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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일기자의 여행]

돌벼랑에 매달린 하늘길… 龍의 등을 올라타다

박경일 기자 | 2021-06-10 10:10

전북 순창 용궐산의 거대한 급경사 노출 암벽에다 쇠파이프를 박아 매달아 놓은 나무 덱. ‘용궐산 하늘길’이라 이름 붙인 덱 구간만 500여m가 넘는다. 이 길은 코로나19로 아직 정식 개장식은 하지 않았지만, 공사가 다 마무리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전북 순창 용궐산의 거대한 급경사 노출 암벽에다 쇠파이프를 박아 매달아 놓은 나무 덱. ‘용궐산 하늘길’이라 이름 붙인 덱 구간만 500여m가 넘는다. 이 길은 코로나19로 아직 정식 개장식은 하지 않았지만, 공사가 다 마무리돼 누구나 이용할 수 있다.



■ 순창 용궐산 ‘암벽길’

가파른 경사따라 500m 나무 덱
개방감 압도…놀이기구 타듯 아찔

굽이굽이 섬진강 풍경 탄성 절로
들머리엔 치유의 숲·요강바위도

풍류 흐르는 섬진강 곳곳에 정자
바위구멍에 술 담아놓고 마시기도

채계산의 명물 270m 출렁다리
90m 높이 흔들… 강심장도 후들



# 용이 칭칭 감고 있는 산… 용궐산

전북 순창의 섬진강 변에는 용궐산이 있다. 용궐. ‘용 룡(龍)’ 자에 ‘대궐 궐(闕)’ 자를 쓴다. ‘용이 거처하는 산’이란 뜻이다. 본래 산의 이름은 ‘용의 뼈’를 뜻하는 용골산(龍骨山)이었다. 인근 주민들은 오랫동안 “산 이름을 바꿔달라”고 요구해왔다. “‘용의 뼈’에는 죽었다는 의미가 깃들어있다”는 이유에서였다. 주민들의 요구는 끈질겼다. 결국 정부는 중앙지명위원회를 열어 2009년 4월 용골산의 이름을 용궐산으로 바꿔주기에 이르렀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그것참 유별나다 싶었다. 주민들이 ‘용의 기운’을 믿는다는 건 알겠는데, 산 이름이 용의 거처이든, 용의 뼈이든 그게 무슨 상관일까. 굳이 오래전부터 전해 내려오는 지명에 손을 댈 이유까지야 있었을까. ‘용의 뼈’라고 해서 꼭 죽은 용을 뜻하는 것도 아닐 텐데…. 이런 생각은, 그러나 용궐산에 발을 들여놓자마자 단번에 사라졌다. 주민들이 왜 그토록 산 이름을 바꿔달라 했는지 금방 이해할 수 있었다. 아, 이렇듯 기운이 꿈틀거리는 산에다 어찌 ‘용의 뼈’란 이름을 붙일 수 있단 말인가. 급경사의 노출암벽과 거대한 바위에서 펄떡이는 용의 기운이 느껴졌다.

순창군 동계면 어치리. 섬진강을 끼고 있는 ‘치유의 숲’ 앞에 용궐산으로 가는 길이 있다. 섬진강 물소리를 들으며 신발 끈을 고쳐매고 용궐산으로 향했다. 들머리를 지나자마자 길은 압도적인 규모의 거대한 바위 벼랑 아래로 이어졌다. 가파른 미끄럼틀처럼 둥글게 깎여나간 노출암벽의 벼랑이 마치 용의 등이나 옆구리처럼 보였다. 그렇게 생각하니 암벽과 바위가 불거진 모습이, 마치 산을 칭칭 감고 있는 용과 같았다. 그걸 용의 형상이라고 생각한다면 상상조차 할 수 없을 정도로 어마어마한 크기다.

바위 아래를 걸으며 내내 용을 떠올렸기 때문일까. 거대하고 차가운 화강암 바위에 손을 대니 마치 용의 피부를 쓰다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바위에는 기이하게도 누군가 깊이 꽂았다가 빼낸 것처럼 보이는 칼날의 흔적이 여러 개 있었다. 용(龍)의 이름을 가져다 쓰는 산이 어디 하나둘인가. 하지만 대부분 용의 흔적은 이름과 전설에만 남아있을 따름이었다. 툭툭 불거진 암벽과 바위에서 직관적으로 용의 형상과 기운을 떠올리게 하는 산이, 여기 용궐산 말고 또 있을까.


# 바위 벼랑에 아찔한 길을 매달다

장황하게 말했지만, 용궐산은 사실 이름난 명산은 아니다. ‘100대 명산’ 같은 목록의 말석에라도 이름을 올려본 적이 없다. 거대한 용이 산의 밑동을 휘감은 듯한 비범한 경관을 갖고 있음에도 그렇다. 용궐산을 ‘몰라봤다’는 얘기인데, 그랬던 데는 다 이유가 있다. 용궐산의 기이한 형상과 기운은 서남쪽 가파른 암벽 쪽에 몰려있다. 하지만 그쪽으로는 길이 아예 없었다. 바위 벼랑에 등산로를 낸다는 건 불가능에 가까운 일. 길이 없었으니 접근할 수 없었고, 접근할 수 없었으니 거기 용의 기운을 품은 경관이 있는지 아는 사람이 적었다.

그런데 최근에 도저히 길을 만들 수 없었던 곳에다 길을 놓았다. 이름하여 ‘하늘길’이다. 아슬아슬한 노출 암반에다 쇠기둥을 박아 계단을 놓고, 그 계단 끝에다가 나무 덱을 매달아 이어낸 길이다. 탐방 구간에다 나무 덱을 놓은 산이 한두 곳이 아니지만, 하늘길의 나무 덱은 느낌이 좀 다르다. 우선 덱의 길이가 500m가 넘는 데다, 거대한 바위에 매달듯 놓은 덱이 그려내는 선의 미감도 범상치 않다. 나무 덱이 그저 ‘길’이 아니라 그 자체가 ‘목적지’가 될 수 있을 정도로 훌륭하다는 것이다. 정상까지 오르지 않고 하늘길까지만 다녀온대도 부족함이 없는 이유다. 너나없이 지방자치단체들이 경쟁적으로 놓고 있는 출렁다리나 케이블카처럼 ‘베끼기식 관광지’가 아니라, 독창적인 방식과 형태로 구현해낸 명소라 할 수 있다.

바위의 옆구리에 매달아 놓은 나무 덱에 올라서면 공포는 커진다. 노출 암반 경사면의 각도는 60도쯤 돼 보이는데, 실제로 바위 앞에서 느껴지는 체감으로는 수직 벼랑에 가깝다. 가파른 경사를 나무 덱은 리을(ㄹ) 자로 머리를 흔들면서 올라간다. 경사를 뉘어놓고 평탄하게 이어진 덱 위에서는 안정감이 느껴지지만, 덱이나 난간이 없다고 생각하면 오금이 다 저린다. 하늘길의 덱 위를 걷는 기분은 마치 놀이시설을 타는 느낌과 비슷하다.

나무 덱이 선사하는 또 하나는 압도적인 개방감이다. 하늘길에서의 풍경에 운율을 불어 넣는 건, 단연 섬진강이다. 저 건너 임실 쪽에서 흘러드는 섬진강 물길이 발밑의 순창 땅을 지나 남원으로, 그리고 그 너머 곡성으로 흘러가는 모습이 내려다보인다. 용궐산 아래 섬진강이 없었다면, 하늘길에서 보는 풍경의 감흥은 지금의 절반에도 못 미치지 않았을까.


# 도둑맞아서 오히려 명소가 된 바위

용궐산 하늘길로 가는 들머리인 용궐산 치유의 숲은 섬진강을 끼고 있다. 그쪽 섬진강의 호젓한 강변을 두고 ‘장군목’이라고 부른다. 섬진강과 나란히 이어지는, 순창과 임실의 경계를 이룬 길목이었는데 주변에 장군의 명당이 있어 ‘장군목’이라고 했다는 이야기도 있고, 지형이 장구처럼 생겼다고 ‘장구목’이라고 불린다는 이야기도 있다.

장군목에는 바위를 휘감아 흐르는 강물이 뚫은 돌개구멍이 있는 너럭바위가 펼쳐져 있다. 여기에 도둑맞았다가 찾았다고 해서 더 유명해진 요강바위가 있다. 물살이 바위에 뚫은 구멍이 마치 요강처럼 생긴 바위다. 형상이 그렇다는 얘기지 15t이 넘는 바위도, 바위에 뚫린 구멍도 요강의 크기에 비할 바가 아니다.

이른바 ‘요강바위 도난 사건’의 개요는 이렇다. 섬진강 변의 거대한 요강바위가 어느 날 감쪽같이 사라졌다. 이사 온 외지인이 선심을 쓴다며 주민을 모두 단체관광을 보내준 뒤 마을에 아무도 없는 틈을 타 중장비를 끌고 와 바위를 실어내 간 것이었다. 도둑은 바위를 정원석으로 팔려고 경기 광주의 한 야산에다 숨겨두었다가 붙잡혔다. 범인은 잡았고 바위는 증거품이 돼 전주지검 남원지청의 앞마당에 놓였다. 모르긴 해도 남원지청 역사상 ‘가장 무거운’ 압류물품이었으리라.

요강바위는 마을 주민들의 요청에 따라 3년 만에 원래 있던 섬진강 변으로 옮겨졌다. 바위를 옮기는 데 운반비로만 500만 원이 들었다는데, 그 비용을 주민들이 십시일반으로 거둬서 마련했다고 했다. 되돌아온 요강바위는 일약 명물로 떠올랐다. 도둑맞지 않았더라면 과연 마을 주민이나 여행자들이 요강바위에 지금처럼 오래 눈길을 주었을까. 결과만 놓고 본다면 명소를 도둑이 만들어준 셈이다.


# 섬진강 변 정자에서 풍류를 즐기다

임실 땅에서 장군목으로 넘어온 섬진강은 순창에다 푸근한 강 풍경을 만들어놓았다. 푸근한 정취로 그득한 강변길을 걷는 것만으로도 마음이 편안해지는 곳이다. 장군목에서 멀지 않은 곳에는 배롱나무를 담으로 삼다시피 한 정자, 구암정이 있다. 정자도 정자지만 배롱나무 붉은 꽃이 필 때면 화려함으로 눈길을 붙잡는 곳이다.

구암정은 조선 연산군대에 잇단 사화로 선비들이 화를 당하는 것을 목격한 뒤 강호에 숨어서 세상을 잊고 살았던 선비 양배를 기리고자 후손들이 세운 정자다. 정자가 이름으로 삼은 구암(龜岩)은 양배의 호다. 양배는 동생 양돈과 함께 섬진강 가에서 평생 자연과 벗하며 살았다. 양 처사라 불리던 이들 형제는 강변에서 낚시를 즐기고 바위에 올라앉아 시를 읊었는데, 호랑이가 등을 내주었다는 이야기가 있을 정도로 자연의 삶을 누렸다고 전한다. 훗날 양배의 후손은 순창의 섬진강 변에 구암정을 짓고, 동생 양돈의 후손은 임실의 섬진강 변에 광제정을 지어 속세를 등진 두 형제가 살았던 무욕의 삶을 받들고 있다.

인적 드문 강변에서 그야말로 꼭꼭 숨어 살았던 형제의 자취가 어찌 지금까지 선명하게 새겨져 전해 올 수 있었을까. 궁금증은 간단히 풀린다. 양배의 손자부터 시작해 4대에 걸쳐 한 대도 거르지 않고 과거에 급제해 벼슬길로 나아갔다. 벼슬을 마다하고 은거했던 선비의 청빈한 삶이, 벼슬길에 나아가 출세한 후손들에 의해 드러나게 된 경우다.

조선 현종 때 거부이자 풍류객이었던 양운거도 벼슬에 뜻을 접고 여기 섬진강 변에서 정자를 짓고 풍류를 즐겼다고 전해진다. 용궐산과 능선이 잇닿은 무량산 아래 정자 육로정도 그가 지은 정자인데, 정자 뒤편 바위에다가는 ‘시객들의 흥겨운 노랫소리가 종소리처럼 메아리친다’는 뜻의 ‘종호(鍾湖)’라는 글씨를 새겼다. 글씨가 새겨진 바위는 절구 주둥이 크기의 구멍이 파여 있다. 여기다 술 주전자 대신 술을 담아놓고 그 위에다 잔을 띄워 빙 둘러앉은 이들이 목이 마르면 떠서 마시며 시를 읊고 풍류를 즐겼다고 전한다. ‘풍류 중의 으뜸’이라는 물 위에 술잔을 띄워 즐기는 ‘유상곡수연(流觴曲水宴)’을 펼쳤던 셈이다.


# 평생 돌아오고 싶어 했던 이의 귀향

기왕 정자 얘기가 나온 김에, 순창에서 정자 한 곳을 더 가보자. 순창읍에서 멀지 않은 남산마을 기슭에 정자 귀래정이 있다. 남산마을은 고령 신씨의 세거지. 세조 때 영의정 자리까지 오른 신숙주의 동생, 신말주의 후손들이 대를 이어 사는 마을이다. 형 신숙주와 동생 신말주는 성향이 전혀 달랐다. 형이 세조의 왕권탈취에 협력하며 승승장구하는 등 권력욕을 드러낸 인물이었다면, 동생 신말주는 벼슬하기를 즐기지 않았으며 자나 깨나 은퇴를 꿈꾸었던 인물이었다.

신말주는 나이 일흔이 될 때까지 벼슬을 했지만, 벼슬을 받으면 극구 사양하다가 하는 수 없이 부임하게 되면 갖은 핑계를 대고 자리에서 물러나기를 반복했다. 처가가 있는 순창에 내려가서 오랫동안 귀임지로 돌아가지 않아 파직된 적도 있었을 정도였다.

그가 말년에 물러나 은거한 곳이 바로 귀래정이다. 그가 순창으로 낙향했을 때 가깝게 지내던 서거정이 정자를 지어주면서 도연명의 귀거래사(歸去來辭)를 인용해 ‘귀래(歸來)’를 이름으로 삼았다고 전해진다.

귀래정 아래는 사당과 고택의 사랑채와 안채, 서책을 보관하는 유장각, 강학건물인 충서당 등의 전통건축물들이 처마를 잇대고 마을을 이루듯 들어서 있다.

보슬비 속에서 남산마을과 고령 신씨 세거지를 둘러 본 뒤에 귀래정에 올랐다. 솔숲 한가운데 사방으로 마루를 두고 있는 한 칸짜리 정자는 적요했다. 정자 툇마루에 앉으니 비가 막 그친 뒤의 청아한 뻐꾸기 소리가 숲을 가득 채웠다. 그는 왜 권력을 버리고 끊임없이 돌아오고 싶어 했을까. 그 뜻이야 알 수 없지만, 적어도 이곳 귀래정의 마루에 있으면 문득 번잡한 세상사에서 벗어나 고즈넉한 자리에 앉아 있는 기분을 알 수 있을 듯했다.

정자에서 내려오는 길에 돌비석에 새겨놓은, 서거정이 신말주에게 써 줬다는 글을 읽는다. “지금 벼슬하는 사람들은 대체로 벼슬이 주가 되고 일정한 다른 업이 없는지라, 한번 그 봉록을 잃으면 돌아갈 곳이 없어 이곳저곳 배회하며 살피다가 벼슬을 탐한다는 나무람과 봉록을 도둑질한다는 비방까지도 듣게 되니 애석한 일이다.” 그때도 누리던 자들의 관성 같은 욕망은 그러했던 모양이다.


# 허공을 걷다… 채계산 출렁다리

최근 순창에서 명소로 떠오른 곳이 채계산이다. 채계산처럼 많은 이름과 전설을 가진 산이 또 있을까. 비녀를 꽂은 여인을 닮았다고 채계산(釵계山)이라고 이름 붙여졌는데, 채계산이란 이름 말고도 수만 권 책을 쌓아놓은 형상이라고 해서 책여산(冊如山), 섬진강 상류의 이름 적성강을 따서 적성산(赤城山), 화산에 얽힌 옹바위 전설을 간직하고 있다고 해서 화산(華山)이란 이름도 있다.

채계산의 산세는 거친 말의 갈기처럼 이어진다. 갈기 끝은 칼날 같은 암릉이다. 산은 13번 국도를 가운데 두고 뚝 잘려 있는 형상인데, 이쪽의 능선과 저쪽 능선이 잘린 곳에다 출렁다리를 놓고 건너가게 했다. 채계산 출렁다리는 가운데 주탑이 없는 현수교로는 국내에서 가장 길다. 허공을 가르는 다리의 길이는 270m 남짓. 다리의 가장 높은 곳의 최고 고도는 90m다. 하지만 막상 출렁대는 다리 위에 올라서면 체감하는 높이도, 길이도 모두 두 배쯤은 되는 듯하다. 바람이라도 부는 날이면 웬만한 강심장도 다리가 후들거려 난간을 붙잡는 손에 힘이 저절로 들어간다.

채계산도, 출렁다리도 고도가 그리 높지 않아 거기서 보는 풍경과의 거리가 가깝다. 가까운 풍경이 만들어내는 건 밀도와 입체감이다. 저 뒤로 물결치는 산의 능선이 펼쳐지고, 그 앞으로는 이제 막 모내기가 끝난 들판이다. 너른 들 사이로 이리저리 굽이치는 섬진강의 청류가 발 아래로 펼쳐진다. 채계산 정상 등반은 길이 워낙 가팔라 숨이 턱에 닿을 정도지만, 출렁다리까지만 가겠다면 15분쯤이면 넉넉하다.


■ 순창에서 고추장 말고 카페

순창에는 외지인들까지 소문 듣고 일부러 찾아오는 카페가 있다. 순창읍의 베이커리 카페 ‘베르자르당’이다. 망한 예식장을 사들여서 크고 근사한 카페로 바꿔놓은 곳이다. 실외는 이국적인 리조트 분위기가 풍기고, 실내는 온실 느낌의 아늑한 공간이다. 매장에서는 버터와 우유를 쓰지 않은 비건 빵을 직접 구워내고 있다. 커피 값이 비싸다는 게 단점이지만, 순창 주민들에게 30%를 할인해준다. 일행이 세 명 이상이라면 낯모르는 순창 주민과 동행해 주문을 맡기고 커피를 사주는 게 더 저렴하다.

순창 = 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용궐산 하늘길에 올라서면 산 아래로 굽이치며 흘러가는 섬진강의 물줄기가 내려다보인다. 하늘길 아래는 섬진강에서 가장 아름다운 구간 중의 하나로 꼽히는 장군목 일대다. 순창 채계산 능선의 까마득한 허공에 내걸린 출렁다리. 발아래로 국도가 지나가서 그런가, 출렁다리에서는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아찔한 고도감이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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