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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X야” 욕설콜 끊자마자…“女 화장실 가보고 싶다” 성희롱콜

권승현 기자 | 2021-07-12 10:14



■ 문화일보 연중캠페인 - 존중합니다 I Respect You

① 왜 존중 문화 필요한가 - 고객 갑질 콜센터 상담원 체험기

- 감정노동 최전선 120다산콜

“몇 살이야? 설교하는 거야?”
“네가 뭘 알아? 전화나 바꿔”
은근한 비하·인격 모독 일상

진상 중의 최고 진상은 성희롱
끙끙 앓는 신음소리만 내기도
“전화 받고 온종일 심장 떨려”

코로나 집콕후 악성민원 급증
“듣고 있는 것만도 괴로운데
상냥하게 답해야 하니 울컥”


‘이 녀석도 사실은 불쌍한 녀석이었어’라는 악당 ‘클리셰’는 아무리 끔찍한 악행을 저지르는 ‘빌런’(악역)에도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하는 마법의 장치다. 자신의 어머니를 포함해 무고한 시민들을 무자비하게 죽인 ‘조커’에게 관객들이 열광한 이유도 여기에 있다. DC코믹스가 만들어낸 공전(空前)의 빌런 조커에게는 불우한 가정환경과 살면서 단 한 번도 인정받지 못한 성장배경이 감정이입을 할 수 있게 만드는 요소다.

김태완(47) 씨는 ‘이 녀석도 사실은 불쌍한 녀석이다’는 악당 클리셰를 하루에도 몇 번씩 되새긴다. 이렇게라도 마음의 상처를 덮지 않으면 상처는 감당할 수 없을 만큼 덧난다. 김 씨는 문화일보가 최근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120다산콜센터’에서 만난 상담원이다. 그는 하루에도 몇 번씩 각양각색의 빌런을 오롯이 감당한다. 그의 책상 한쪽에 꽂힌 ‘토킹 투 크레이지(Talking to Crazy): 또라이들을 길들이는 대화의 기술’ 제목의 책이 그의 하루를 보여주는 것 같았다.

기자는 이날 하루 콜센터 상담원의 일과를 체험했다. 직접 전화기를 들고 ‘서울의 빌런’들을 상대해보고 싶었다. 하지만 상담원에 투입되려면 최소 6개월의 교육 기간이 필요하다는 재단 측의 대답을 듣고 깨끗이 포기했다. 대신 실시간으로 통화 내용을 청취하는 방식으로 콜센터 상담원들의 일과를 체험했다. 기자가 함께 일한 곳은 120다산콜센터 내에서도 ‘어벤저스팀’으로 불리는 악성민원팀이다. 이곳은 악성·강성 민원인을 전담으로 상대한다. 악성은 법적 조치까지 취할 수 있는 경우, 강성은 법적 조치에 이를 정도는 아니지만 정상적인 상담을 방해하는 경우를 뜻하는 내부 용어다. 고객 악행을 마디마디 발라내야 하는 일이 서글프게 느껴졌다. 아래는 기자가 겪은 다시 생각하기 싫은 갑질 고객들의 모습이다. 대화를 그대로 옮기는 게 그 어떤 형식보다 효과적일 것 같아 어투를 살려 기록으로 남긴다. 김 씨 외에 함께 일한 상담원의 이름은 모두 익명 처리했다.


첫 통화는 한 남성 민원인에게서 걸려왔다. 이 민원인은 전화를 받자마자 흥분한 상태로 다짜고짜 따졌다.

―민원인(이하 ‘민’): 당신들은 이 전화로 돈을 받는데, 뭐라고? 여기에 전화해서 뭘 하지 말라고?

―상담원(이하 ‘상’): 전화 연결 과정에서 폭언하지 말라는 안내 멘트 때문이시죠? 산업안전보건법에 따라 콜센터 사업장은 의무적으로 송출해야 하는 안내 문구니 양해 부탁드립니다.

―민 : 댁들이 정신적으로 피해 보니까 (폭언) 하지 말라는 거야?

민원인의 생떼에 상담원이 전화한 목적을 재차 물었다.

―민 : 아이씨, 몇 살이야? 너 지금 설교하는 거야? 너 때문에 왜 전화했는지 까먹었잖아. 이 개XX야.

상담원은 “통화 대기 중에 나오는 ‘상담원에게 폭언·반말을 하지 말라’는 안내 멘트가 도리어 악성 민원으로 이어지기도 한다”고 설명했다. 이땐 몰랐지만, 체험을 끝내고 보니 첫 통화는 나를 스치는 가벼운 훅 정도에 불과했다.

다음 전화는 여성 상담원에게 걸려온 것이었다. 비교적 젊은 나이대의 남성이었다.

―민 : 여자가 되면 귀걸이 할 때 귀를 어떻게 뚫어야 하는지 가르쳐주세요.

황당한 문의였다. 120다산콜센터는 기관 정보뿐 아니라 생활 정보에 대한 문의도 받고 있는데, 한 번에 3개까지 가능하다.

―상 : 시민님, 죄송합니다만 인터넷으로 검색해보니 귀를 어떻게 뚫어야 하는지 확인되지 않습니다. 다만, 피어싱 가게에서 뚫을 수 있을 걸로 생각됩니다.

―민 : 그러면, 여자가 되면 여자화장실은 어떻게 가는지 알려주세요.

―상 : 인터넷으로 검색해보겠습니다. (검색 뒤) 확인되지 않고요. 제 판단으로는 여자화장실은 여자가 되면 들어가실 수 있습니다.

―민 : 그럼, 여자가 되면 오줌을 앉아서 눠야 하잖아요. 그때 오줌 소리가 많이(크게) 나오는 방법을 가르쳐주세요.

―상 : 죄송합니다만 문의하신 내용은 인터넷 검색이 안 돼 답변이 어렵습니다. 더 문의사항 없으면 통화를 종료하겠습니다.

전화가 끝날 때까지 꾹 참았다. 통화가 끝나자마자 상담원에게 “이런 내용은 명백한 성추행이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상담원은 “직접적인 성추행이 아니라 법적 조처를 할 수 없는 모호한 경계에 있다”고 답했다. 상담원의 침착함이 당황스러울 정도였다. 그는 “어떤 사람은 전화해서 끙끙 앓는 소리(신음)만 내다 끊기도 한다”며 “이런 전화를 받으면 온종일 심장이 떨린다”고 말했다. 잠시 흥분했던 기자는 입을 닫았다.

다음은 통화를 마친 상담원이 가장 모멸감을 느낀다는 유형의 민원이었다.

―민 : 야 이 새끼야. 서초구보건소는 왜 전화를 안 받아?

―상 : 이 새끼가 아니라 120다산콜센터 직원입니다.

―민 : 네가 보건소 업무를 알아? 넌 모르니까 바로 보건소로 (전화) 돌려봐.

―상 : 죄송하지만 반말 자제 부탁드립니다.

―민 : 에이, 네가 X같이 하니까 그렇지. 끊어. 이 X 같은 것들아.

이 상담원은 처음 듣는 것도 아닌데 ‘너는 전화나 바꿔’라는 식의 말을 들을 때면 새삼 상처를 받는다고 했다. 그는 “듣고 있는 것만으로도 괴로운데, 정중한 표현으로 답변해야 할 때 마음이 참 힘들다”고 조심스레 털어놨다.

120다산콜센터에 접수된 악성·강성 민원은 쉽사리 줄지 않고 있다. 오히려 코로나19 영향으로 급증한 상황이다. 2012∼2015년 연평균 9611건이던 악성·강성 민원은 2016∼2020년 1만2671건으로 늘었다. 올해는 4월까지만 해도 벌써 6552건이 접수됐다. 코로나19로 야외활동이 줄어들면서 악성민원이 증가한 것으로 해석된다.

이는 비단 120다산콜센터에 그치는 현상이 아니다. 한국코퍼레이션 자료를 보면 2020년 2월부터 6월까지 110콜센터 상담사 167명이 응대한 문의 전화는 총 146만7367건으로 지난해 같은 기간(112만2563건) 대비 30%가량 늘었다. 그만큼 감정노동 강도도 높아졌다고 기관 측은 분석했다.

권승현 기자 ktop@munhwa.com

문화일보 권승현 기자가 최근 서울 동대문구 신설동 120다산콜센터 악성민원팀에서 상담 체험을 하고 있다. 곽성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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