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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경일기자의 여행]

모노레일 타고 쉽게, 바윗길 헤치며 힘들게… 산을 타는 ‘二色 재미’

박경일 기자 | 2021-06-03 10:33

함양의 대봉산 천왕봉 정상 직전의 가파른 구간을 오르고 있는 모노레일. 해발 1228m의 대봉산 천왕봉은 모노레일로 오를 수 있는 국내 최고 높이의 산이다. 천왕봉 정상에는 일대의 경관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 전망대가 있고, 전망대에서 한 단 내려선 자리에 기이하게 생긴 소원바위가 있다. 함양의 대봉산 천왕봉 정상 직전의 가파른 구간을 오르고 있는 모노레일. 해발 1228m의 대봉산 천왕봉은 모노레일로 오를 수 있는 국내 최고 높이의 산이다. 천왕봉 정상에는 일대의 경관이 한눈에 다 들어오는 전망대가 있고, 전망대에서 한 단 내려선 자리에 기이하게 생긴 소원바위가 있다.



■ ‘산의 고장’ 함양

- 잘 길든 대봉산
해발 1246m ‘함양 뒷산’ 불려
정상의 지리산 천왕봉 조망 압권
내려올땐 집라인 타고 스릴 만끽

- 길들지 않은 황석산
대봉산과 고속도로 놓고 마주봐
너덜길·바위계단 중심 거친 돌산
창검처럼 솟은 ‘암릉 풍경’ 장관

- 그 사이 ‘풍류의 계곡’
계곡 여울·소에 8개 정자 세워
거연정 등 남아있는 건 4곳뿐
탁족 통해 풍류 즐기며 수양도


경남 함양은 산(山)의 고장입니다. 남쪽은 지리산이 이끄는 거대한 산군(山群)이 있고, 북쪽에는 남덕유산의 지맥을 이어받은 산의 무리가 있습니다. 지도를 펴놓고 함양 땅에서 해발고도 1000m가 넘는 산을 헤아려 보니 자그마치 서른네 개나 됩니다. 웬만한 산의 기세로는 함양에서 명함조차 못 내미는 것이지요. 함양 땅에서 해발 1000m가 넘는 두 개의 산을 골랐습니다. 하나는 대봉산. 새로 놓인 모노레일을 타고 정상까지 편안히 오를 수 있는 산입니다. 다른 하나는 황석산. 정상에 야수의 이빨처럼 생긴 암봉이 늘어선 산입니다. 길든 산 VS 길들지 않은 산. 그리고 그 발치로 흐르는 차고 맑은 계곡을 따라가는 이야기입니다.


# 잘 길든 산…대봉산

대봉산을 두고 함양사람들은 ‘함양 뒷산’이라 부른다. 함양사람들이 그리 부르는 걸 들으면 고만고만한 ‘동네 산’처럼 느껴지지만, 대봉산의 해발고도는 1246m다. 1000m급이 훨씬 넘는 산을 ‘동네 뒷산’으로 여기는 정도니, 미뤄 짐작하고도 남는다. 함양의 산이 얼마나 높고 많은지 말이다.

대봉산은, 실은 근래 개명한 이름이다. 본래의 이름은 ‘괘관산(掛冠山)’이었다. ‘걸 괘(掛)’에 ‘갓 관(冠)’ 자를 쓰니 ‘갓을 걸었다’는 뜻이다. 천지개벽 때 산 정상에 갓을 걸어놓을 만큼의 공간만 남기고 물에 잠겼다 해서 붙여진 것이라는 전설이 있다. 갓을 걸었다는 의미를 ‘관직을 버리고 물러나다’라는 뜻으로 해석하기도 하는데 이런 해석 뒤에는 함양에 큰 인물이 나지 못하도록 일제가 그렇게 이름을 고쳤다는 이야기가 따라붙었다.

본래 ‘괘관’이란 중국 후한기에 나오는 고사성어. 후한시대에 봉맹이란 이가 있었다. 국정을 농단하던 권력자가 이를 말리는 자기 아들까지 죽이자 봉맹은 관직을 던지고 옷과 갓을 풀어 성문에 걸어두고 가족과 함께 나라를 떠났다. 자리보전을 하며 안온한 삶을 유지하기보다는 도리와 지조를 잃지 않기 위해 스스로 떠난 것이다. 그러니 괘관이란 탈락이나 낙오, 혹은 은퇴가 아니라, 지조와 은거의 뜻으로 새겨진 것이었다.

산 이름에 새겨진 ‘물러난다’라는 의미가 못마땅했을까, 아니면 그 이름 때문에 큰 인물이 나지 않는다고 생각했을까. 함양군은 지난 2009년 괘관이란 산 이름이 일제강점기 때 붙여진 지명이라며 중앙지명위원회에 개명을 요청했고, 승인 고시를 거쳐 결국 산 이름을 ‘큰 봉황’이란 뜻의 대봉산(大鳳山)으로 바꿨다.

대봉산에는 ‘함양 대봉휴양밸리’가 있다. 오는 9월로 예정된 산삼항노화엑스포 개최를 앞두고 함양군이 큰맘 먹고 조성한 종합 휴양시설이다. 휴양밸리는 대봉스카이랜드와 대봉캠핑랜드, 두 개의 시설로 나뉜다. 대봉스카이랜드는 천왕봉을 끼고 모노레일과 집라인 시설을 갖췄고, 대봉캠핑랜드는 대봉산 정상 아래 계곡에 캠핑장과 숙소를 갖췄다.


# 모노레일 등산과 집라인 하산

함양 대봉휴양밸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시설은 뭐니뭐니해도 대봉스카이랜드의 모노레일이다. 산 능선을 따라 레일을 놓고 모노레일 시범운행을 시작한 지는 1년도 더 됐는데,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감염증(코로나19)에다 운행 안전점검 기간까지 더해져 개장이 미뤄지다가 지난 4월 말에야 정식 운행을 시작했다.

대봉산 천왕봉의 해발고도는 1228m. 모노레일로 오르는 산 중에서 가장 높다. 이전까지 가장 높았던 문경의 단산 모노레일 정상(959m)보다 269m가 높다. 모노레일이 놓이는 산의 절대 조건은 ‘정상에서의 훌륭한 조망’이다. 대봉산 천왕봉 조망이 보여주는 압권은 남쪽으로 펼쳐지는 지리산 천왕봉이다. 지리산 천왕봉에서 장터목, 세석평전, 벽소령, 형제봉, 반야봉으로 이어지는 지리 능선 전체가 먹을 찍어 그린 것처럼 한눈에 다 들어온다.

대봉산 모노레일은 다른 지역의 모노레일과는 좀 다르다. 우선 레일이 왕복이 아니고 순환형이다. 올라가는 코스와 내려가는 코스가 다르다. 더 많은 풍경을 볼 수 있다는 뜻이다. 그래 봐야 느림보이긴 하지만, 경사구간에서의 속도가 상대적으로 빠르다. 운행소음이 적고 승차감도 다른 모노레일에 비해 나은 편이다.

가장 큰 특징은 모노레일이 집라인과 결합했다는 것. 모노레일로 천왕봉 정상에 오른 뒤 거기서부터 집라인을 타고 양쪽 능선을 지그재그로 이동하며 산을 내려올 수 있도록 했다.

대봉산 모노레일은 그것만 타고 오르내리는 것보다 집라인과 함께 즐기는 게 열 배쯤 낫다. 모노레일이 닿는 천왕봉 정상에는 정상석 외에는 별다른 시설이 없다. 철제시설을 덧대 전망대를 만들어놓긴 했지만 이 공간도 그리 넓은 건 아니다. 모노레일 운행에 따른 안전문제로 천왕봉 등산로를 닫아버려 가벼운 산행을 즐길 수도 없다. 그러니 전망대에서 그저 경관만 보고 있다가 내려가야 하는데, 그것보다는 집라인을 타고 스릴을 즐기며 내려가는 게 여러모로 낫겠다. 고소공포증이 없고 담력이 뒷받침된다는 전제가 있어야 하지만 말이다. 아 참, 담력은 매표소 앞에서도 필요할지 모르겠다. 집라인 이용요금은 4만6000원. 4인 가족이라면 20만 원에 육박한다.

대봉산 집라인의 전체 코스 길이는 3.27㎞에 이른다. 함양군은 ‘자유비행방식으로는 세계 최장’이라고 주장하지만, 실은 3.27㎞라는 게 능선을 지그재그로 건너가는 다섯 개 집라인 코스를 모두 다 더한 길이다. 가장 짧은 이른바 ‘맛보기’ 구간이 첫 번째 코스로 150m 남짓, 가장 긴 건 4코스로 길이가 1150m다. 계곡을 가로지르는 장거리 구간인 3코스와 4코스가 가장 아찔한데 이 구간에서 탑승자의 최고속도는 시속 120㎞에 달한다. 모노레일로, 집라인으로, 캠핑장으로 잘 길들인 산이 선사하는 짜릿함이다.


# 길들지 않은 산…황석산

대봉산이 길든 산이라면, 길들지 않은 함양의 대표적인 산은 황석산이다. 대봉산과 황석산은 26번 국도와 대전~통영 간 고속도로를 가운데 놓고서 서로 마주 보고 있다.

대봉산에서 모노레일을 타고 전망대에 올라 남쪽으로 펼쳐지는 지리산 능선을 감상하다가 문득 뒤로 돌아 북쪽을 보면 황석산과 거망산, 기백산, 금원산이 모여 이룬 거대한 산군과 마주 서게 된다. 그중에서도 가장 거칠고 험준하기로 이름난 산이 황석산과 기백산이다. 특히 산군의 끝에서 일어선 황석산의 칼날 같은 정상은 남덕유산 정상에서도, 모노레일을 타고 오른 대봉산에서도 선명하게 보인다.

황석산은 ‘황석(黃石)’이란 이름 그대로 거친 돌산이다. 대부분의 산행 구간이 너덜길과 바위계단이다. 밧줄을 붙잡고 매달려야 하는 구간도 있다. 산행 들머리는 ‘우전마을’. 행정구역으로는 함양군 서하면 봉전리다. 차량 내비게이터에 ‘우전마을회관’을 입력해서 찾으면 쉽다. 황석산 정상까지 편도코스가 2.6㎞ 남짓인데 여기다가 마을에서 등산로 입구까지 이어진 시멘트 임도의 거리 1.9㎞ 남짓을 더해야 한다.

황석산의 매력은 정상을 이루고 있는 거친 바위들이다. 황석산 정상의 등줄기를 따라 창검처럼 솟아 있는 거대한 암릉의 경관도 빼어나고, 거기 덧대어진 산성의 곡선이 어우러지는 모습도 독특하다. 바위 무더기로 이뤄진 정상 지점은 두세 사람이 겨우 서 있을 정도의 면적이다. 바람이 부는 날에는 다리가 후들거릴 정도로 위태롭지만, 황석산의 거친 바위 능선이 보여주는 비장미를 만끽할 수 있는 자리다.

황석산의 비장미는 경관에만 있지 않다. 정유재란 때 황석산에서는 피비린내 나는 전투가 있었다. 정유재란이 발발한 1759년. 그해 8월 16일부터 18일까지 황석산성에서는 왜병과의 치열한 전투가 있었다. 정유재란 당시 2만7000여 명의 왜군이 여기 황석산성을 공격해왔다. 거친 거대한 바위들이 능선을 따라 늘어서 스스로 천공의 울타리를 이룬 천혜의 요새 황석산성이 전라도 침략의 길목이자 요충지였기 때문이었다.


# 황석산의 비장미에 얽힌 이야기

황석산성은 안의현을 다스리던 곽준 현감과 전직 함양군수 조종도가 지켰다. 조종도는 병으로 벼슬에서 물러난 ‘전직’ 신분이었지만, 일대의 일곱 마을을 돌며 의병을 모았고 가족까지 이끌고 들어가 대의를 지켰다. 낡은 무기의 병사와 농민들의 낫으로 정예화된 왜군병력과 압도적인 화력을 이길 수는 없었다. 험준한 지형과 굳은 의지도 소용없었다. 중과부적으로 성은 함락됐고 성안에서 항거하던 주민들도 처참한 죽임을 당했다. 이들이 흘린 피가 황석산 전체를 물들였다.

황석산 등산로 초입쯤에는 거대한 바위벽이 비스듬하게 천길 낭떠러지를 이룬 곳이 있다. 이 바위에 붙여진 이름이 ‘피바위’다. 황석산성이 함락되자 성안의 부녀자들은 “몸이 더럽혀진 채 적의 칼에 죽느니 깨끗한 죽음을 택하겠다”며 이곳에서 몸을 던져 순절했다고 전해진다. 그때 아녀자들이 흘린 피가 바위에 새겨져 ‘피바위’라는 이름을 얻었다.

이들의 비통한 죽음은 100년 넘게 묻혀 있다가 숙종 때에야 비로소 기려졌다. 황석산 아래 황산리에 사당 황암사를 짓고 황석산성 전투에서 순절한 이들의 원혼을 달래는 위령제를 지냈다. 그러나 일제강점기에 사당은 헐렸고, 추모행사마저 중단됐다. 그러다 1985년 지역 주민들이 스스로 나서서 자발적으로 해마다 추모행사를 열었으며 2001년에는 황암사를 중건했다.

황암사 마당의 50년 전쯤에 세워진 중건비에 새겨진 격문 같은 문장의 마지막은 이렇게 끝난다. “보라, 지금 저 허물어진 산성 위에 지나가던 구름이 멈춰 있다. 그날의 비분한 눈물을 비 삼아 뿌려주리라.” 그러고 보니, 황석산 정상에 올랐다가 성벽을 디디며 내려올 무렵에 구름이 지나가면서 잠깐 비를 뿌렸다.


# 황석산과 대봉산 사이, 풍류의 계곡

황석산과 대봉산 사이에는 화림동 계곡이 있다. 계곡의 여울과 소(沼)마다 정자를 세웠다고 해서 이른바 ‘팔담팔정(八潭八亭)’으로 불리는 곳이다.

벼슬을 내려놓고 물러앉은 이들이 은거한 채 이곳 정자에서 계곡의 정취를 즐겼을 것이니 대봉산의 옛 이름인 ‘괘관(掛冠)’과 썩 어울리는 공간이다. 여덟 개의 정자가 있었다고 하지만, 정자가 진짜 여덟이었는지는 기록에 없다. 지금 남아 있는 오랜 내력의 정자는 거연정과 군자정, 동호정, 그리고 농월정 이렇게 네 개다.

화림동 계곡에서 가장 독창적인 자리에 앉아있는 게 거연정이다. 계곡의 물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 자연석 암반에 섬처럼 정자가 들어서 있어 작은 다리로 물을 건너야 정자로 들어설 수 있다. 다리 아래로는 연못처럼 고요한 물이 담겨 있는데, 이 물을 일러 옛 선비들은 ‘방화수류천(訪花隨柳川)’이라 했다. ‘꽃을 찾고 버들을 따라간다’는 뜻이다. 거연정은 멀찌감치 떨어진 곳에서 자연과 함께 정자를 감상하는 맛이 훌륭하다. 질박하고 단아한 정자가 계곡과 바위 그리고 여윈 소나무와 어우러져 마치 자연의 일부처럼 보인다.

거연정에서 26번 국도를 따라 2㎞쯤 내려가면 물길을 끼고 동호정이 서 있다. 동호정은 경쾌하게 들어 올린 팔작지붕의 처마로 당당한 풍모를 뽐내는 정자다. 정자는 임진왜란 때 의주로 피란하던 선조 임금을 등에 업고 수십 리를 달린 공로를 인정받아 충신으로 추앙된 장만리를 기리기 위해 지은 것이다. ‘업고 달린’ 공으로 승승장구하던 그는 관직에서 물러난 뒤 이 계곡에서 낚시를 즐기면서 소일했다.


#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다?

화림동 계곡의 정자 중에서 가장 규모가 당당하고 풍류가 넘치는 곳이 농월정이다. 농월(弄月)이란 이름에서 ‘음풍농월(吟風弄月)’을 먼저 떠올리지만 농월의 진짜 의미는 이보다 더 깊어서, 풍류를 넘어 정자 주인의 상처와 내면까지 드러낸다.

농월정의 주인은 병자호란의 시기에 예조참판을 지냈던 박명부다. 그는 병자호란을 겪으며 끝까지 청에 맞서 싸우자고 주장했으나 인조가 무릎을 꿇자 벼슬을 버리고 물러나 농월정을 짓고 은거했다. ‘농월’의 뜻은 농월정 중수기에 단서가 있다. 정자를 고쳐 지을 때마다 쓴 여러 편의 중수기에는 ‘농월’이란 이름을 설명하면서, 빠짐없이 노중련 이야기를 꺼낸다. 노중련은 중국 전국시대의 책략가. 진나라가 압도적인 군사력으로 조나라 도읍을 포위했을 때, 기막힌 계략으로 조나라를 구해냈다. 병자호란의 수모와 치욕을 겪고 낙향한 박명부는 조나라를 구해낸 노중련의 지혜를 갖지 못했음을 자책했을 것이었다. 이태백은 자신의 시에서 노중련을 밝은 달(明月)에다 빗대 농월을 얘기했는데, 자책과 부러움으로 그걸 가져다 정자의 이름으로 삼았다.

바야흐로 탁족의 계절이다. 탁족이란 말은 본래 ‘창랑의 물이 맑으면 갓끈을 씻고 창랑의 물이 흐리면 발을 씻는다’는 전국시대 초나라 굴원의 ‘어부사’에 등장하는 ‘탁영탁족(濯纓濯足)’에서 온 말이다. 찬물에 발을 씻는 것은 더위를 식히는 일이기도 했고, 자신을 반성하고 수양한다는 의미이기도 했다. 풍류를 즐기되 자연 속에서 늘 자신을 되돌아봤다는 뜻이다. 그렇듯 자연과 경관의 의미도 내 안에서 바뀐다.

길든 산과 길들지 않은 산이 다르고, ‘음풍’의 풍류로 세워진 정자와 ‘농월’의 자책으로 세워진 정자가 다르다. 산은 산이고 물은 물이지만, 산은 다 같은 산이 아니고, 물도 다 같은 물이 아니다.


■ 함양에서 머루와인을

함양에는 머루와인 체험농장 ‘하미앙(霞味) 와인밸리’가 있다. 하미앙은 함양의 해발 500m 고지에서 50여 농가가 계약재배로 참여해 재배한 머루로 빚어 만드는 와인 브랜드. 하미앙 와인밸리는 관광형 와이너리를 표방한다. 와인밸리를 찾은 관람객들은 와인 동굴과 숙성실을 둘러보고 와인 족욕을 체험하거나 잘 꾸며진 잔디 정원을 산책한다. 유럽풍의 근사한 카페와 레스토랑에서는 와이너리에서 빚은 와인과 함께 미식을 즐기기도 한다.

함양=글·사진 박경일 전임기자 parking@munhwa.com

황석산 정상 부근의 경관. 산정을 따라 물고기 지느러미처럼 일어선 기이한 암릉이 길게 이어져 있다. 황석산성은 이 거친 암릉에 덧대 지어졌다. 난공불락처럼 보이는 황석산성은 정유재란 때 왜병에 의해 함락됐다. 그때 황석산은 병사와 주민들이 흘린 피로 물들었다. 사진 위는 이국적인 경관으로 꾸며진 함양의 ‘하미앙 와인밸리’. 와이너리 위쪽 카페에 앉아 바라본 모습이다. 사진 아래는 화담계곡의 정자 거연정. 거연정은 계곡의 물길이 두 갈래로 나뉘는 자리의 자연석 암반 위에 섬처럼 앉아 있어 다리를 건너야 들어갈 수 있다. 대봉산 집라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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