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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재우 경희대 중국어학과 교수

미국과 중국의 전략 경쟁에서 지난해 하반기부터 승기는 미국으로 기울고 있다. 반도체 분야에서 중국의 잇단 패배 때문이다. 2019년부터 중국의 대표적인 통신장비 업체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본격화하면서 중국은 고전을 면치 못했다. 특히, 통신사업에서 핵심인 반도체 부문에서 중국의 국산화 및 자급률 제고 대책의 기반이 흔들리고 있다. 미국이 이런 여세를 몰아 지난해 9월부터 정부 승인 없는 대중(對中) 반도체 공급을 불허하면서 승기를 잡은 결과다. 그 여파로 미·중 간의 첨단 과학기술 분야 디커플링이 가시화하고 있다.

2017년부터 불거진 미국과의 무역전쟁에서, 특히 반도체를 포함한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 대한 미국의 제재가 중국에 치명타를 주고 있다. 이에 중국은 ‘제조2025’을 통해 2025년까지 반도체 자급률을 70%까지 올리겠다는 반도체 굴기를 선언했다. 제조 2025는 5G, 인공지능(AI) 등 4차산업에서 해외 의존도를 줄이는 게 핵심이다. 이를 첨단 과학기술의 소재품과 핵심 부품의 국산화 및 국내 자급률 향상으로 일궈내겠다는 것이다. 그러면서 미국과의 경쟁에서도 우위를 점하는 게 목표다. 그 결과 반도체 분야에서 2020년 한 해에 2만2800개의 신규 기업이 등록했다. 또, 지난 2월 말 기준 반도체 관련 종사 기업만 6만6500곳에 이른다. 그 반면, 지방정부의 지원을 받았지만 지난 2년간 파산된 반도체 기업도 10곳이 넘는다.

반도체와 같은 첨단 과학기술은 의지만으로 하루아침에 성과를 내기가 불가능하다. 인력·경험과 기술이 부족한 상황에서는 더욱더 그렇다. 중국 정부는 2014년부터 1조 위안(약 170조 원)을 투자했지만, 국산 메모리반도체 자급을 실현하지 못 하고 있다. 오히려 자급률이 15%에 머물다 보니 반도체 수입액의 증가로 2019년 한 해에만 2280억 달러(254조 원)의 적자를 기록했다.

미국의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 중국과의 디커플링이 본격화하면서 중국의 반도체 굴기 야망은 적잖은 타격이 예상된다. 실제로, 지난해 9월부터 미국이 자국 기술이나 장비를 사용하는 반도체의 중국 판매를 금지함에 따라 우리나라 기업을 포함한 해외 반도체 회사의 중국 공급이 사실상 끊겼다. 중국 화웨이만 해도 한국 의존도가 높다. 삼성과 SK하이닉스의 화웨이에 대한 반도체 공급률은 각각 8%와 10%를 웃돈다.

미국이 지난해 8월 중국의 통신업체에 대한 견제책의 하나로 ‘5G 클린 네트워크’를 선포한 이래 중국의 첨단 과학기술 분야는 큰 타격을 입고 있다. 또, 10월의 ‘관건적인 신흥 기술에 관한 국가전략’ 발표로 20개 기술과 관련해 수출 관리 규정을 명시한 37개의 기술 분야에 제재가 추가됐다. 게다가 올해 미국의 국방수권법안(NDAA)은 국방에 중국 제품이 공급되고 있다고 의심되는 5G 또는 6G 통신아키텍처에 대한 검열을 강화하는 방침이 추가됐다. 주한미군도 예외가 아니다. 따라서 미군과 긴밀한 통신 네트워크를 유지하는 한국군도 이로부터 결코 자유롭지 않다.

결국, 첨단 과학기술 분야에서의 미·중의 디커플링이 현실화하는 시점에 대한민국의 국가안보 이익을 지켜내기 위해서는 미국의 인도·태평양전략과 쿼드(Quad) 등 자유민주국가의 연대 참여에 대한 정부의 입장 정리가 시급하다.