중이 강조되는 것이다. 이는 정당한 규칙 아래 모든 역량을 다해 부딪혀 싸우는 자세, 넘어진 상대에게 손을 내밀어 일으켜 줄 수 있는 관용, 나를 이긴 상대의 실력을 인정해주는 열린 자세를 원하고 동경하는 것과 무관치 않다.

◇왜 이 시대 존중이 필요한가 = 12일 학계에 따르면, 코로나19가 ‘4차 대유행’ 국면으로 접어들면서 사회 구성원들이 작은 반응·갈등에도 즉각 반응하는 ‘예민 사회’가 도래하고 있다. ‘코로나19 팬데믹(세계적 대유행)’이 지속돼 나와 내 가족에 더해 다른 이도 품고 살아가는 존중과 배려 문화가 있는 사회가 아닌, 권리만 주장하고 의무와 실천을 등한시하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는 것이다. 실제 고객 갑질을 매일 몸소 느끼는 콜센터 상담원들은 “애초에 상담하려고 전화하는 게 아니라, 화를 풀거나 갈등을 유발하려고 전화한 것 같은 느낌을 지울 수가 없다”고 호소한다. 대리기사들은 고객들에게 직업에 대한 존중을 전혀 받지 못한 채 “젊은 사람이 왜 이런 일을 하느냐”는 ‘은근한 무시’를 당하는 게 일상이다. 곽금주 서울대 심리학과 교수는 “코로나19 스트레스로 예민해진 사회에서 사람들은 누군가가 조금만 자신을 건드려도 화를 내고 민감하게 반응하는 모습을 보인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시대의 지성’ 이어령 선생은 “지금 우리에게 절실한 것은 프랑스 혁명 때의 ‘프라테르니테’(fraternity·박애), 즉 관용의 ‘눈물 한 방울’”이라며 “나와 다른 이도 함께 품고 살아가는 세상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갈등 사회’가 고착화되는 것도 한 원인이다. 갈등의 상당수는 우리나라 사람들이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반말 시비’로부터 시작되는 경우가 많다. 처해 있는 상황에 따라 상대의 반말이 자신에 대한 단순 하대를 넘어 인간성에 대한 존중이 없다는 느낌을 받는다. 반말 시비가 가장 빈번한 곳은 국회다. 지난 5월 류호정(28) 정의당 의원과 문정복(54) 더불어민주당 의원 간 ‘반말’ 설전 등 국회에서는 시도 때도 없이 반말로 인한 갈등상황이 연출된다. 반말의 ‘나비효과’로 국회를 파행시키는 결과를 가져오기도 한다. 일상생활에서도 반말로 인한 갈등은 빈번하다. 전국의 경찰 지구대에서는 “너 왜 반말해”로 시작된 주취 폭행 사건을 매일 처리하기 바쁘다. 아울러 카페, 식당 등에서 일하는 20대 직원의 티셔츠에 “남의 집 귀한 자식입니다. 반말하지 마세요”라는 문구를 새긴 일이 발생한 것도 반말의 일상화와 이로 인한 ‘갈등의 일상화’를 압축적으로 보여주는 장면이다. 특히 반말주문을 받는 이들은 우리 사회의 미래인 20대들인 경우가 많은데, 이 세대는 특히 반말에 대해 모멸감을 느낀다고 설명한다. 20대는 대학 등록금, 생활비 등을 마련하기 위해 최저시급을 받으며 일하는 경우가 대부분이다. 주어진 현실도 화가 나는데, 자신들을 존중하지 않고 반말주문을 일삼는 기성세대에게 느끼는 반감은 상상 이상이다.

그렇다고 민주화 세대, 산업화 세대가 사회에서 존중을 받는다는 인식도 많지 않은 편이다. 이들은 우리 사회의 ‘현재’를 이룩한 공로를 넉넉하게 인정받지 못한 채 ‘꼰대’라고 쉽게 규정돼 버린 현 상황에 불만을 가지고 있다. 저소득층은 저소득층에 걸맞은 배려가 필요하고, 고소득층은 그의 노력과 성취에 대한 정당한 평가가 필요한데 이 같은 문화가 형성되지 않고 있는 것이다. 이 같은 문화 없이는 위기 상황에서 동력을 결집할 수 있는 사회적 풍토도 마련하기 어렵다는 지적이다.



◇존중 없는 세상은 정글 = 존중 부재에 따른 우리 사회의 갑질 문화는 생각보다 심각하다. 정한울, 조계원 씨는 ‘한국 사회의 갑질 문화에 대한 경험적 연구’ 논문에서 갑질을 사회적으로 유리한 위치에 있는 개인이나 집단이 자신의 지위나 권력을 이용해 상대방을 부당하게 대우하는 행위로 규정하며, “우리 사회에서 누구나 겪을 수 있는 사회적 문제”라고 했다. 아울러 “이 같은 불평등한 상호작용의 증가는 동등한 시민적 지위를 가진 존재로서 서로를 존중하는 민주적 규범을 약화하고, 공동체 구성원 간의 불신을 초래할 수 있다”고 분석했다.

해당 논문에 인용된 고려대 불평등과 민주주의연구센터와 한국리서치의 ‘갑질 및 갑을 관계에 대한 인식조사’(2018년 8월)를 보면, 한국의 갑질 문화에 대해 전체 응답자의 50%가 “매우 심각하다”고 답했고, 46%가 “대체로 심각하다”고 응답했다. 갑질 상황을 당해 본 경험이 있는지에 대해 “매우 자주 당하고 있다”는 6%, “가끔 당하고 있다”는 46%, “한두 번 당해 본 경험이 있다”는 38%였다. “전혀 경험한 바 없다”는 응답은 10%에 불과했다. 한국 성인 남녀 대다수가 갑질 문화의 심각성에 동감하고 있으며, 10명 중 9명은 최소 한 번 이상 갑질을 당한 경험이 있다고 답한 것이다. 갑질이 전 사회적 현상임을 부정할 수 없는 조사 결과로 볼 수 있다.

갑질 주체와 관련해선 정치권(94%), 대기업(93%), 사법부(90%), 언론(85%) 등을 갑질이 심각한 집단으로 인식하고 있었다. 전통적인 권력 기관에 대한 폭넓은 불신 현상이 있는 것으로 풀이된다. 또 감정노동자와 소비자(85%), 비정규직과 정규직(84%), 임대인과 임차인(75%), 직장 상사와 후배(74%) 등도 수평적 관계가 아닌 비대칭적 권력관계로 판단했다.

이익 단체(81%), 정부·공무원(75%), 노동조합(74%)도 갑질 집단이라는 평가를 받고 있었으며, 중소기업(63%), 소비자(57%)도 비난의 강도는 상대적으로 약하지만 갑질 집단으로 인식됐다.

김석호 서울대 사회학과 교수는 “존중 없는 세상은 곧 강자의 논리가 판치는 정글 같은 세상”이라고 경고하고 있다. 김 교수는 “자발적으로 자신의 권리와 의무를 실천하는 시민성이 부족해 서로를 존중하지 않는 현상이 발생한다”며 “이런 세태가 고착화하면 영화에서나 보는 정글 같은 세상이 온다”고 지적했다.

김 교수는 대안도 제시했다. 그는 존중의 사회 분위기 형성을 위해 다수의 존중 성공 사례를 만들어 ‘시민성 확장의 거점’을 형성해야 한다고 했다. 또 시민들 간 존중의 생활성을 연결할 수 있는 일종의 허브(HUB)를 구축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온·오프라인에 상관없이 시민들이 쉽게 일상생활의 존중 사례를 공유할 수 있는 플랫폼을 말한다. 아울러 점진적인 연공서열 해체, 관용의 시민성 형성 교육 등이 필요하다고 조언했다.

손기은 기자 son@munhwa.com

페이스북 트위터 카카오톡

관련기사

많이 본 기사 Top5

핫클릭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