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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독한 걷기, 자신을 찾아가는 자유의 발걸음

기사입력 | 2021-07-02 10:07

게티이미지뱅크 게티이미지뱅크



■ 문화일보·예스24 - 국민서평프로젝트 ‘읽고쓰는 기쁨’
1차 공모 大賞 - ‘두 발의 고독’ 최혜련 씨 선정

두 발의 고독 | 토르비에른 에켈룬 지음 | 김병순 옮김 | 싱긋


문화일보가 창간 30주년을 맞아 일상 속 책 읽기와 글쓰기 문화를 증진하기 위해 국내 최대 온라인 서점 예스24와 공동으로 추진한 ‘국민 서평 프로젝트-읽고 쓰는 기쁨’ 1차 공모 결과, 총 137편의 서평이 접수됐다. 김금희 소설가, 장은수 편집문화실험실 대표, 하지현 정신의학전문의 겸 작가의 심사를 거쳐, 이 가운데 노르웨이 작가 토르비에른 에켈룬의 에세이 ‘두 발의 고독’에 대한 최혜련 씨의 서평이 대상작으로 선정됐다. 국민 서평 프로젝트 2차 대상 책은 ‘식물학자의 노트’(김영사), ‘지구를 위한다는 착각’(부키), ‘클라라와 태양’(민음사) 등 3권이며 마감은 오는 26일. 책과 글쓰기를 사랑하는 많은 독자의 참여를 바란다. 편집자주

길 위에서 산책자들의 리듬이 느껴진다. 적당한 보폭과 속도를 유지하며 걸으면 걷기는 생각의 리듬을 만들고 시선이 닿는 곳에서 자유연상이 이어진다. 낯선 길을 떠나는 새로운 여정은 상상의 모험이 된다. 걷기는 일상의 잔잔한 즐거움을 주는 놀이며 정체된 마음에 리듬을 주는 치유의 시간이기도 하다. 길이 광범위한 은유의 서사를 품고 있다면 길 위를 걷는 인간은 서사의 주인공일 수밖에 없다. 나는 이 책의 저자 토르비에른 에켈룬이 걷기의 서사에 있어서 가장 치열한 주인공이라고 생각한다.

‘두 발의 고독’은 갑작스러운 뇌전증 진단으로 운전면허증을 반납하고 두 발로 걸을 수밖에 없었던 시간의 기록이다. 그러나 그에게 걷기는 병증으로 인한 불편이 아닌, 새로운 감각에 집중하는 자유의 근거가 됐다. 그는 출근하던 일상적인 길에서 새로움을 느끼고, 배낭을 메고 산길을 탐사하거나 맨발로 걷는 등 길로 이어지는 모험을 시도한다. 그에게 걷기는 삶의 자유를 느끼게 하고 이로부터 자신만의 사유를 발견해간다. 이 놀라운 변화는 걷는다고 획득되는 것이 아니다.


대부분 사람에게 걷는다는 것은 목적지를 향한 수단으로서의 행위다. 걷기의 과정보다 도착이라는 결과를 위해서다. ‘걸어서 간다’는 말에서 ‘걸어서’는 수단이기에 자연스럽고 또 당연하게 들린다. 하지만 걷는다는 것이 그 행위 자체만으로도 의미 있음을 알게 된 계기가 있었다. 몸과 마음이 힘들 때 ‘걷기’라는 처방을 받은 적이 있었다. 처음에는 그 처방이 너무 사소하고 단순하게 느껴졌다. 지금까지 안 걸었던 것이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온전히 걷기에 집중하고 목적 없이 가벼운 마음으로 걸어보면 치유의 힘이 온몸으로 은근히 퍼져나간다. 친구와 걷는 것도 좋지만 혼자 걷는 것도 좋다. 나라는 사람과 대화하며 산책하는 기분이다. 걷기를 좋아하는 사람이 됐을 때 ‘걷기의 인문학’이라는 리베카 솔닛의 책을 만났다. 솔닛에 따르면 걷기의 역사는 생각과 문화의 역사가 된다. 우리의 일상적인 활동에 이토록 중대한 방점이 찍혀 있는 것이다. 보행의 리듬이 생각의 리듬이며 걷는 일에 대한 생각이 다른 모든 것에 대한 생각인 것이다.

솔닛의 책이 걷기에 대한 인문학적 사유의 범위를 넓혔다면 ‘두 발의 고독’은 걷는 사람의 진정성 있는 다큐멘터리다. 그는 뇌전증 진단을 받아 운전할 수 없게 된 안타까운 이유로 오로지 걷기를 시작한다. 그러나 걸어야 하는 불편에서 걸어야 함으로써 얻는 자유를 만끽한다. 즉 비극을 극복하는 이야기의 주인공이 아니라 걷기 그 자체를 생생하게 느끼는 걷기의 전문가며 모험가 그리고 철학자가 되는 것이다.

그의 글은 길을 걸어나가는 단단한 정체성의 인간을 통해 단순한 묘사의 문장에서도 삶을 은유하는 지점을 만날 수 있었다. 그러나 그는 자신의 사유를 넘어 길에 대한 일반적인 은유, 특히 정신적이고 종교적인 의미를 전하기도 한다. 이어서 로버트 프로스트의 시 ‘가지 않은 길’의 여러 해설을 통해 길에 대한, 그리고 길 위를 걷는 인간에 대한 생각에 다다르게 한다. 동시에 읽고 있는 나 역시 길에 대해 생각해보게 된다. 누구나 걷고 있었음을, 그리고 길 위에서 고민하고 방황하며 또한 사유했음을 느끼게 된다.

이 책을 읽고도 여전히 마음속 깊이 각인되는 문장이 있다. “길은 혼돈 속 질서다.” 길을 걸어본 사람만이 알 수 있다는 그 말의 의미를 마음에 무게중심처럼 담아둔 채 걸어보고 싶다. 목적지를 두지 않고 풍경을 눈으로 바라보며 발걸음의 리듬에 의지해 걷고 싶다. 두 발의 고독. 하지만 그 고독은 외로움이 아니다. 치열하게 생각하고 길을 찾아 걸어가는 사람에게 주어지는 자유의 다른 이름일 것이다. 이 책을 통해 일상의 걷기를 단순히 이동이나 운동만이 아닌 인간 본연의 활동으로 이해할 수 있었다. 늘 걷는 사람이었으나 걷기, 그 진정한 자유와 해방감을 통해 걷기의 진정한 의미에 다가갈 수 있었다.

최혜련 (1982년생. 아동문학을 공부하며 논술강사로 일하고 있다.)

최혜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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