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연꽃 위 토도독… 빗방울 타고, 운치가 내린다

박경일 기자 | 2021-07-01 10:23

강원 화천 서오리지의 건넌들마을 습지에 피어난 수련. 수련이나 연꽃은 비 오는 날이 가장 운치 있다. 강원 화천 서오리지의 건넌들마을 습지에 피어난 수련. 수련이나 연꽃은 비 오는 날이 가장 운치 있다.



■ 서울·수도권 ‘우산 쓴 여행’

창덕궁 후원엔 300년 된 고목
연못에 비 내리면 빼어난 풍경

양평 두물머리엔 절정의 연꽃
안개에 휘감긴 세미원서 산책

발길 줄어 고즈넉한 산정호수
화천 건넌들마을도 수련 가득


신록이 녹음으로 짙어질 무렵이면 어김없이 장마가 찾아온다. 지루하게 쏟아지는 장마는 종종 여정을 망치기도 하지만, 때로는 여행에 운치를 보태주기도 한다. 장마철이라고 여행을 가지 않을 까닭이 없고, 우중 여행이라고 축축하고 우울한 것만은 아니다.맑은 날에 좋은 여행지가 더 많기는 하지만, 비가 내려서 더 근사해지는 여행지도 있으니 말이다. 장마를 목전에 두고 서울과 수도권에서 우산 쓴 여행에 맞는 여행지들을 골라봤다.


# 고궁에서 듣는 빗소리…창덕궁 후원

서울 도심에서 비 오는 날의 고즈넉한 정취를 만날 수 있는 명소가 창덕궁이다. 창덕궁은 강화된 코로나19 대책으로 10인 이상 단체관람은 불가능하지만 개별관람은 허용하고 있다. 서울 4대 궁은 코로나19 감염예방을 위해 비대면 입장시스템을 운영하고 있다.

코로나19로 전면 중단됐던 문화재 안내해설이 지난달 15일부터 백신 예방접종자를 대상으로 시작됐다. 안내 해설은 하루 5차례 진행되는데 매회 정원은 10명이다. 백신 접종 후 14일이 지난 경우에만 신청할 수 있고, 신청자는 접종확인서나 스마트폰 앱을 통해 접종 사실을 확인받아야 한다. 백신 접종자도 마스크를 착용해야 하고, 관람객 간 안전거리를 유지해야 하는 건 물론이다. 사회적 거리두기 기준 완화로 전각 입장권 동시 발권 매수를 1일부터 최대 6인으로 늘린 데 이어 15일 이후부터는 8인까지로 늘릴 예정이다.

창덕궁에서 가장 빼어난 풍경을 보여주는 공간은 후원. 후원 제한 관람 인원은 1회당 30명. 중단된 후원 안내 해설은 언제 재개될지 기약이 없다. 창덕궁 후원은 조성을 시작한 1406년부터 600년 넘게 전지가위 한번 대지 않아 300년 넘은 고목 70여 그루가 늘어서 있는데, 오래된 나무들이 이룬 숲에 비 내리는 정취가 그만이다. 후원의 중심은 단연 부용지다. 부용정이 물 위에 반쯤 뜬 채로 있고, 맞은편에 주합루가 연못을 지키듯 서 있다.



# 빗속에서 보는 연꽃…양평 세미원

남한강과 북한강의 물머리가 합류하는 양평 양서면 두물머리의 경관은 날씨에 따라 사뭇 다르다. 화창한 날은 수채화 풍경을, 비 내리는 날에는 수묵화 같은 풍경을 보여주는데, 개인적으로 더 낫다고 생각하는 건 비 오는 날, 먹을 찍어 그린 듯한 경관이다. 장마철 두물머리의 연꽃 테마 공원인 ‘세미원’의 연꽃들은 절정을 향해간다. 여름의 초입부터 세미원에는 100여 종에 달하는 연꽃이 앞다퉈 꽃을 피운다. 시차를 두고 심은 연은 여름내 피고 또 지는데, 일찍 꽃을 피운 연꽃이 연밥을 남기고 꽃잎을 후드득 떨구면 다른 쪽에서는 홍련과 백련이 합장하듯 소담스러운 꽃대를 올리며 교대를 한다.

세미원은 장맛비가 오락가락하는 날의 정취가 단연 최고다. 연잎과 연꽃에 물방울이 맺혔다가 도르르 굴러내리는 모습이 운치가 넘친다. 시냇물과 돌다리를 들이고 곳곳에 정자와 항아리 분수를 설치해 놓은 산책로도 나무랄 데 없다. 세미원에는 또 추사 김정희의 걸작 ‘세한도(歲寒圖)’를 본뜬 정원 ‘세한정’도 있다. 세한도에 등장하는 옛집을 꼭 빼닮은 건물을 지어놓고 담장 주변에 소나무를 둘러 심었다. 세미원은 촉촉하게 내리는 빗속에서 안개에 휘감긴 모습이 단연 최고다.


# 호수에서 듣는 빗소리…산정호수

산정호수는 일제강점기인 1925년 농업용수를 활용하기 위해 광덕산에서 내려오는 물길을 막아 저수지를 축조하면서 생긴 인공호수다. 이미 1977년 국민관광지로 지정됐을 정도로 일찌감치 관광명소로 이름을 날렸다. 그러나 일찍 관광지가 되면서 상가와 위락시설들이 무질서하게 들어서고 언제부턴가 ‘낡은 여행지’의 이미지로 추락했다. 하지만 상가구역 등이 정비되고 관광객들의 발걸음이 뜸해지면서 고즈넉한 예전의 분위기를 되찾았다.

본래 산정호수가 명소로 꼽힌 건 주위를 두른 산들이 호수와 어우러져 빚어내는 경치 때문이었다. 맑은 날 호수를 둘러싼 명성산과 망봉산, 망무봉 등이 수면에 반영되는 모습도 좋지만, 비 오는 날 호수 위로 낮게 안개가 깔리면 그윽한 수묵화를 방불케 한다. 호수를 도는 5㎞ 남짓의 산책로를 따라 걸으면 이런 경치를 만끽할 수 있다. 산책로의 일부 구간은 물 위에 나무 덱을 설치해 걸을 수 있도록 해놓았는데, 우산을 들고 나무 덱 위를 걷다가 난간에 팔꿈치를 올려놓고 호수에 빗방울 떨어지는 소리를 듣는 맛이 그만이다.


#연꽃·호반 오솔길…건넌들 연꽃마을

강원 화천의 건넌들 연꽃마을은, 맑은 날보다 장마철이 더 좋은 여행지다. 춘천댐을 지나고 사북우체국과 신포리 성당을 지나 절집 현지사의 이정표를 따라가다 다리를 건너면 ‘건넌들’이 있다. 춘천댐이 놓이면서 죄다 수몰되긴 했지만, 한때 화천에서 가장 넓은 들이 있었다는 마을이다. 60호가 넘는 마을 주민들도 수몰로 뿔뿔이 흩어졌고, 떠나지 못하고 남은 8가구 주민들이 습지에 연을 심어 기른 지 20년 남짓. 그동안 주민들이 손수 심은 수련이 130여 종에 이르고, 연도 150종에 달한단다.

장마철 무렵이면 건넌들 습지에는 선홍색과 크림색 수련꽃, 엄지손가락 한마디만 한 노랑어리연이 앞다퉈 피어난다. 백련의 커다란 이파리 위에는 빗방울이 투명한 보석처럼 반짝이며 굴러다닌다. 빗줄기가 연잎에 떨어지는 소리, 흙길에 비가 쏟아지면서 풍기는 내음은 비가 내리지 않으면 느낄 수 없는 것이다. 연꽃마을에서 호수 쪽으로 깊이 더 들어가면 호반 숲길을 만나게 된다. ‘물 위 야생화 길’이다. 우산 하나 펴들고 빗물이 호수로 떨어져 동심원을 그리는 모습을 바라보며 활엽수 이파리에 비 드는 소리와 건너편 숲의 뻐꾸기 울음소리를 들으면서 걸을 수 있는 길이다.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경기 양평 두물머리의 비 내리는 날 풍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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