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복되는 제왕적 대통령제 수난사…‘統治 아닌 協治’ 길 터야

이미지 크게보기 그래픽 ＝ 전승훈 기자

■ 내분 사회, 헌법 정신에 길을 묻다 - ⑫ ‘공존 사회’향한 권력구조 개편론

文정부 2018년 개헌안 냈지만
여야 평행선… 국회 표결도 못해
대화·타협·협치‘민주 정치’실종
“개헌이 만능키는 아냐” 경계론도

대통령 1명이 권력 쥐는 시스템
반대편은 정권 흠집내기에 골몰
국가 운영 틀 바꿔 새 출발 해야

4년 중임제·의원내각제 등 대안
감사원·지자체 독립성 강화 등
견제·균형구조 만들자는 주장도

“5년 단임 대통령제에서 여소야대 상황은 언제든지 국정운영을 마비시킬 수 있는 최악의 권력 형태가 돼 왔다. 2032년 4년 연임 대통령제 대통령선거와 국회의원 총선거를 동시에 치르고, 대선에 결선투표를 도입하도록 21대 국회가 헌법을 개정하자.” 더불어민주당 내에서 부산파 친문(친문재인) 인사로 꼽히는 최인호 의원이 지난 15일 국회 소통관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이같이 말했다.

최 의원의 제안은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를 4년 연임 대통령제로 변경 △대선 1차 투표 1·2위를 대상으로 결선투표 도입 △대선과 총선 동시실시 △총선에서 야당이 1당이 될 경우 야당에 국무총리 추천권 부여 등을 주요 내용으로 한다. 현재로써는 최 의원 주장대로 개헌이 이뤄질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게 정치권의 중론이다. 하지만 역대 대선 때처럼 이번 대선 국면에서도 어김없이 권력구조 개편을 골자로 한 개헌론에 불이 붙기 시작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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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헌은 불가피한가 = 대선을 전후해 정치권에서 개헌론이 힘을 받는 이유는 ‘제왕적 대통령제’라고 비판받아 온 현행 권력구조로는 한국 정치의 고질병을 치유하기 어렵다는 판단 때문이다. 이른바 ‘촛불 정부’를 표방하며 출범한 문재인 정부도 대통령 권력이 모든 것을 좌지우지하는 ‘청와대 정부’ ‘제왕적 대통령제’의 문제점을 고스란히 답습하고 있다는 얘기다. 이 때문에 권력구조 개편론은 더 이상 ‘최고 권력’의 선의(善意)에 기대지 않고 구조적으로 대통령을 포함한 권력의 권한을 분산·제한하는 데 초점을 둔다. 이명박 정부 때 법제처장을 지낸 이석연 변호사는 “국가 운영의 틀을 바꿈으로써 국가 위기를 극복하고 국민 통합을 가져오는 개헌의 순기능에 주목해야 한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명재진 충남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반복되는 대통령제 수난의 역사는 정부 형태의 변화가 개헌의 핵심이 돼야 함을 보여준다”고 했다.

그러나 한국에서 개헌 논의는 노무현 정부 이후 약 20년 동안 성과는 없이 소리만 요란한 빈 수레와 같았다. 문 정부의 개헌이 무산된 것은 이를 잘 보여준다. 박근혜 전 대통령이 헌정사상 초유의 탄핵을 통해 파면되면서 지난 대선 당시 여야는 한목소리로 개헌을 약속했다. 문 정부도 개헌 국민투표를 2018년 지방선거에 맞추기로 하고 정부 차원의 개헌안을 내놨지만, 국회 표결까지 가지도 못했다. 개헌안 내용과 시기 등에서 여야가 평행선만 달린 탓이다.

일부 전문가는 개헌을 정치 개혁의 만능열쇠로 여기는 풍조를 비판하기도 한다. 박상훈 정치발전소 학교장은 “우리나라는 국회의장만 되면 개헌하자고 하고 대통령은 정국 전환의 카드로 개헌을 쉽게 써 왔다”며 “이는 개헌만 하면 마치 정치 개혁이 다 이뤄질 것처럼 여론을 호도하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김종철 연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제왕적 대통령제는 헌법이 그렇게 시킨 게 아니고 오히려 헌법이 이야기하는 걸 지키지 않아서 생긴 것”이라고 했다.

◇어떤 권력구조가 바람직한가 = 당장 개헌이 성사될 가능성이 크지 않다고 해서 바람직한 권력구조에 대한 논의가 불필요한 것은 아니다. 현행 권력구조의 문제점을 인식하는 것이든 권력구조 개편 방안을 만드는 것이든 주권자인 국민의 폭넓은 관심과 토론 속에 이뤄져야 하기 때문이다. 헌법재판소에서 오랜 기간 헌법연구관으로 일한 김진한 전 인하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저서 ‘헌법을 쓰는 시간’(메디치미디어)에서 “우리 정부의 형태는 삼권분립에 충실한 고전적이고 원칙적인 대통령제의 모습이 아니라 대통령의 권한을 증폭시킨 이른바 변형된 대통령제”라며 “집권 초기에 지나치게 막강했던 대통령의 권력이 집권 말기에 들어가면 급속히 해체된다”고 진단했다. 이 변호사가 ‘헌법은 상식이다’(와이즈베리)에서 정리한 대통령제의 장단점도 비슷하다. 현행 5년 단임 대통령제는 안정적이고 강력한 리더십 발휘의 토대가 되지만, 대통령 1인에게 과도한 권력이 쏠리면서 ‘제왕적 대통령제’로 흐를 가능성이 크다. 임기 말 대통령은 극심한 권력누수(레임덕)에 시달리며, 여소야대 국면에선 행정부와 입법부가 소모적 충돌에 빠져 국정이 마비될 가능성이 크다.

일군의 학자와 정치인들은 그 대안으로 미국과 같은 4년 중임 대통령제를 제시한다. 문 대통령이 내놓은 개헌안도 연임이 가능한 임기 4년의 대통령제였다. 한차례 연임이 가능토록 해 정책 집행의 연속성을 꾀하면서 동시에 사실상의 중간 평가를 통해 대통령 권한을 적극적으로 견제할 수 있다는 취지다. 반면, “제왕적 대통령의 임기를 5년에서 8년으로 늘리는 격이 될 것”이라는 비판도 만만찮다.

중진 정치인들이 주로 주장하는 권력구조 개편 방안은 의회중심제라고도 불리는 의원내각제다. 최장집 고려대 명예교수와 송호근 포스텍 석좌교수 등 원로 학자들도 이 방안을 지지한다. 연립정부 구성을 통해 권력을 나눔으로써 협치의 정치 문화를 발전시키고 책임 정치도 구현할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에는 대통령제에 대한 ‘땜질’식 처방으로는 정치의 위기를 해소할 수 없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 하지만 김 전 교수는 “정치 문화 변화 없이 의회와 정부가 한몸인 의원내각제로 바꾸는 것은 국가 권력 모두를 극단적인 투쟁 속으로 끌고 들어가는 돌이킬 수 없는 선택이 될 수도 있다”고 했다.

이에 대통령제와 내각제를 절충한 분권형 대통령제 혹은 이원정부제가 대안으로 제시되기도 한다. 주장하는 이에 따라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대통령은 외치, 총리나 부통령은 내치를 담당하는 등 대통령제를 유지하면서 내각제의 성격을 강하게 하는 구조다. 강원택 서울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개헌의 핵심은 분권화, 즉 대통령의 막강한 권한과 국가 규제의 철폐 여부”라며 “총리도 대통령이 임명하는 게 아니라 국회가 선출하도록 하는 방안도 검토할 수 있다”고 말했다. 하지만 분권형 대통령제는 결국 대통령제와 내각제의 단점만 부각시킬 것이라는 지적도 만만치 않다.

◇국가기관의 권력 분산도 중요 = 권력구조 개편 외에도 권력 기관의 독립성을 강화하고 확실하게 견제와 균형의 원리가 작동하는 구조를 만듦으로써 ‘제왕적 대통령제’의 폐해를 완화시킬 수 있다는 주장도 나온다. 특히 국회의 권한 강화, 사법부와 감사원 등의 독립성 강화, 지방자치단체와 지방의회 권한 강화 등 실효성 있는 분권화를 이루는 방안이 거론된다. 권혁주 서울대 행정대학원 교수는 “민주주의에서는 권한을 부여받은 사람의 책임성도 매우 중요하다”며 “책임성은 감사원과 국회의 기능과 연관이 있다”고 밝혔다. 이효원 서울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도 “감사원이 대통령 산하 조직으로 돼 있는 게 우리 헌법에서 가장 잘못돼 있는 점”이라고 잘라 말했다. 감사원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으로는 아예 독립기관화하는 방안과 국회에 소속되도록 해 행정부를 견제하는 입법부에 힘을 실어주는 방안이 거론된다.

삼권분립의 틀 안에서 입법부의 권한을 강화하는 방안으로 권력 분권을 이뤄야 한다는 입장은 정부가 갖고 있는 예산편성권을 아예 국회로 넘기는 등 행정부 곳곳에 배치된 견제 기능을 모두 국회로 모아야 한다는 주장으로 이어진다. 황도수 건국대 법학전문대학원 교수는 “대통령은 정부 수반이라는 헌법 조문 하나 때문에 마치 대통령의 행정권이 독립적으로 행사되는 것처럼 인식되는데, 행정권 내부의 권력 분립도 중요하다”며 “대표적 사례가 중앙선거관리위원회의 독립”이라고 강조했다.

강 교수는 “지방정부에 권한을 대폭 부여해야 한다”며 “지방에 자율성만 줘도 아이디어가 많이 나올 것”이라고 밝혔다. 명 교수는 “지방자치에 의한 분권화는 세계적 흐름”이라며 “헌법 개정을 통해 지방자치를 통한 직접 민주주의를 실현하고 국민의 법안 발안과 주민 투표를 도입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 변호사는 “국민이 중요한 정책이나 법안에 관해 국민투표 실시를 직접 제안할 수 있는 국민발안제나 국민의 청원에 의해 국회의원 등 선출직 공직자를 해임할 수 있는 국민소환제도 개헌안에 담겨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병기 기자 mingming@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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